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과 노동] 뜨거운 '열' 머금은 우리들의 일터

2025-07-31     우다영 기자

폭염은 이제 '불편함'이 아닌 심각한 '기후재난'입니다. 최근 전국에 폭염특보가 이어진 가운데 약 두 달 만에 온열질환자가 2천 명을 넘었고, 이 중 1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러진 곳은 다름아닌 일터였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대응 기준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사각지대는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고온환경에서의 노동자 보호를 기후적응의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기후변화로 전 세계 노동자 70% 이상이 과도한 열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당신의 일터는 안전할까요? 무더위 속 우리 터전의 구조적 취약성과 현주소, 앞으로 필요한 과제를 2회차에 걸쳐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폭염 속 일터는 열을 머금고 있다. 사진 속 장소와 인물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 Pixabay)/뉴스펭귄

극단적 폭염 속 노동자의 일터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심지어는 그 열을 머금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7월17일부터 산업안전보건기준을 개정해 폭염에 따른 보건조치를 일부 의무화했지만, 여전히 현장의 열환경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폭염의 위험성은 칼과 같다.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함승헌 교수는 "칼 자체에 유해요인이 있지만, 칼집에 보관하고 사람한테 노출되지 않는다면 안전하듯 폭염도 마찬가지"라며 "폭염 자체로 유해성이 높지만 노출지수가 0에 가까우면 유해성이 아무리 높아도 위해성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100이든 1000이든 0이 곱해지면 모든 결괏값이 0이 되는 이치다.

폭염 자체가 가진 유해성에 '노출량'이 더해질 때 위해성은 더 커진다. 특히 옥외노동 현장은 이 노출을 조절할 수 없는 환경일 때 문제가 생긴다. 함승헌 교수는 "극단적으로 기후가 변하고 있는 만큼 더위에 대한 유해성은 충분하다. 이 문제를 풀어나가려면 노출을 줄이는 게 핵심"이라며 "적절한 환경이 마련되지 못할 때 온열질환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양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김인아 교수는 "냉방이 가능한 휴게공간을 찾기 어렵고, 업무 특성상 휴게공간이 있더라도 접근이 어렵거나 휴게시간을 갖기 어렵다"며 "고온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고, 업무에 단계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폭염이 더욱 위험한 이유는 개인의 생물학적 적응력 차이 때문도 있다. 함승헌 교수는 "생물학적으로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이 다르다"며 "기본적으로 더운 기온에 노출돼 있는 홍콩과 대만은 영상 5~10도에서 동사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사람들은 물론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어느 지역에서 왔느냐에 따라 위험도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온열질환은 자각했을 때 이미 위험 수위를 넘은 상태일 수 있다. 함승헌 교수는 "자기도 모르게 쓰러졌는데 옆에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사망에 이른다"며 현장에서의 사회적 관계망도 강조했다.

"복합적인 '열스트레스' 고려한 지표 적용해야"

개정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따르면 체감온도 31도 이상일 경우 사업장은 냉방·통풍설비, 작업시간 조정, 휴식시간 부여 중 하나 이상의 조치를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하며, 33도 이상일 경우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옥외작업장은 기온과 무관하게 그늘진 장소를 설치해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폭염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의 실제 열환경은 이 기준만으로 충분히 보호되지 못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모든 옥외 노동 현장은 '열'을 머금고 있다. 한국대기환경학회에 따르면 복사열은 물체에서 방출된 전자기파가 주변 구조물에 흡수돼 열에너지로 변환되는 현상이다. 즉 아스팔트와 건물지표면, 건설현장의 콘크리트, 조선소의 철 구조물, 농촌의 지면 등에서 방출되는 복사열이 체온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신체와 가까운 위치에서 올라오는 열은 옥외노동자에게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일환경건강센터 류현철 이사장은 "옥외노동자는 냉방장치를 동원해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며 "복사열에 대한 고려가 훨씬 더 중요하다. 현 체감온도 기준은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열스트레스를 평가하는 WBGT(Wet-Bulb Globe Temperature, 습구흑구온도지수)가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WBGT는 1950년대 미국 육군이 열사병 예방을 위해 도입한 지표로, 기온, 습도, 복사열, 바람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실질적인 열 스트레스를 측정한다. 이후 국제보건기구(WHO),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구에서 고열작업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WBGT는 복장 종류와 노동 강도에 따라 허용 작업시간과 휴식시간을 산출할 수 있어, 작업환경에 따른 정밀한 대응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도 WBGT를 기준으로 한 지침은 일부 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주조, 용해로, 단조 등 밀폐된 실내 고온 환경에서의 '고열작업장'에 해당하는 '고열작업환경 관리지침'을 두고 있다. 이 지침에서는 WBGT 측정 후 작업복 종류(긴팔/긴바지, 반팔/반바지 등)와 작업 강도에 따라 휴식시간과 허용 기준을 다르게 설정한다.

WBGT를 기준으로 한 지침은 실내 고온 환경에서의 고열작업장에 해당한다. 지침에서는 위 13개의 장소에 적용하고 있다. (사진 산업안전보건공단 고열작업환경 관리지침 캡처)/뉴스펭귄

반면 옥외작업장에는 복사열, 기류, 작업강도, 착용 장비 등 실제 노동환경의 열 스트레스가 정밀하게 반영되지 않는 셈이다. 함승헌 교수는 "체감온도는 기온 중심 지표이고,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더위를 체감하는지는 WBGT로 직접 알 수 있다"며 "복사열이 주요 위험요인인 옥외 현장에도 이 지수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현철 이사장 역시 "현 체감온도 지수는 문제가 있다. WBGT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햇볕만이 아니라 지면과 구조물에서 복사되는 열까지, 일터는 이미 복합적인 폭염에 노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