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감축목표 못 채우면 불법? 변호사에게 물어봤더니

2025-08-26     우다영 기자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지난달 "기후변화 대응은 모든 국가의 의무"라는 공식 견해를 내놨다. 각국은 가능한 한 가장 높은 수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세워야 한다는 권고다. 올해 안에 2035년 목표를 제출해야 하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만약 국제 권고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목표를 제출하면 어떻게 될까? 전문가는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전제하면서 "당장의 법률 리스크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국내 기후소송에 대한 헌재 판결 등을 고려하면 국가의 책임은 더 무거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국제 권고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제출한다면, 어떤 법적 리스크를 갖게 될까.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둔 유엔 산하 최고 사법기관으로, 국가 간 분쟁을 판결하고 유엔 총회 등 요청에 따라 권고적 의견을 내놓는다. 이들의 권고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법 해석을 공식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달 ICJ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국가의 의무를 공식화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유엔 최고 사법기구가 기후위기에 대해 내놓은 첫 공식 견해라는 점에서 국제법 논의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국제사법재판소 "온실가스 감축목표, 재량에 맡겨진 사안 아냐"

ICJ는 각국의 NDC가 "최고 수준"을 반영해야 하며, 전 세계적으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할 수 있는 목표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파리협정 제2조에 담긴 '1.5도 목표'가 선언적 구호가 아닌 모든 당사국이 실제로 이행해야 할 핵심 기준임을 분명히 한 사례다.

또 ICJ는 NDC가 전적으로 각국의 재량에 맡겨진 사안이 아니며, 국경을 넘어 피해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국제관습법상의 '상당한 주의' 의무를 충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후위기 심각성이 날로 커지는 현시점에서 주의 기준이 과거보다 엄격해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권고에 발맞춰 기후솔루션, Earthjustice, 플랜1.5 등 국내외 33개 기후환경단체는 25일 공동서한을 내고, 각국 정부가 ICJ 권고를 충실히 반영한 2035년 NDC를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한은 "야심 찬 목표 설정은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법적 의무"라고 강조하며, 단순 제출 시점이 아니라 목표 수준과 실질적 내용, 이해관계자와의 충분한 협의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 따르면 1.5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5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60% 감축해야 한다. 단체들은 한국을 비롯한 각국이 이 국제 권고 수준 이상의 목표를 제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드물게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헌법재판소 판례를 가진 나라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법 제8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2031~2049년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부재한 점을 문제 삼았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장기 감축 목표를 명확히 하고 후속 조치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오는 9월 NDC 초안을 마련해 의견 수렴을 거쳐 10월 말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8월 초 기준으로 이미 27개국이 2035년 NDC를 제출했다. 국제사회는 한국이 이번 제출에서 헌재 판례와 ICJ 권고를 어떻게 반영할지 주목하고 있다.

"구속력 없지만, 국내외 소송에서 명분으로 활용 가능" 

만약 한국이 권고 수준보다 낮은 목표를 제출한다면 법적으로 어떤 일이 생길까. 엄예은 외국 변호사(미국 뉴욕주)는 "국제법은 국내법과 달리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되고, 권고적 의견은 이름 그대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지금 단계에서 '법적 리스크'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시민사회 주장에 힘이 실린다는 의미가 있다. 엄 변호사는 "이번 권고는 기후변화 대응이 국가 의무임을 명확히 한 첫 공식 견해다. 앞으로 국내외 소송에서 중요한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특히 한국은 헌재 판례까지 있어 국제 권고와 결합하면 책임이 더 무겁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소송에서는 헌법상 기본권 침해를 주장할 때, 국제적으로는 국가 간 책임을 묻는 소송에서 영향력 있는 견해로 인용될 수 있다. 엄 변호사는 "이번 권고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지금 당장 가시적인 변화는 어렵겠지만, 앞으로 기후소송이 늘어날수록 정부를 압박하는 명분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