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세종 장남평야 주인? 정치인 말고 금개구리!
[뉴스펭귄 이동재 기자] "어?! 방금 소리 들었죠, 쪽 하는 소리. 금개구리 청음 하나요. 아이고 귀하다."
아직 모내기가 시작되지 않은 마른 논 옆을 따라 흐르는 기다란 수로에서 쪽 하고 퐁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옆에선 시민과학자가 반색하며 금개구리의 흔적을 꼼꼼히 기록했다.
매년 4월 마지막 주 토요일은 세계 개구리의 날. 긴 겨울잠 끝에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한 우리나라 고유종이자 멸종위기종, 금개구리를 만나기 위해 세종시 장남들판을 찾았다. 오랜 기간 장남들에 깃든 생명과 그들의 흔적을 기록해 온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의 시민과학자들과 함께했다.
장남들판은 예로부터 드넓게 펼쳐진 논을 터전으로 금개구리를 비롯한 수많은 생명이 깃들어 살았던 땅이다. 도시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생명들의 보금자리가 많이 사라졌지만, 세종중앙공원 부지 한편에 남아 있는 논자리에선 지금도 많은 금개구리가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
세종예술고등학교 건너편 주차장에서 세종중앙공원 광장을 통과해 금개구리가 자리잡고 살고 있는 곳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해당 장소는 세종중앙공원 부지이지만 멸종위기종 금개구리의 서식이 알려지며 논으로 남게 된 곳이다. 그리 넓지는 않은 평야가 눈 앞에 펼쳐지고 또 다른 세계적 멸종위기종 대모잠자리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금개구리는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한 멸종위기종이자, 우리나라에서만 사는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외모가 참개구리와 비슷해 자주 비교되곤 하는데, 등에 두 개의 금색 줄이 선명하게 보이고 참개구리보다 울음 주머니가 덜 발달해 쪽하고 짧게 우는 특징이 있다. 참개구리에 비해 뒷다리가 짧은 편이어서 점프력이 약한데, 이 때문에 충청도에서 멍텅구리로 불리게 됐다는 설도 있다.
시민과학자들에 따르면 금개구리는 양지바르고 흐르지 않는 물속, 특히 수초나 유기 부유물이 많이 떠 있는 곳을 좋아한다고 한다. 근처를 흐르는 또 다른 생태계의 보고, 금강에서는 금개구리를 잘 볼 수 없는 이유다. 논둑 위도 잘 다니는 참개구리와 달리 금개구리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물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수초 주변을 마음 먹고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쉽게 관찰하기가 어렵다.
수로 안 금개구리가 눈을 빼꼼 꺼내고 있을 만한 수초 위를 눈으로 샅샅이 훑으며 논두렁을 따라 쭉 돌았다. 아직 바람이 차갑고 물이 적어서 금개구리들이 많이 나오진 않을 것 같다고 시민과학자 한 분이 얘기해 주었다. 한 차례 쪽 소리를 들었을 뿐, 별다른 수확이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금개구리를 직접 눈으로 보기에는 아직 때가 좀 이른가 생각하던 찰나, 무성한 수초에 몸을 숨긴 조그만 개구리 한 마리를 드디어 발견했다. 등에 선명한 두 개의 금색 줄, 금개구리였다.
이날 금개구리를 만난 장남들 논자리는 다른 많은 지역과 달리 금개구리가 참개구리보다 더 많은 특이한 곳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2014년부터 인근 호수공원과 수목원을 개발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금개구리를 전부 한꺼번에 이곳으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2014년 4월부터 7월까지 4개월 동안에만 금개구리 2만 5천여 마리가 옮겨졌다.
지금은 높다란 건물과 공원이 들어서 있지만, 장남평야는 원래 농경지가 드넓게 펼쳐진 땅이었다. 지금 호수공원이 들어서 있는 자리 역시 논이었고, 근방에서 가장 많은 수의 금개구리가 서식하던 곳이기도 했다.
금개구리가 논에 깃들어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금개구리의 생태는 예로부터 벼 농사와 함께 형성돼 왔기 때문이다. 봄철 모내기를 위해 농지에 물을 채우기 시작하면 금개구리들은 알람을 맞춘 것처럼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한다. 그렇게 여름내 번식을 하고 알을 낳고 올챙이는 개구리가 된다. 가을철 추수를 위해 물을 빼는 시기가 되면 열심히 움직였던 금개구리들은 다시 깊은 겨울잠에 들어간다. 농사를 짓는 5월부터 10월까지가 정확히 금개구리의 활동기다.
이날 금개구리 모니터링에 동행한 장남들보전시민모임 조성희 사무국장은 기자에게 장남들의 생태를 설명해 주는 내내 멸종위기인 금개구리의 서식지를 관리하기 위해 최고로 효율적이고 자연스러운 방법은 논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 말했다.
"그냥 단순히 쌀이 생산돼 나오는 논으로 볼 게 아니라 금개구리와 공생하고 우리 친환경 농문화도 알리는 문화생태공원으로 보자는 거예요. 경제적으로 봐도 논을 남겨두는 게 더 이익이에요. 위쪽에 있는 세종호수공원만 해도 연간 유지 관리비가 엄청난데 이곳까지 똑같이 바꿔서 그렇게 세금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조성희 사무국장이 금개구리와의 공생안으로 여러 차례 논을 강조하는 이유는 장남들을 둘러싼 개발 압력이 여전히 거세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남들 근처에는 세종시 국회의사당 예정지가 있는데, 국회의사당 건립 계획이 나오면서 중앙공원 부지 내 예정에 없던 도로 건설 계획이 추가돼 발표됐다.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향후 국회의사당 등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논을 유지하는 현재의 생태 보전 계획이 다시 한번 축소되거나 심지어 백지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도 금개구리 서식처를 옮기고 정원, 반려동물 놀이터, 놀이동산 등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심심치 않게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금개구리는 멸종위기종이라 대체 서식지 등 최소한의 보호 논의가 이뤄지는 상황. 조 사무국장은 근린공원 조성이 예정돼 있는 논의 바깥쪽 부지 역시 삵, 수달, 너구리 등 수많은 야생동물의 생활터라며 안타까워했다. 금개구리로 태어나지 못한 야생동물들은 어느 날 난데없이 시작되는 개발에 그저 내쫓길 수밖에 없다.
금개구리를 보고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 하늘 위로 또 다른 멸종위기종 새호리기가 지나갔다. 그 밑에선 항상 다급하게 어딘가로 튀어나가는 모습으로만 익숙한 고라니가 여유롭게 뽐내듯 폴짝거리고 있었다. 천진한 모습이 낯설고 예뻤다. 모든 사람이 폴짝거리는 고라니를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