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⑳] ‘친환경’이 자연을 위한다고?
6월 뜨거운 열기가 발산하는 에너지를 받아 열매를 맺고, 여무는 여름이 시작됐다. 30도를 오르내리는 열기와 습도로 사람들은 피하고 싶은 계절이지만 모든 생물들의 활동이 왕성해지는 생명의 계절이다.
특히 곤충 생태계는 변신의 속도가 가장 빠른 계절이다. 벌써 2번 째 세대가 시작 된 꼬리명주나비는 알을 낳고 2~3일 후면 부화(孵化)한다, 이른 봄에 나왔지만 성장 속도가 느린 애호랑나비 애벌레는 마지막 껍질을 벗고 올 겨울을 날 번데기로 바뀌고 있다.
약 일 주일 먼저 나와 암컷을 기다리던 멸종위기종 I급 붉은점모시나비 수컷은 암컷을 만나자마자 거칠게 짝짓기를 하고 더 이상 다른 수컷과 만나지 못하도록 암컷 배 끝을 마개로 막아 버린다. 짝짓기를 마친 하얀 날개, 붉은 빛 무늬가 화려한 붉은점모시나비가 며칠 전부터 세대를 이을 알을 낳기 시작했다.
물을 첨벙거리며 잔물결을 일으킨 물장군 암컷의 구애를 받아들인 수컷이 짝을 이뤘다. 특별히 물풀에 알을 낳는 습성이 있는 물장군을 위해 버드나무로 산란목을 세워주자 바로 70여개 알을 낳았다. 멸종위기종 Ⅱ급 물장군 수컷은 부성애를 발휘해 산란목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알을 보호하고 수분을 제공한다.
멸종위기종 Ⅱ급 금개구리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알 낳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미 산란을 하고 알이 부화되어서 올챙이로 씩씩하게 커야 할 놈들이 먹기만 하고 번식을 하지 않고 있다. 자연 상태를 응용해 거의 완벽한 서식 조건을 조성했는데 문제가 뭘까? 적당 온도로 물도 따뜻하게 해 주었고 메뚜기, 귀뚜라미, 거미와 애벌레까지 최상의 먹이도 제공하는데 눈만 껌뻑거린다. 애가 탄다.
말똥을 둥글게 말아 파묻을 장소를 찾아 소똥구리 암·수 한 쌍이 열심히 움직이는데 쉽지 않다. 알을 빼앗으려는 다른 수컷을 쫓아내고 겨우 고른 장소가 영 마뜩찮다. 땅이 너무 딱딱해서 집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구멍을 만들어 경단과 소똥구리를 살짝 들어 올려 옮겨주자 좋아라 알을 묻는다.
멸종위기종들을 위기에서 구출해 증식을 하면서 생명을 구한다는 자부심은 있지만 마냥 신나할 수만은 없다. 기본적으로 생물학은 전문성에 근거한 노동집약적인 일이지만 멸종위기종 살리기는 훨씬 손이 많이 간다. 서식 환경을 조성하는 일부터 온도와 빛 그리고 먹이와 짝짓기 할 파트너까지 상전을 대하듯 다 맞춰주어야 한다.
초식동물의 똥을 찾는 소똥구리와 살아있는 물고기만을 먹는 물장군은 매일이 특식이다. 소똥구리가 먹는 똥은 방목한 소의 똥을 수거한 후 냉동고에 미리 얼려 주어야 파리 발생을 막을 수 있고, 물장군은 물고기를 먹은 후 뒤처리를 깨끗이 해야 병에 걸리지 않는다.
요즘은 붉은점모시나비, 금개구리, 소똥구리와 물장군 4종의 멸종위기종이 동시에 번식을 하므로 쉴 틈이 없다. 주행성인 붉은점모시나비와 소똥구리는 새벽 5시부터 해 질 녁까지, 낮보다 밤에 활동하는 금개구리와 야행성인 물장군은 주로 밤에 관리를 해야 한다.
밥 달라, 깨끗이 치워다오, 천적한테 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 달라는 멸종위기종들의 주문으로 정신없이 바쁘지만 망중한이 있었다. 잠시 아름다운 꽃나무 밑 그늘과 연구소 앞 섬강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땀을 식힐 수 있어 다행이었는데 이젠 이마저도 할 수가 없게 됐다.
