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대응 안 하면 불법"...국경 뛰어넘는 조별과제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각국은 기후위기라는 전 지구적 위협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할 의무가 있다"는 권고적 의견을 내놓았다. 기후위기가 전 인류의 공통과제라는 점을 법적으로 공식화했다.
기후위기는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인류가 협심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조별과제'로도 불린다. 그런데 조별과제라는 단어에는 역할 분배에 앞서 서로 눈치 보며 미루거나, 비협조적인 조원 탓에 성실한 조원 역할이 과중해지는 등의 비극을 초래하지 말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23일 발표한 권고 의견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고 완화하며, 결과에 적응하고 책임을 묻는 데 있어 모든 국가는 법적 의무를 진다"고 밝혔다. 특히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한다는 파리협정의 목표 달성을 위한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설정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감축 목표가 각국 자율에 맡겨져 있어도, '무제한 재량'이 아닌 과학과 국제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해석이다.
기후대응을 하지 않으면 위법행위가 될 수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전 세계가 약속한 조항과 국제법을 근거로 제시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당사국들의 책임(CBDR) 원칙에 따라 기후변화 방지를 위해 협력할 것을 규정하고 있으며, 파리협정은 제2조에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보다 아주 낮게, 가능하면 1.5도 이하로 제한한다는 목표를 명시하고 있다. 제4조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수립-제출하고 갱신할 의무, 제7조는 국가 대응계획 수립, 제13조는 모니터링을 위한 투명성 확보를 규정하고 있다.
또 관습국제법상 원칙인 '국경을 넘어서는 중대 피해 방지 의무'와 해양법협약 제194조, 인권 관련 국제조약 등도 기후변화 대응 의무의 법적 근거가 된다.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국가로부터 피해를 본 국가는 손해배상 등 책임을 국제법상으로 물을 수 있다는 해석을 포함한다.
이번 권고는 유엔총회 요청에 따라 시작된 절차로, 91개국과 수십 개 국제기구가 의견서를 제출하는 절차 끝에 이루어졌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사회에서 법적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는 해석으로 간주된다.
지난해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판단을 헌법재판소가 내렸다. 2020년 제기된 '청소년기후소송' 사건에서 헌재는 2023년 9월, 정부가 법률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장기계획(2031~2050)이 부재한 점을 문제 삼아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35% 감축"을 명시했으나, 이후 구체적 감축 경로가 없어 전환기에 있는 청구인의 생존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헌재는 국회가 2026년 2월 28일까지 해당 조항을 개정해 장기 감축 목표를 명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내 시민단체도 ICJ의 이번 권고를 환영했다. 기후단체 플랜1.5는 24일 논평을 내고 "ICJ는 1.5도 목표 달성을 위한 감축 목표 설정의무를 명시했으며, 이행하지 않으면 국제법상 책임이 따를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은 OECD 내 온실가스 배출량 5위, 세계 누적 배출량 15위로 책임과 역량에 따라 2035년까지 2019년 대비 최소 60% 이상 감축해야 한다"는 국제 NGO들의 기준을 강조했다.
플랜1.5는 "정부는 2025년 중으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유엔에 제출해야 하고, 국회는 헌재 결정에 따라 장기 감축목표를 법제화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번 ICJ 권고를 적극 수용해 국제적 책임에 부합하는 목표 수립과 입법을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