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20% 야생동물에게 내주면 생기는 놀라운 일

2025-06-24     이동재 기자
과학자들이 농지의 20%를 야생동물에게 내어주면 인류의 식량 안보를 지키면서도 생물다양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농지가 사람을 위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야생동물을 위한 공간일 수 있을까. 과학자들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영국 생태수문학센터와 스페인 알칼라대학교의 연구자들이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과 생물다양성 회복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체 농지의 20%를 자연에 내어주는 방안을 제안했다.

연구진은 지구상 농지의 5분의 1을 숲, 습지, 초지 등으로 되돌려 생물의 안정적 서식지를 확보하고, 나머지 농지에서도 연못, 잡초 지대 같은 ‘녹색 회랑’을 배치해 생물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번식할 수 있도록 하면 인류의 식량 안보를 지키면서도 생물다양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농지의 20%를 야생동물을 위한 공간으로 남겨두고, 추가 10%를 생물다양성 회복에 활용하면, 국제 사회의 생태계 복원 목표인 ‘30x30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30X30 목표는 2022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15차 총회에서 채택된 국제 사회의 목표로 '지구 환경 30%를 보호하고 훼손된 자연 30%를 복원하자'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나머지 80%의 경작지 중에서도 약 10% 정도를 꽃밭, 곤충 서식지, 새를 위한 횃대 등 생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해야 하며, 농사 방식에 있어서도 화학 제품 사용을 줄이고 방목을 늘리는 등 생태계 회복력을 고려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연구진이 제시한 수치는 농업 지역이 생태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 20%의 자연 서식지(native habitat)가 필요하다는 기존의 연구 결과와, 경작지의 10% 이상을 ‘생물다양성 기능 요소’로 유지할 것을 제안한 유럽연한(EU) 생물다양성 전략 등에 기반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이와 같은 기준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농지 자연 회복 방안을 제시한 셈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접근을 통해 식량 생산과 생물다양성 보존 사이의 대립 구도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임스 불록 교수는 “생물다양성 손실과 생태계 붕괴는 결국 인간의 식량 안보를 위협할 수밖에 없다"며, "자연 회복은 지구를 위한 일이자 농업 자체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말했다.

"살아있는 토양 생태계는 지속가능한 농업의 기반"

1940년대 이후 전 세계 농업은 화학 비료, 농약, 대규모 경작을 통해 식량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왔다. 그러나 동시에 야생동물의 서식지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생물다양성이 급격히 감소했다.(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1940년대 이후 전 세계 농업은 화학 비료, 농약, 대규모 경작을 통해 식량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왔다. 그러나 동시에 야생동물의 서식지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생물다양성이 급격히 감소했다. 

습지, 초원 등 농장 주변에서 자연적 요소들이 제거되면서 조류와 곤충, 중소형 포유류가 자취를 감췄다. 영국에서는 1970년 이후 야생 조류 4천만 마리가 사라졌고, 절반 이상의 유럽 국가에서 야생벌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사라진 생물들은 단순히 야생동물이 아니라 농업의 기반이기도 했다. 새는 농작물에 피해를 끼치는 해충을 잡아먹고 야생벌은 작물의 수분을 돕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생물들이 비옥한 토양의 기초가 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야생동물이 줄어들수록 인공적인 해충 방제와 수분이 필요해지고, 이는 더 많은 비용 지출과 불안정성으로 이어진다"며, "생태계 서비스의 붕괴는 곧 농업 시스템의 취약성으로 되돌아온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농지 면적이 작거나 토지 여건이 불리한 농가에서는 이같은 제안의 실행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 단위 협력을 통해 집단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호세 마리아 레이 베나야스 교수는 “곰이나 들소 같은 대형 야생동물은 복원에 어려움이 따르지만, 스라소니, 산토끼 등 지역 생태계에 맞는 중소형 동물의 복원은 충분히 가능하다”며 “정부가 지역 조건에 따라 적절한 생물을 선택하고, 농업 종사자들이 생물다양성 회복에 나설 수 있도록 보상과 세제 혜택 같은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