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대선] "위기 앞에서 마치 산책하듯"...기후토론에 실망한 사람들

2025-05-26     우다영 기자

지난 23일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TV토론회에서 기후위기 대응이 사상 처음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후보 4인(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민주노동당 권영국)은 각기 다른 입장을 내놨지만 온실가스 감축 목표나 국제적 책무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실질적 논의는 부족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사진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초청 2차 토론회 - [LIVE] MBC 중계방송 화면 캡처)/뉴스펭귄

이재명 후보는 "전 세계가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넘어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9%대에 머물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중심 산업단지 조성과 송전망 확충, 산업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온실가스 감축 목표 등 구체적 수치는 제시하지 않았다.

김문수 후보는 "온실가스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 에너지는 원자력"이라며 원전 확대가 현실적 대안임을 주장했다. 조력·풍력 등 재생에너지도 병행하겠다고 했으나, 탈핵이나 핵폐기물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준석 후보는 "과학과 상식, 국제 기준에 기반한 합리적 기후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감축 목표나 에너지 전환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환경정책의 일부 사례를 지적하며,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권영국 후보는 "10대 대기업과 부유층이 온실가스 43%를 배출한다"며 '기후정의세' 도입과 공공 재생에너지 전환, 탈핵을 공약했다. 이날 후보 중 유일하게 '온실가스'를 언급했다.

이날 토론회는 기후위기를 둘러싼 인식 차이와 접근법의 간극이 드러났다. 특히 2035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제출을 앞두고 있음에도, 어느 후보도 관련 계획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핵심 논의가 빠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시민사회는 기후의제를 다룬 첫 대선 TV토론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걸었다. 기후위기비상행동과 기후정치바람 등이 함께 진행한 '기후 단일의제 토론회 요구 캠페인'의 성과로 여겨졌으나, 정작 토론회에서 드러난 후보들의 인식 수준과 공약 내용은 실망스러웠다는 비판이 나왔다.

4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기후위기 단일 의제 TV 토론회' 개최를 촉구했다. (사진 기후정치바람 제공)/뉴스펭귄

기후위기비상행동은 24일 논평에서 "설익은 선입견이 난무했고, 기후재난에 대한 진지함은 사라졌다"며 "후보자들은 기후위기의 시대에 전향적 전환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공공 재생에너지, 탈원전, 기후대응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이 주요 후보들의 공통된 한계였다"고 꼬집었다.

특히 이준석 후보는 실질적인 기후공약이 없었다는 점에서 "기후 없는 이준석"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김문수 후보는 '중국산 부품' 등 발언으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편견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았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기후위기 앞에서 산책하듯 돌아 나오는 모습에 실망했다"면서도 "기후정치인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한 자리였다"고 밝혔다.

기대 모았던 첫 '기후 토론', 남은 건 아쉬움과 과제

기후위기비상행동 김은정 공동운영위원장은 뉴스펭귄과 통화에서 이번 토론회에 대해 "단순 실망이 아니라, 분노스러울 정도였다"고 말하면서 "후보 누구도 기후위기의 구조적 전환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하지 못했고, 기후재난 대응이나 2035년 NDC 제출 등 핵심 사안도 다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앞서 '기후 단일의제 토론회 요구 캠페인'에 참여한 바, "이번 토론회가 기후 단일의제 토론을 요구해온 시민사회 캠페인의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봤다. 다만, "재생에너지도 결국 시장에 맡겨진 상태"라며 "앞으로 많은 한계가 예상된다. 실질적인 구조 전환이 과제로 남았다"고 강조했다.

일부 청년세대 단체 대표와 관계자 등도 역시 실망감을 표했다.

청년기후단체 빅웨이브 김민 상임공동대표는 "토론회가 어렵게 성사돼 현장에서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생중계로 지켜봤다"며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22년 제20대 대선 당시 '기후위기 원포인트 TV토론회'를 요구했던 캠페인을 주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이후 처음으로 성사된 '기후의제 토론회'였다. 그는 "특히 중요하게 봤던 쟁점은 대통령 취임 직후 기간인 9월까지 2035년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제출해야 한다는 점이었다"며 중요한 내용이 토론회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기후위기 관련 인식이 부재한 점도 지적됐다. 김 대표는 "미세먼지, RE100, 재생에너지, 원자력 등은 실제 전문가들이 연구해 온 축적된 지식이 있는데, 일부 후보들은 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밝혔다.

다만 기후의제는 지난 경제 분야 토론에서도 일부 언급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기후의제가 이번 2차 토론회뿐 아니라, 1차 토론에서도 AI와 전력 수요가 언급되면서 간접적으로 등장했다. 과거 대선에서는 기후가 단독 의제로 다뤄지기 어려웠던 점을 고려하면, 지금은 다양한 사회 의제와 기후가 함께 논의되고 있는 상황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케이팝포플래닛 박진희 캠페이너는 "기후의제를 다룬 첫 대선 토론이라는 점에서 큰 기대를 품었다. 투표권이 생긴 이후 처음으로 생방송을 끝까지 챙겨본 토론 방송이었는데, 비방과 공방에만 집중돼 실망이 컸다"고 말했다.

박진희 캠페이너는 "기후위기는 2030년까지가 골든타임이고, 차기 정부 임기 내내 그 시기를 책임져야 한다"며 "그럼에도 기후위기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방향성조차 없이 서로 공격하는 데만 치중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고 지적했다.

"상호 검증이 아닌 대안을 중심으로 한 토론"

이번 TV토론을 계기로 토론 형식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녹색전환연구소 이유진 소장은 "후보 간 상호질의 중심의 토론 방식은 오히려 핵심 주제를 흐리게 만들었다"고 지적하며 TV토론 형식 자체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 대응처럼 쟁점이 분명한 사안일수록, 각 후보가 공약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유진 소장은 "사회자가 2035 NDC 계획, 전력 믹스 구성, 석탄발전 전환 대책, 정의로운 전환 방안 등 핵심 정책에 대해 사회자가 직접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선 후보자 TV토론은 공직선거법 제82조의 2에따라 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며, 후보자 정책과 공약을 비교·검증하고, 유권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취지로 개최된다.

이 소장은 대선 토론 취지에 맞게 "각 후보가 자신의 공약에 대해 준비된 입장을 설명하고 검증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상호 검증 중심이 아니라 비전과 대안을 중심으로 한 정책 토론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