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다양성 풍부한 숲, 산불 막는 천연 방패막"

2025-05-22     이한 기자

여러 수종이 섞여 생물다양성이 높은 숲은 산불 피해를 적게 입는다는 주장이 나왔다. 풍부한 생태계가 재난의 방패막이 될 수 있음을 고려해 보전 정책을 강화하고 개발 시 주의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산불 피해가 적었던 주왕산 국립공원 내 너구마을. (사진 그린피스)/뉴스펭귄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 (보호받지 못한 보호지역: 보호지역 관리 실태 보고서 3)에 따르면, 다양한 수종이 혼재된 숲이 산불에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봄 의성군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을 계기로, 침엽수 단순림이 산불 피해를 키웠다는 논란이 제기되자, 연구진은 숲의 형태별 산불 확산 양상을 분석했다. 보고서는 폴란드 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 연구진과 공동으로 진행한 산불 시뮬레이션 결과를 인용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산림 연료습도가 낮을 때 침엽수 단순림은 산불 발생 2시간 만에 전체 산림 바이오매스의 약 30%가 연소된 반면, 혼합림은 20% 수준의 피해에 그쳤다. 같은 침엽수라도 단순림 내 침엽수의 피해가 혼합림 내보다 컸다. 이는 단일 수종으로 이뤄진 숲이 산불에 더 취약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또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 사례를 분석한 결과, 혼합림의 산불 피해가 가장 적었다고 밝혔다. 침엽수림과 활엽수림은 특정 지형에서 취약한 반면, 혼합림은 대부분의 지형에서 일관되게 낮은 피해를 보였다.

이시영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번 연구는 단순 사면형 지형에서 산불 확산을 재연한 것으로, 혼합림 내 활엽수의 실제 산불 저항성에 대한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면서도 “침엽수림에서 수관층으로 화재가 옮겨붙는 시뮬레이션 결과는 실제 산불 양상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현장 조사에서도 이 같은 경향이 확인됐다. 지난 4월 말 그린피스가 주왕산 국립공원을 답사한 결과, 침엽수가 밀집한 지역 마을은 극심한 피해를 입은 반면, 다양한 수종이 혼재된 너구마을 주변은 산불 피해가 거의 없었다. 주민들은 “주변 혼합림이 방화림 역할을 했고 위에서 아래로 바람이 부는 계곡 지형의 특성도 산불이 번지는 걸 막았던 것 같다”고 증언했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이번 연구와 현장 조사는 생물다양성이 높은 숲이 산불을 막는 천연 방패막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산불 피해 후 숲의 자연적 천이와 보호지역 확대, 생물다양성 보전 정책의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