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여름, 더운 겨울...인간이 만든 '인류세 계절'
올해 한국은 40도에 육박하는 역대급 폭염에 갇혔고, 샌프란시스코는 43년 만에 7월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하면서 '추운 여름'을 맞고 있다. 같은 여름인데 전혀 다른 계절이 펼쳐지고 있다. 이제는 날씨 변화를 넘어 계절 개념 자체가 흔들린다는 분석이 나왔다. 인간이 만든 '인류세 계절'이 도래하고 있다는 경고다. 인류세는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과 생태계를 지질학적으로 바꿀 만큼 강력해진 시대를 뜻한다.
런던정경대학교와 요크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Progress in Environmental Geography'에 발표한 논문에서 "기후위기 시대 계절은 더 이상 과거와 같지 않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를 '인류세 계절성(seasonality in the Anthropocene)'이라 명명하며, 오늘날 계절 변화가 다음 네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①사라지는 계절
기후변화로 특정 계절이 더는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경우다. 겨울철 강설량 감소로 북미와 유럽 스키 대회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사례가 이어졌다. 최근 미국 FIFA 클럽월드컵에서는 기록적인 폭염에 직면하면서, 월드컵 개최 시기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연구에 인용된 자료에 따르면 영국 북동부 연안에서는 바닷새 번식기가 더 이상 관찰되지 않자, 지역 주민들이 "새 계절이 사라졌다"고 인식한 사례도 있다.
②새로운 계절
인간 활동이 만든 새로운 계절이다. 동남아시아에는 '스모그 시즌'이 있다. 매년 3~4월 건기 말, 태국 치앙마이 지역 주변 대규모 안개와 미세먼지가 반복되면서 자리 잡은 계절이다. 또 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몇 년간 수십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변에 밀려들어 '쓰레기 시즌'이라는 계절이 생겼다. 올해도 현지 자원봉사자들이 6일간 25톤 쓰레기를 수거했다.
③엇나간 계절
계절 시점이 앞당겨지거나 늦어져 리듬이 흐트러지는 현상이다. 봄꽃이 겨울에 피거나, 여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는 올해 2월 산림청이 발표한 '2025년 봄철 꽃나무 개화 예측지도'에서 "겨울 기온이 길어져 개화 시기가 지난해보다 늦어질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벚꽃이 겨울에 피는 모습도 보였다.
④강도가 달라진 계절
계절은 그대로지만, 강도가 예전과 다르다. 폭염, 폭우, 한파 같은 기상이 더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울은 올해 1994년 이후 두 번째로 더운 7월을 기록했고, '괴물 폭우'가 남부 지역을 덮치면서 수많은 인명피해가 이어졌다. 이 가운데 날씨 재난을 '뉴 노멀'로 받아들여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연구진은 이런 계절 변화가 단순한 이상기후가 아닌, 사회 전체 시감각과 일상을 흔드는 구조적 변화라고 분석했다. 농업, 노동, 에너지 소비, 건강 관리 등 수많은 사회 시스템이 계절 리듬을 기반으로 설계돼 있어서다. 예측할 수 없는 계절은 곧 계획의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또 계절을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된 시간 질서'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계절은 기후와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시간 감각인데, 그 감각이 오늘날 무너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추운 여름', '더운 겨울'처럼 기후위기로 흔들리는 전제가 하나둘 늘어갈지도 모르겠다. 사계절이 재구성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