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심해 속 초대형 화살벌레, 진화 미스터리 풀리나
남극 심해에서 유전 정보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커다란 플랑크톤과 약 350Kg에 달하는 열수광석이 채집됐다. 해양 생태계와 무척추동물의 진화, 생리 연구 등에 널리 이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2월, 남극 얼음 아래 2,000m 심해에서 과학계가 주목할 발견이 있었다. 극지연구소(소장 신형철) 박숭현 박사 연구팀이 자체 개발한 심해 채집 장비로 길이 10cm에 달하는 초대형 화살벌레(Chaetognatha, 모악동물) 실물을 채집했다. .
화살벌레는 원래 0.5~3cm가 일반적인 크기다. 바다를 누비는 중형 플랑크톤으로, 흔히 볼 수 있지만 이렇게 큰 개체는 매우 드물다. 2017년 남극 중앙해령에서 수중 카메라에 포착된 적은 있으나, 실물 채집과 외부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소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초대형 화살벌레 실물이 채집돼 외부에 공개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 거대한 화살벌레의 등장은 해양 생물학계에 신선한 충격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화살벌레는 유전 정보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종이지만, 유전체 크기는 약 10억 개 염기쌍으로 어류와 맞먹는다. 그동안 몸집이 작아 DNA 추출이 어려웠던 문제도, 이번 초대형 개체 덕분에 해결의 실마리가 열릴 전망이다. 연구소는 “남극 심해에서 큰 개체가 잡히면서 이러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극지연구소가 과거 북그린란드에서 30cm짜리 원시 화살벌레 화석을 발견한 바 있다는 사실이다. 초기 해양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했을 이 생명체가 왜 점점 작아졌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번 심해 탐사에서는 또 다른 성과도 있다. 연구팀은 남극 중앙해령 열수분출구에서 황동석, 섬아연석 등으로 추정되는 열수광석 102점, 총 350kg을 채집했다. 이 광석에는 구리, 아연 등 유용 금속이 다량 함유돼 있어 경제적 가치도 높다. 남극권 중앙해령에서 열수광석이 직접 채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형철 극지연구소장은 “이번 미지의 남극 바다에서 얻은 선물이 해양 생태계와 무척추동물의 진화, 생리 연구에 널리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올해 말 무인 잠수정을 투입해 남극 심해 탐사를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