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청주에 가면 언제든 물장군 만날 수 있다

물장군 복원의 기록

2025-07-14     이강운 대기자

바람 한 점 없이 작열하는 태양에 36~37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날. 풀과 나무들도 데인 듯 축 늘어져 후줄근하다. 올해 여름은 일찍 찾아왔고 낮⦁밤을 가리지 않고 뜨겁다. 그러나 '충분히 뜨거운 여름'이어야만 물장군은 짝을 짓고 번식을 시작한다. 뜨거운 계절의 신호를 기다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70개체씩 210개체의 물장군을 방사한 청주 상당산성 습지를 찾았다. 

가슴까지 오르는 장화를 신고 수초 사이를 족대로 헤집으며 방사한 물장군 찾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필자를 지켜보던 동네 아줌마는 처음에는 뭔가 미심쩍어하는 눈빛으로 경계의 눈초리를 주더니 이내 멸종위기종 물장군 이야기를 듣고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생태복원이나 멸종위기종이라는 전문 용어는 잘 몰랐지만 막상 우리 동네 청주 상당산성 습지에서 ‘사라져가는 생물’인 물장군을 볼 수 있다니 즐거우셨나보다. “오늘 딴, 올해 처음 토마토예요. 더우실 텐데 잠시 쉬면서 드세요”    멸종 위기에 빠진 생명을 되살리려 애쓰는 필자의 진심을 알고 있다는 동네 아주머니의 따뜻한 응원. 정말 고마웠다.

7월 8일 청주 상당산성 물장군 모니터링.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증식된 멸종위기종을 자연에 방사하는 이유는 단순한 개체 수 회복을 넘어서 생태계의 건강성 회복과 생물다양성 보전이라는 더 넓은 목표를 위해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자연 방사(野生放飼, reintroduction 또는 release)된 개체가 자연으로 돌아가 생존과 정착, 개체군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하므로 시행하기 전 매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방사 전 준비 작업을 단계별로 정리해보면 첫 번째 종에 대한 정밀 생태 연구로 충분한 개체 수를 확보해야 한다. 두 번째는 방사지 선정 및 서식지 평가를 하고 마지막으로 방사 후 모니터링을 통해 위협 요인을 분석하고 대응 시나리오를 구축하는 순서다. 

물장군은?

액면 그대로 해석해도 물에 사는 장군! ‘물장군’이라는 이름은 단지 겉모습에서 비롯된 장난스런 표현이 아니라 생태적 특징과 행동이 장군의 이미지와 정확히 부합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값을 충분히 한다.

곤충이 크다고 하지만 장군감이라고 하면 도대체 얼마만한 크기를 말할까? 커 봐야 10mm 내외인 곤충이 대부분인 나방이나, 1~5mm가 거의 전부인 딱정벌레 종류와 비교하면 70mm에 달하는 물장군의 크기는 공룡처럼 압도적이다.  몸집도 크고 짙은 갈색의 날개는 갑옷처럼 두툼하며 단단해 보인다.

물장군 크기 비교.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물장군은 논, 연못, 습지 등에서 살아가는 육지의 호랑이 같은 놈이다. 작은 물고기, 올챙이, 다른 곤충을 사냥하며, 자신보다 큰 먹잇감도 공격한다. 황소개구리까지 거침없이 잡아먹는 물장군은 용맹하고, 전장을 지배하는 장군의 모습과 닮아 있다.

유튜브 황소처럼 큰 황소개구리를 물장군이 먹고 있어요

 

유튜브를 시청하신 분 중에 물장군이 과연 자기 몸집 3배나 되는 그 큰 황소개구리를  과연 사냥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표하신 분이 있지만 물장군에게 먹이의 크기는 상관없다. 

물장군은 입으로 씹거나 삼켜서 먹는 것이 아니라, ‘찌르고 빨아먹는 형태이므로 소화 효소를 먹이의 몸속에 주입한 뒤, 먹이의 체내 조직이 녹아 액체가 되면 그것을 빨아먹는 방식이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단 한 번의 사냥으로 오랫동안 먹지 않아도 되는 전략이므로 되도록 큰 놈을 골라 먹으려 한다. 침노린재를 비롯한 포식성 노린재류는 모두 외부소화의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 

다리무늬침노린재.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대부분의 곤충이 알을 낳는 순간 자식들이 ’스스로 알아서 살아내라‘고 내치지만 일정 수준의 ‘부모 돌봄(parental care)’을 하는 반사회성(subsocial) 곤충들이 있다. 소똥구리, 송장벌레와 같이 어른이 될 때까지 양육과 먹이를 제공하는 육아 형 반사회성 곤충이 있고, 알에서 부화할 때 까지만 품어주는 조절

형 반사회성 곤충인 물장군이 있다. 

