멸종위기인 줄 알았더니...장어는 왜 국제협약 의제 됐나?

2025-09-10     우다영 기자
한국인에게는 흔한 식재료인 장어가 국제사회에서는 멸종위기로 불리며 거래 규제 논의의 중심에 서 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여름철 보양식으로 익숙한 장어가 국제 협약 의제로 올라섰다. 장어구이, 초밥, 덮밥 등으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어가 '멸종위기'라는 이유에서다. 기후위기로 자원량이 흔들리는 가운데, 동아시아 식탁의 높은 소비와 국제사회 강력한 보호 요구가 맞서고 있다. 국제 거래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장어'라는 통칭에는 여러 종이 포함돼 있다. 대표적으로 북미뱀장어(Anguilla rostrata), 유럽뱀장어(A. anguilla), 극동뱀장어(A. japonica)가 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유통 및 소비되는 장어는 대부분 극동뱀장어다. 국립수산과학원과 수산업계 통계에 따르면 국내 양식장은 극동산 치어(실뱀장어)를 들여와 기른 뒤 출하하는 구조다.

"극동뱀장어 자원 감소 추세"

극동뱀장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서 2014년부터 '위기(EN)'로 평가된다. 이 종을 포함한 뱀장어속 전체를 국제 규제 목록에 올릴 여부가 오는 11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리는 CITES(멸종위기 야생동식물 국제거래 협약) 제20차 당사국총회(COP20)에서 논의된다. 이를 앞두고 지난 6월, 유럽연합(EU)과 회원국, 온두라스, 파나마가 CITES 사무국에 규제 제안서를 제출했다.

제안서는 극동뱀장어 자원 감소 추세를 근거로 들었다. 제안서가 인용한 일본 어업청 통계에 따르면 극동산 실뱀장어 어획량은 1957년 207톤 대비 1990년부터 2024년까지 연간 약 5톤~28톤 사이로 감소했다. 올해 잠정치는 16톤이다.

또 극동뱀장어 양식이 상업적 인공부화가 불가해 전량 자연산 치어에 의존하는 점도 지적됐다. 제안서는 이 구조가 자원 고갈을 가속화한다는 입장이다. 치어 단계에서 종 식별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이 틈을 타 유럽뱀장어가 극동뱀장어나 북미뱀장어로 둔갑해 거래된 불법 사례가 보고됐다는 것이다. 제안국들은 TRAFFIC 불법거래 포털, 미국 법무부 기소 자료, 유로폴(Europol) 보고서, DNA 검사 연구를 근거로 제시하며, 뱀장어속 전체를 CITES 부속서Ⅱ에 올려 국제 거래를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2월 국제학술지 Scientific Reports에 실린 가이후 켄조 일본 도쿄해양대학교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1인당 연평균 장어 공급량은 36.2g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일본은 436.2g, 한국은 366.7g으로 세계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한국의 연간 공급량은 약 1만8800톤으로 세계 3위 수준이다. 연구진은 “글로벌 소비 장어의 99% 이상이 IUCN 위기 등급 3종(북미·극동·유럽 뱀장어)”이라며 소비 집중 현상을 지적했다. 

"국내 뱀장어 양식 산업 위기 우려"

이에 대응해 장어 소비가 가장 많은 4개국 한국·일본·중국·대만은 2014년부터 '뱀장어 및 관련 종 자원관리 비공식 협의체'를 운영하며 자율적 관리 체계를 마련해 왔다. 위 4개국은 2013~2014년 어기 대비 80% 이내로 치어 양식 투입량 상한을 설정했지만, 업계 보고에 따르면 2024~2025년 어기에는 투입량이 150톤에 근접해 상한선을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6월 열린 제18차 회의에서는 상한을 재확인하고, 불법·비보고 어획을 줄이기 위한 추적관리 강화에 합의했다. 한국 정부는 올해 3~4월 치어 수입·수출을 일시 중단했고, 성어 금어기(10월~3월), 전장 15~45cm 포획 금지, 양식장 허가제 전환 등의 조치를 보고했다.

한국은 산업 구조와 생태 보전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양식산업연구부 김형수 연구사는 "국내 뱀장어 양식은 자연에서 잡거나 수입한 실뱀장어를 양어장에 입식해 성장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며 "현재 양식장에 들어가는 실뱀장어의 약 70~80%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뱀장어가 CITES 부속서Ⅱ에 등재될 경우 수출국 발급 허가서와 합법적 어획물 증빙 자료 제출 등 까다로운 수입 절차가 요구돼 국제 거래가 크게 위축되고, 비용과 처리 기간이 증가하면서 국내 뱀장어 양식 산업 전반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 이완옥 회장은 "100년 단위로는 감소했지만 최근 10년간은 일정하거나 늘어난 해도 있어 멸종위기로만 단정하긴 어렵다"며 "다만 변동 폭이 크고 감소 추세가 반복되는 점은 우려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역시 이 문제와 맞닿아 있다. 장어는 바다에서 산란하고 하천에서 성장한 뒤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회유성 어종이다. 국제 연구자들은 해류 변화, 해양 수온 상승, 산란장 환경 변화가 치어 회유 성공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유럽은 유럽뱀장어(A. anguilla)를 CITES 부속서Ⅱ에 올렸고, 국제해양탐사위원회(ICES)는 올해 장어 자원의 모든 생애 단계에서 어획 금지를 권고했다.

오는 11월 CITES 총회에서 극동뱀장어의 부속서Ⅱ 등재 여부가 결정되면, 한국은 소비국이자 양식 산업국으로서 복잡한 처지에 놓인다. 양식업계는 원가 상승과 수급 불안을 우려하고, 보전 측면에서는 장어 자원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장어가 국제사회 중심에 놓인 가운데 한국은 산업과 생태 사이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