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 지렁이 빨아먹던 괴물 달팽이...아이러니한 멸종위기
레몬 크기의 대형 달팽이를 지키기 위해 울타리까지 쳤다. 지렁이를 스파게티 빨아먹듯 후루룩 사냥하던 뉴질랜드 고유종 육식 달팽이 '포웰리판타 호크스테테리'가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위태로운 무척추동물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포웰리판타 호크스테테리는 한때 비 오는 밤이면 도로를 뒤덮을 만큼 흔했다. 하지만 외래 포식자인 쥐와 족제비의 침입과 서식지 파괴로 개체수가 급감하면서 뉴질랜드 보존부는 이 달팽이를 '국가위기종(Nationally Critical)'으로 지정했다.
최근에는 예상치 못한 위협이 나타났다. 뉴질랜드 고유종 조류 웨카(Weka)가 복원 활동으로 되돌아오면서 달팽이를 먹이로 삼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아벨태즈만 국립공원에서 고유종 보존에 노력해온 단체 '얀손 프로젝트' 연구팀은 외래종을 통제해 고유종을 되살리는 성과를 거뒀다. 웨카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웨카 개체수가 늘면서 포웰리판타 달팽이는 오히려 감소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연구팀이 수백 개의 죽은 달팽이 껍데기를 분석한 결과 껍데기에 뚫린 작은 구멍은 쥐의 공격 흔적이었고, 깨끗하게 부서진 껍데기는 웨카가 날카로운 부리로 깨뜨린 흔적이었다. 그 결과, 전체 70%가 웨카의 공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연구팀은 웨카의 접근을 막기 위해 달팽이 전용 울타리를 설치했다. 달팽이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웨카는 통과하지 못하도록 구멍 크기를 조정했다.
얀손 프로젝트을 이끄는 루스 볼롱기노 연구팀장은 "달팽이 개체수가 줄어든 지역과 웨카가 출현한 지역이 정확히 일치한다"며 "외래종 통제만으로는 생태계 균형을 회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역에서 5년 안에 포웰리판타 호크스테테리가 멸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위기도 위협 요소다. 최근 9개월간 이례적인 가뭄으로 토양이 건조해지면서 달팽이가 숨어서 먹이를 섭취할 잎사귀도 줄었다. 볼롱기노 연구팀장은 "성체는 버틸 수 있지만 어린 달팽이는 가뭄으로 쉽게 죽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이 달팽이는 푸른색 몸에 초콜릿색과 캐러맬색 무늬가 섞인 껍데기를 지니며 수명은 최대 20년에 이른다. 자웅동체로, 짝과 정자를 주고받아 체내에 저장한 뒤 스스로 알을 낳는다. 생식공이 머리 바로 아래 오른쪽에 있어 껍데기에 싸인 상태에서도 짝짓기와 산란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