잠간 쉬기 위해 평상에 앉으면 벌겋게 속살이 드러난 산 정상부가 눈에 저절로 들어온다. 태양광 발전을 한다며 벌써 몇 개월 째 산을 깎고, 숲을 밀어내 푸른 숲이 사라졌다. 산의 신음 소리가 들려 화를 멈출 수 없다.
늘 귀를 즐겁게 해 주었던 새 소리 대신에 요란한 굴착기의 굉음이 귀를 괴롭히고 산자락의 돌과 흙을 퍼 나르는 차량의 흙먼지로 맑고 고왔던 식물들의 잎은 먼지로 켜켜이 쌓여 뿌옇게 변했다. 3년 전 바로 옆 동네인 강원도 둔내의 대형 산사태도 결국 산지의 급경사면을 깎아 태양광발전소를 세우는 과정에서 산림 파괴·토사 유출로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파괴적 성장을 계속 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태양광 확대는 필수이나 산림과 습지를 훼손하면서 만든 태양광은 자연을 파괴한 전력(電力)일 뿐, 녹색이라 부를 수 없다. “친환경”이라는 말이 자연을 위한다는 뜻이었는지 되묻게 된다.
어떤 이는 ‘요즘 드라마 보는 것보다 뉴스 보는 게 더 즐겁다‘고 했다. 공감할만한 일이다. 현실 정치와 사회가 그만큼 드라마틱하다, 아니 더 심각하고 중요한 사건으로 가득하다는 뜻이다.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뉴스의 주요 장면이 매일 방영되며 희망을 주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멸종위기종을 증식·보전하기 위해 국제 수준의 생태계 및 생물다양성 보전 정책을 약속했다. 보전 정책을 실행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훼손 대신 공존을 선택하고 진정으로 ‘친환경’이 되는 태양광 전략을 세워야 한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태양광 확대는 필수이나, 입지 선택을 제대로 해야만 생태계 보전 전략의 첫 걸음을 뗄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은 생태적 정의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대 전제하에 우선 입지 전략을 세워야 한다. 토지 이용의 환경영향을 최소화하려면 이미 개발-훼손된 땅부터 활용하는 원칙을 각 기술·공간에 적용하면 간단하다. 2024년 국제 비교 연구는 지붕형 설비가 동일 kWh당 토지 점유와 탄소발자국이 가장 낮다고 분석했다.
고속도로 휴게소, 산업단지 물류센터·대형마트·학교 체육관처럼 넓은 지붕은 즉시 활용도가 높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주차장 지붕 형 설비는 뙤약볕 아래 그늘이나 비가 올 때 큰 우산을 제공할 수 있는 추가적인 이점이 있다. 경관 훼손 적고, 생태계 파괴 없는 지역인 도로, 철도변 유휴지 고속도로 방음벽 위, 철도 인접 지역, 톨게이트 등도 주요 후보군이다.
산비탈 태양광 설치로 사람과 동물을 다치게 하고 양서류·곤충·조류의 번식 서식지인 습지, 하천변, 논 습지를 훼손하거나 금개구리·맹꽁이·등 멸종위기종 서식·이동 통로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생물 종들에게 치명적 피해를 준다. 차고 넘치는 좋은 입지를 놔두고 굳이 위험 지역을 선택하는 우를 절대 범해서는 안 된다. 또 쓸 데 없는 삽질을 막고 생물다양성과의 공존을 위한 에너지 정책은 입지 선정에 대한 원칙만 세우면 될 일이다.
30여 년 멸종위기종 연구를 하며 한 종 한 종 과학적 매뉴얼이 완성되면서 증식 종수는 늘어나는데 인력은 구할 수 없으니 온전히 부부의 몫이 되었다. AI나 로봇이 나온다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힘만으로 가능하므로 대체할 수가 없고 무한 반복되는 노동이 힘들어서 집 나간 자식들을 돌아오게 할 방법도 없다.
멸종위기종이나 생물다양성에 대한 너무나 당연한 국가적 책임을 회피하고 지키면 좋다는 식의 안일한 사고를 갖고 있는 환경부에게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지만 백년하청! 드라마보다 더 극적으로 멸종위기종을 보전하고 지킬 수 있는 강제력 있고 실효성 있는 법이 ‘짠“하고 시행되면 좋겠다.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