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여름도 대홍수? "요즘 폭우 그때와 달라"

2025-08-18     정도영 기자

100년 전인 1925년, 대한민국에 역사적인 대홍수가 일어났다. 큰 비로 6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10만 명이 집을 잃었으며 당시 재산피해만 (1925년 돈으로) 1억 원을 넘었다. 넘치는 빗물에 지형이 달라져 지도까지 변했다. 그런데, 그 시절 홍수는 최근 폭우와 패턴이 좀 다르다.  

100년 전 을축 대홍수가 지나간 송파지역. 송파장이 열리던 송파진이 한강에 잠겨, 전국적 명성을 자랑하던 송파시장이 쇠퇴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올여름 시간당 강수량 100㎜를 넘는 국지성 폭우가 13차례 발생했다. 시간당 강수량 5㎜만 넘어가면 제법 많은 비, 10㎜ 이상은 강한 비로 분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비가 자주 내린 셈이다. 기상 관계자 등은 "극한 수준의 강우가 연이어 발생했다"고 표현한다.

최근 폭우로 29명이 목숨을 잃었고 각 지자체가 잠정 집계한 재산피해는 1조 3000억 원을 웃돈다. 기후변화로 날씨재난이 지속되고 재해 양상도 바뀌므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재해 양상이 달라졌다는 평가는 두가지 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폭우와 산불 등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이 같은 지역에서 연달아 일어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같은 재난이라도 원인과 양상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과거 우리나라 수해는 대부분 전국적인 태풍이 주요 원인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 지역에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퍼붓는 국지성 폭우가 수해 원인으로 꼽힌다.

큰 비가 내렸지만 '강수량' 자체가 많지는 않은 경우도 있다. 비가 집중적으로 몰아 내린 까닭이다. 역설적이게도 전체 강수량 자체는 평균에 미치지 않는다. 

지역별로 편차가 있는데 예를 들어 강릉의 경우 올해 누적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가뭄이 심해 제한급수까지 시행 중인 곳도 있다. 미국처럼 땅덩이가 큰 나라가 아닌데도, 같은 시기에 어떤 지역에서는 물난리를 겪고, 다른 지역에서는 물 부족에 시달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국지성 폭우의 주요 원인으로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 상승과 열대 수증기 유입을 꼽는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 북쪽에서 차고 건조한 공기가 계속 내려오는 이례적인 현상도 발생했다고 말한다. 성질이 다른 두 공기가 충돌하면서 좁고 긴 비구름대가 만들어지고, 중규모 저기압이 이 둘을 섞어 특정 지역에 짧은 시간 동안 물벼락을 쏟아낸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 시대, 과거의 홍수는 어땠을까? 

강수량 자체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역사적 사례로는 1925년 을축 대홍수를 빼놓을 수 없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을축 대홍수는 대만과 중국, 그리고 괌 인근의 마리아나제도에서 발생한 태풍이 서해로 진입해 한반도 중부지역을 거쳐가며 발생했다. 7월 9일부터 11일, 15일부터 19일 두 차례에 걸친 집중호우로 수도권에 하루 650㎜ 비가 쏟아졌다. 647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재민만 10만 명이 넘었다. 

당시 한강 연안 마을들의 피해가 특히 심각했다. 뚝섬, 이촌동, 용산, 영등포, 잠실, 송파가 완전히 물에 잠겼다. 재산피해는 당시 돈으로 1억 300만 원에 달했는데, 이는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약 60%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을축 대홍수는 대규모 수해의 상징이 되어 지난 세기 말까지만 해도 큰 홍수가 날 때마다 "을축 대홍수 이래로…"라는 표현이 관용구처럼 쓰였다.

을축 대홍수가 서울 지도까지 바꿨다. 당시 잠실 위로는 신천강, 아래로는 송파강이 흘렀다. 신천강은 샛강이고 송파강이 본류였다. 그런데 이 대홍수가 한강의 폭이 넓히면서 신천강이 한강 줄기가 되고, 원래 본류였던 송파강은 샛강이 된 것이다. 송파강은 1971년 잠실 개발 사업으로 매립되어 지금은 석촌호수로만 그 흔적이 일부 남아있다.

역사에 남은 기록적인 폭우 피해들

을축 대홍수와 올해 폭우 사이에도 큰 피해를 입힌 자연재해가 이어졌다. 1959년 태풍 사라는 849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1998년 여름 폭우는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많은 비로 기록됐다. 당시 여름 평균 강수량 (600mm의) 세 배에 달하는 약 1,800mm가 쏟아졌다. 역대 두번째로 많은 비가 내린 건 2011년 여름이다. 당시 강수량 1,700mm를 기록했다. 2011년에는 우면산 산사태로 16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