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우리 서식지를 줄이는 거예요"

펭귄각종과학관 이정모 관장 인터뷰 알쓸별잡 털보 관장님! 멸종이 어떻게 찬란해요?

2025-04-25     이동재 기자
지구의 날을 하루 앞두고 펭귄각종과학관에서 이정모 관장을 만났다. (사진 이동재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이동재 기자] 지난 월요일, 지구의 날과 세계 펭귄의 날을 차례로 앞두고 펭귄각종과학관을 찾았다. 이름만 들으면 펭귄에 관련된 것들이 전시돼 있는 과학관인가 싶지만, 사실은 털보 관장으로 유명한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정모 관장의 개인 사무실이다.

12년 동안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관장으로 근무했던 이정모 관장은 작년 과학서 '찬란한 멸종'을 펴내고 학교, 시민모임 등 다양한 곳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집필 활동뿐 아니라 최근 늘어난 각종 방송 출연과 유튜브 촬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정모 관장의 사무실을 찾아 우리 인류가 마주한 찬란하지 않은 멸종과 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책의 제목 '찬란한 멸종'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A. 새로운 생명이 생겨나려면 누군가 사라져야 하고 우린 그걸 멸종이라고 해요. 지금까지 지구에 살았던 생명의 90%는 이른바 '배경 멸종'으로 사라졌어요. 배경 멸종은 그냥 아무 일 없이 사라지는 거예요. 공무원이나 교사 되기 얼마나 어려워요. 대기업 들어가기는 또 어떻고요. 그런데 다 자기 인생 찾아서 잘들 나가거든요. 조직 입장에서는 아쉽긴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찾아서 자리를 채우면 되니까 문제가 없단 말이에요.

지구에 사는 생명들은 그런 식으로 사라지기도 해요. 자기 종의 수명을 다 누리고, 자기가 나간 다음에는 다른 생명이 들어와 생태계가 여전히 유지되죠. 제가 찬란한 멸종이라고 부르는 멸종이에요.

Q. 그런 멸종이 있는 반면, 그다지 찬란하지 않은 멸종도 있는 것 같아요.

A. 맞아요. 대멸종은 달라요. 기업들이 상황이 안 좋아지면 구조조정을 하잖아요. 자연계의 정리해고가 바로 대멸종이에요. 많은 종들이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기 종의 수명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사라져 버려요. 또 누군가 사라지면 그 빈자리가 채워져야 하는데, 한꺼번에 많은 수가 사라지다보니 빈자리가 채워지지 못하고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돼버리죠. 이전 상태처럼 회복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힘겨워요.

Q. 그런데 지금 우리가 여섯 번째 대멸종기에 있다고요.

A. 네. 우리는 지금 지구 역사상 여섯 번째 대멸종을 통과하고 있어요. 당연히 찬란한 멸종이 아니고, 심지어 과거 다섯 차례의 대멸종들과도 성격이 아주 많이 달라요. 

지난 다섯 차례의 대멸종은 멸종한 생물들의 잘못이 아니었어요. 오랜 시간 동안 대륙이 합쳐진다든지, 어느날 운석이 와서 부딪힌다든지, 화산이 폭발한다든지 외부에 원인이 있었죠. 지금은 오로지 인간으로 인해 멸종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에요.

멸종 속도 역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요. 다섯 번째 대멸종과 비교해 볼게요. 물론 운석이 지구에 꽝하고 부딪히자마자 30분만에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던 모든 공룡들은 사라졌어요. 하지만 전 지구적으로 보면 다섯 번째 대멸종은 이후 30만년에서 50만년 정도 동안 꾸준히 진행됐어요. 엄청나게 긴 시간이 걸리는 거죠. 세 번째 대멸종은 무려 100만년도 더 걸렸어요.

지금 우리가 마주한 여섯 번째 대멸종은 짧으면 500년, 길면 1만년쯤 걸릴 거라고 이야기해요. 이것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인데, 요즘 보면 500년이 아니라 150년도 가능하겠다 싶을 만큼, 정말로 멸종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요.

Q. 책에서 이 대멸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사를 통해 배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는데요. 자연사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뭘까요?

