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로 만든 지붕? 스페인이 찾은 기발한 기후 해법

2025-08-20     우다영 기자
주민들이 손수 엮은 이 뜨개 지붕은 의외로 여름을 버티게 해준다. (사진 Alhaurín de la Torre 시의회)

남부 스페인의 한 작은 마을 골목 위로 알록달록한 지붕이 걸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천 조각과 헌 옷, 손바늘로 짠 뜨개질 패널이 이어져 만들어진 작품이다. 주민들이 손수 엮은 이 뜨개 지붕이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여름을 버티는 힘이 된다. 그늘막 아래 체감 온도가 5~6도 낮아지는 덕분이다.

스페인은 올여름 폭염으로 1,100명이 넘는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고, 산불로 수십만 헥타르의 숲이 불타는 피해를 겪었다. 기후재난이 일상이 된 그 곳 사람들은 집 앞 골목에서부터 살아남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말라가 인근 알하우린 데 라 토레스(Alhaurín de la Torre)에서는 2019년부터 여름마다 뜨개질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 Alhaurín de la Torre 시의회)

말라가 인근 알하우린 데 라 토레스(Alhaurín de la Torre)에서는 2019년부터 여름마다 뜨개질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이 겨울과 봄에 짠 패널을 모아 여름이 되면 거리 위에 설치하는데, 현재는 길이 60미터, 면적 500㎡ 규모의 커다란 지붕이 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그늘막 아래 체감 온도는 5~6도 낮아진다.

또 다른 마을 아라할(Arahal)에서도 지난해 주민 300여 명이 모여 같은 실험을 했다. 2,000개의 실타래로 만들어진 패널을 케이블타이로 연결해 그늘을 만들었다. 현지 언론은 이 캐노피가 직사광선을 가려 체감 온도를 낮추고, 폭염에 대응하는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브뤼셀 유럽의회 앞 광장에 전시된 뜨개 작품은 1.5km에 달할 만큼 규모가 컸고, 9개국의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사진 Knitting for Climate 홈페이지)/뉴스펭귄

유럽식 '기후 행동' 도구 된 뜨개질

유럽 곳곳에서는 뜨개질이 '기후 행동' 도구로 쓰인다. Knitting for Climate 활동가들은 붉은 실을 길게 엮어 '레드라인(Red Line)'이라는 메시지를 만들고, 화석연료 확장을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를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지난해 브뤼셀 유럽의회 앞 광장에 전시된 뜨개 작품은 1.5km에 달할 만큼 규모가 컸고, 9개국의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이 단체는 올해도 새로운 글로벌 캠페인을 이어가겠다고 밝히며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기후 데이터를 예술로 옮긴 협업 프로젝트. 기온 변화가 색으로 기록됐다. (사진 Tempestry Project 홈페이지)/뉴스펭귄

기후 데이터를 예술로 옮긴 협업 프로젝트도 있다. Tempestry Project 참여자들은 특정 지역의 일일 기온을 색으로 변환해 한 줄씩 뜨개 작업을 이어간다. 완성된 직사각형 패널은 해마다 기온 변화가 색의 흐름으로 기록되며, 여러 패널이 모이면 시간에 따른 온도 상승이 한눈에 드러난다.

이 작품들은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에서 전시되며 기후 위기를 데이터가 아닌 감각으로 체험하게 한다. 미국 허드슨밸리 등에서는 주민 100명 이상이 참여해 1895년부터 올해까지의 기온 변화를 기록하는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