소똥구리.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개구리 시체를 굴려 애벌레가 살 볼을 만든 검정송장벌레. (사진 이강운 대기자)

소똥구리, 송장벌레는 땅 속에 숨어서 암⦁수 한 쌍이 돌보니 그나마 안전하다. 그러나 물장군은  물 바깥 수초에 알 덩어리(Cluster)를 노출시켜 물속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양의 자외선, 치명적인 온도 변화와 천적들이 활개 치는 환경에 직면한다. 이 어려운 일을 오롯이 수컷 혼자서 책임진다. 그래서 물장군 증식의 핵심은 수컷이다.

알을 보호하는 수컷 물장군.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유전적 다양성‘이란 단어는 자주 접하는 단어이지만 얼마나 중요한지는 체감하기 어렵다. 곤충처럼 개체군 크기가 작고 계절, 월별로 몇 번씩 빠르게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생물은 유전적으로 다양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물장군과 마찬가지로 덩어리로 알을 낳는 꼬리명주나비로 근교약세 실험을 했다. 한 배에서 나온 나비로 짝짓기를 시켰을 때 짝짓기 자체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겨우 낳은 알조차 부화가 되질 않아 생존율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꼬리명주나비 알 덩어리.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멸종위기종 인공증식 프로그램에서 근교약세를 방지하여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는 일은 방사 후 개체군의 생존과 유전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핵심적인 항목이다. 다른 지역에서 물장군 채집은 불가능하므로 유전적으로 거리를 두는 방식을 사용했다. 

아비는 누구고 어미는 누구며 몇 년에 태어났는지를 정리하여 개체별 고유번호 및 모·부계 계보를 작성하고 한 눈에 식별하기 좋게 등에 인식 번호를 부여했다. 아비, 어미를 다르게 교차 교배하며 종내 유전적 다양성이 유지되었고  유전적 병목 현상 없이 20여 년째 대를 이어 잘 보전하고 있다.

개체별 고유번호.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이렇게 건강하게 잘 키운 물장군을 방사하기 전 마지막으로 야생성 적응 훈련을 한다. 사육실 내에서 길러진 개체를 자연과 비슷한 환경으로 조성한 야외 실험실에서 짝을 찾고, 포식자를 피하고 먹이를 찾는 과정을 경험하게 해준다. 

물장군 야생성 적응 훈련 야외 실험실.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종에 대한 정밀 생태 연구로 충분한 개체 수를 확보했으므로 다음 단계는 물장군 방사할 적지를 찾아내는 일.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사전 조사를 통해 방사 후 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지를 철저히 조사했다. 유속이 매우 느린 연못·습지의 정수형 수역이고, 물장군이 산란하는 데 꼭 필요한 수초가 풍부했고 물장군의 엄청난 식사량을 채울 수 있는 개구리, 올챙이, 각 종 물고기가 풍부한 청주 상당산성 습지가 적지로 선정이 됐다. 

청주 상당산성 습지는 많은 시민들이 찾는 관광지라 야간 안전을 위해 가로등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물장군은 야행성 곤충이라 빛에 이끌려갔다가 물로 되돌아오지 못해 로드킬을 당하거나 사람에게 밟혀 죽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서식하기에 좋은 자연 환경에 물장군을 위해 가로등의 각도를 바꾸어 빛에 의한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는 청주시의 세심한 배려가 환경을 더욱 좋게 만들었다. 

수질이 조금만 나빠도, 수초가 없으면, 수온이 맞지 않으면, 심지어 수컷이 잠깐 자리를 비워도 알은 말라 죽거나 먹히고 만다. 이렇게 섬세한 곤충인 물장군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해 방사했지만 첫 해인 2023년은 단 한 개체도 발견할 수 없었다.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다 맞춰주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2024년 몇 개의 알 무더기와 2령, 3령 애벌레를 확인하고 희망을 키웠는데 올해는 채집 도구를 넣기만 하면 나온다. 

그 동안 전라북도 익산, 고창과 강원도 횡성, 충청남도 아산에 방사를 했지만  정착에 실패했다. 필요한 조건을 맞춰주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반복되는 실패 속 한 줄기 생존의 신호를 청주에서 보고 있다. 해가 갈수록 개체 수도 늘고 여러 단계의 애벌레가 나타나면서 생활사가 잘 유지되고 있다. 물장군은 단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자손의 자손으로 대를 이어 살아가면서 생태 복원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청주 상당산성 습지에 가면 언제든 물장군을 만날 수 있다.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