A. 우리는 일단 대륙이 합쳐지는 건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억 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거니까. 운석이 부딪치는 것도 문제 없어요. 우리나라만 해도 천문 연구원들이 별들에 번호까지 하나하나 매겨서 관리하고 있거든요. 어떤 소행성들이 가까이 다가올 수 있고, 언제 어디쯤 지나간다는 것까지 정확히 알 수 있어요. 소행성이 다가올 때 지구에 충격을 주지 않을 방법들에 대해서도 다 연구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대멸종이 일어날 땐 항상 환경에 큰 변화가 생겼거든요. 그 환경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기후변화예요. 기후가 생명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인 거죠. 가장 중요한 생존 조건이 빠르게 바뀌면 거기에 적응해 살던 생물들이 적응을 못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어요. 조건이 빨리 바뀔수록 빠른 속도로 사라지죠. 

그런데 지금 기후가 빠르게 바뀌는 것의 원인은 오로지 하나잖아요.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 우리가 원인을 분명하게 알고 있으니까 이걸 해결하면 되는 거예요. 석탄, 석유 에너지에서 태양광, 풍력으로 가면 되고요. 육류 소비도 줄여야 해요. 배양육 같은 기술도 고민해 볼 수 있고요.

이정모 펭귄각종과학관 관장은 과학서 '찬란한 멸종'의 저자다. (사진 이동재 기자)

Q. 보통 지구가 아프다고 많이들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지구를 의인화하는 걸 별로 안 좋게 생각하신다고요.

A. 네. 사실 지구는 돌덩어리예요. 생명이 아닌 거죠. '지구가 아파요, 지구를 살려주세요'는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지구가 아프다고 얘기하는 건 사실 우리 책임을 방기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내가 아픈 게 아니라 지구가 아프다는 거거든요. 문제를 타자화시키는 거예요. 나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것의 문제로 생각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낮춰볼 수도 있게 돼요. 지난 다섯 차례의 대멸종 때도 지구는 아파본 적이 없어요. 지구가 망한 게 아니라 지구 위에 살았던 생명들만 망했던 거예요. 지구가 아니라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어요.

Q. 기후위기도 중요한 문제지만, 생물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아요.

A. 맞아요. 기후위기 논의가 부각되면서 생물다양성에 대한 강조가 급격히 줄었어요. 10년 전만 해도 생물다양성 관련 기관이나 조직들이 많았는데 요즘 보면 전부 기후 무슨 센터로 이름이 많이 바뀌었어요. 어딜 가도 사람들이 생물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아요. 검색 키워드 같은 걸 봐도 그렇고요. 마치 기후 문제만 해결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사실 기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예요. 본말을 잃어버렸어요.

Q. 왜 생물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떨어졌을까요? 

A. 시대마다 유행하는 키워드들이 있는 것 같아요. 과거 1980년대에는 산성비와 오존 구멍을 많이 얘기했어요. 지금은 얘기하지 않는 것들이죠. 문제가 해결된 부분도 있겠지만, 마치 유전공학, 메타버스 이런 키워드들처럼 유행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사가 넘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문제는 우리의 관심사가 확장되는 게 아니고 점프하듯이 교체돼 버린다는 거예요. 생물다양성 조직을 그대로 놔두고 기후 문제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생물다양성 조직을 기후 조직으로 바꿔버린단 말이에요. 자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급하게 넘어가 버리는 거죠. 지금은 어딜 가나 기후 얘기를 해달라고 요청을 받는데, 기후 이야기 속에 생물다양성 이야기를 녹여내려고 노력해요. 잘못하면 우리가 생물다양성과 관련된 용어 자체를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어요.

Q. 지금처럼 생물다양성이 계속 감소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A. 모기장 같이 촘촘한 그물은 몇 군데 끊어져도 그 그물을 가지고 물고기를 잡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예요. 그런데 축구 골대 그물처럼 촘촘하지 않은 그물이라면 어떨까요. 몇 군데만 끊어져 버리면 아무데도 못 쓰게 되겠죠. 옛날엔 모기장 같은 생태망이 있었다면, 지금은 축구 골대 같은 생태망이 있어요. 

예전에 한 종이 사라진 것과 지금 한 종이 사라지는 것은 피해가 완전히 달라요. 예전에는 어떤 한 종이 사라지면 그 종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금세 다른 종이 빈자리를 차지했어요.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에는 어떤 종이 사라지면 그 빈자리가 채 채워지기 전에 옆에서 또 다른 종이 사라져 버리고 있거든요. 그러면 결국 한쪽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리고 생태계가 싹 쓸려나가게 될 거예요. 먹이 그물이 무너지는 속도는 어떤 임계점에 다다르면 순식간에 큰 폭으로 상승하게 될 겁니다.

