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대선] 멸종위기 대응...정치 의제 될 수 있을까?
제21대 대선에 발 들인 생물다양성 공약 "멸종위기종 보호, 정치 의제에 포함돼야"
갑작스럽게 치러지는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이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갈등을 넘어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도 예전처럼 기후위기 대응이나 생물다양성 보전 관련 공약은 상대적으로 뒷전"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환경이나 멸종 관련 의제가 '먹고 사는' 문제에 밀린다는 문제 제기겠지요.
대권에 도전하는 주요 후보자와 정당이 어떤 기후공약을 내놓았는지, 그 공약을 실현할 구체적인 정책 설계와 실행 계획은 있는지, 앞으로 기후 문제가 정치 의제로 지금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을지 3회에 걸쳐 점검합니다. [편집자 주]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생물다양성'이라는 단어가 주요 후보 공약에 포함됐다. 보호구역 확대, 생태계 복원과 같은 키워드가 대선 공약집에 등장한 것은 이례적인 사례라는 평가다. 2025년 들어서야 공식 의제에 올랐다는 사실은 뒤늦은 움직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정치 의제로서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동안 생물다양성은 대선 공약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거나, 환경부 단위의 단편적 계획에 머물렀다. 이 같은 변화에는 시민사회의 정책 제안이 있었다. 전국 227개 환경·시민단체로 구성된 '멸종위기종대선정책연대'는 지난 4월, 각 정당에 멸종위기종 보전과 생물다양성 회복을 위한 정책을 제안했다.
연대가 제시한 정책은 총 20개다. △30x30(2030년까지 보호지역 30% 확대) △중앙 컨트롤타워 설립 △대규모 개발사업 생태검토 강화 △로드킬 및 조류충돌 저감 △생물다양성 법제 정비 등이 포함됐다.
제안서에 대한 정당들의 응답은 갈렸다. 이 정책에 공식적으로 응답한 후보는 두 명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20개 전 항목을 전면 수용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7개를 전면 수용하고, 13개는 조건부 수용했다. 이후 양측은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이재명 후보는 28일 공개한 최종 공약집에서 '한반도 생물다양성 복원'과 '국제적 수준의 생태계·생물다양성 보전'을 환경 8대 공약 중 하나로 제시했고, 대선 10대 공약 마지막 항목에도 생물다양성 관련 정책을 포함했다.
공약집에는 10대 공약보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멸종위기종대선정책연대가 제안한 정책들이 다수 반영된 내용이다. △보호지역 통합관리체계 구축 △해양보호구역 확대 △국가 차원의 생물안보 체계 강화 △습지 탄소흡수원 인증(IPCC 기준) △로드킬 및 조류충돌 저감 방안 △공공 생태서비스 구축 등이 명시됐다. 특히 10대 공약 중 하나로 포함된 '4대강 재자연화' 항목에는 보 철거, 신규댐 설치 폐기, 생태복원 및 오염원 저감 등 내용이 추가됐다.
앞서 뉴스펭귄은 주요 후보 '생물다양성 공약'을 비교하면서 "일부 후보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이를 제시하지 않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에게 관련 내용을 질의했으나, 28일 기준 두 후보 모두 공약 미포함 사유 및 향후 계획에 대해 답변하지 않고 있다. 멸종위기종대선정책연대가 제안한 정책에도 두 후보는 응답대기 또는 무응답 상태다.
멸종정치 없는 이유..."전문성과 정책 일관성 결여"
해외에서는 생물다양성 보전이 주요 선거 공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영국 총선에서는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정책이 통합적으로 제시됐다.
당시 노동당은 공약집에 "멸종을 방지하고 자연 회복 목표를 법제화하겠다"는 내용을 담으면서, 해양보호구역 확대와 지속 가능한 토지이용 계획을 함께 발표했다. 녹색당은 '생물다양성 순손실 제로(Net Biodiversity Loss)' 정책을 제시하며, 법적 구속력을 갖춘 보호 목표를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두 정당 모두 생물다양성을 기후위기 대응 전략의 핵심 요소로 다뤘다.
반면 한국에서는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은 분리된 문제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기후위기는 에너지 전환, 탄소중립 등 산업 정책과 연결되며 명확한 프레임을 형성하고 있지만, 생물다양성은 다양한 분야에 흩어져 있어 정치 의제로 주목받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멸종위기종대선정책연대 정책팀 김현태 활동가는 <뉴스펭귄>과의 통화에서 "기후위기는 산업과 에너지, 탄소중립이라는 중심축이 있어 하나의 의제로 통합되지만, 생물다양성은 종마다 서식지와 보호 방식이 달라 범용적인 정책이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전문성과 정책 일관성의 결여가 일차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 지정된 멸종위기종은 282종이다. 이들 모두 포유류, 조류, 양서류, 곤충류 등 10개 분류군으로 나뉘며, 법 적용 방식과 관리 기관도 각각 다르다. 김현태 활동가는 "전문가 간에도 분야가 나뉘어 있어 소통이 쉽지 않고, 이를 통합할 컨트롤타워가 부재해 생물다양성 보전이 중앙 정책에서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생물다양성, 즉 멸종위기종이 정치 의제가 되기 위해선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종별 전문성, 법제도 정비, 실행 가능한 중앙 정책 거버넌스가 선결 과제로 꼽힌다. 멸종위기종대선정책연대가 제안한 '국립생태계서비스청 신설' 역시 이러한 요구를 반영한 구조적 대안이다.
다만, 늦은 시작이라도 의미는 있다. 김 활동가는 "수달, 산양, 독수리 등 우리가 직접 알고 있는 생물들이 하나둘 사라진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며 "이제는 기후위기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위기라는 새로운 틀에서 종 보전과 생물다양성을 함께 다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치의제에서 생물다양성은 이제 겨우 발을 들였다. 정책의 영역 안에서 담긴 첫 문장은 이번 대선을 시작으로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 김현태 활동가는 "이번 대선은 생물다양성이 정치의제에 발을 들인 첫 출발선"이라고 평가했다.
<연재 순서>
1. 목표는 뒷전에 있고, 계획은 없는 '기후공약'
2. 주요 후보 '생물다양성 공약' 비교
3. 멸종위기 대응...정치 의제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