Q. 생물다양성 감소의 원인에는 기후변화 말고 다른 이유들도 있죠.

기후변화도 중요한 원인이기는 하지만,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 더 큰 문제예요.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2천년쯤 지난 시기인 1만년 전쯤에는 지구상의 육상 척추동물 가운데 99.9%가 야생동물이었어요. 0.1%가 인간과 가축이었죠.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무려 97%가 인간과 가축이고 나머지 3%만이 야생동물이에요.

인간이 역대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들과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생물량이에요. 정상적인 먹이 피라미드에서 최상위 포식자는 항상 수가 적죠. 피라미드 아래로 갈수록 늘어나고요. 그런데 인류는 최상위 포식자인데도 지구상에 살았던 그 어떤 종보다도 생물량이 많아요. 너무 똑똑하고 협력을 잘하다 보니 최상위 포식자로 올라갔고, 과학, 의학 등이 발달하면서 생물량이 너무 많아졌어요. 박테리아가 훨씬 많지라고 하지만, 박테리아는 한 종이 아니라 수십만 종이에요. 개미도 마찬가지고요.

지구의 크기는 정해져 있는데, 인구도 늘어나고 가축량도 늘어나니까 당연히 야생동물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지죠. 또 97%나 차지하고 있는 인간과 가축도 기껏해야 인간 한 종에 가축 수십 종에 불과하거든요. 지구 위의 종 다양성이 급격히 떨어진 거예요.

Q. 인간이 너무 많아서라니. 그럼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이게 우리의 문제이고 딜레마이기도 해요. 당연히 인간을 줄일 수는 없잖아요.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서식지를 줄이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가축량을 줄이는 것도 중요해요. 제가 처음 삼겹살을 먹었을 때가 고3이었던 1981년이거든요. 그해 저를 비롯해 수많은 친구들이 삼겹살을 처음 맛봤어요. 세계 경제와 함께 우리 경제가 발전하면서 육류 소비가 확 늘어났죠. 앞으로도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육류 소비는 늘어날 거예요. 사회적으로 대체육, 배양육 같은 기술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과정에서 생업을 잃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토론을 하고 대책도 세워야겠죠.

또 개인적으로는 철저한 도시화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서식지 면적을 줄이고 최대한 많은 공간을 야생생물들만의 공간으로 남겨두기 위해서요.

Q. 어쨌든 지구상의 다른 생명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A. 우리 인간이 우리끼리만 살 수 없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에요. 다양하고 촘촘한 생태계 망에 묶여 살아야 하죠. 달팽이, 지렁이, 풍뎅이, 직박구리가 걱정돼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생태망을 촘촘하게 유지해야 되는 거예요. 장대익 교수의 '공감의 반경'이라는 책이 있는데, 자기 자신과 가족, 친구로부터 외부 세계로 점차 공감의 반경이 넓어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일도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나와 다른 생명들과 생태에 공감하는 능력이 생기거든요.

Q. 기후위기나 생물다양성 문제를 우울하고 무력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가 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과학 기술도 이미 95%는 있어요. 기술을 쓸 의지가 없는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기후가 걱정된다면 해야 할 일은 국회로 가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서 환경을 말하는 '척'이라도 하는 사람을 밀어줘야 하고요. 같은 의미에서 기업들에게 그린워싱이라도 이끌어내야 해요. 기업이 폼으로라도 무언갈 바꿨을 때, 바뀐 것을 전체 양으로 환산하면 개인은 결코 해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이거든요.

우리가 좌절하고 주저앉는 것은 목표가 너무 높아서 그런 것 같아요. 이상이 큰 사람들이 좌절을 더 크게 하는 법이잖아요. 그런데 사실 망했다고 말해버리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자포자기하게 돼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힘들 땐 쉬어도 돼요. 절대로 세상이 한번에 바뀌지 않아요. 한 발자국씩 뚜벅뚜벅 걸어나가야 돼요.

펭귄각종과학관에서 만난 이정모 관장. (사진 이동재 기자)/뉴스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