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⑯] 자연 생태계에 '일방적 승리'는 없다

2025-04-14     이강운 대기자

[뉴스펭귄 이강운 대기자] 태풍처럼 거센 봄바람이 전국의 산을 불사르고, ‘당연한 게 당연해지는데’ 무려 넉 달이 걸렸다. 위대한 미국을 원한다는 트럼프의 광란으로 전 세계에 관세 폭탄이 쏟아져 롤러코스터를 타며 정신이 혼미하다. 태풍과 폭탄 그리고 참담함으로 세상 사납지만 잠시나마 봄나물 뷔페를 즐기며 망중한을 갖는다.

대략 30년 산속 생활을 하며 연구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무지막지한 노동에 혹사당하던 몸이 신호를 보낸다. 무릎에, 허리에 손가락과 어깨에 문제가 생겨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병원 순례하느라 바쁘다. ‘기계를 오래 쓰면 잔고장이 나는 법’이라며 무심하던 아내가 병원 들락거리는 빈도가 높아지자 건강식에 꽃혀 큰 돈 안 들어가는 ‘나물 레시피’를 챙긴다.

월동하던 멸종위기 곤충인 물장군을 깨우고 금개구리를 살피느라 바쁜 중에도 달래와 냉이를 캐고, 쑥을 뜯어 손질해 식탁에 내놓은 시원한 쑥국과 냉이된장찌개 달래무침을 맛보며 진한 나물의 향을 느낀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마음껏 즐기지만 끝끝내 살아보겠다고 추운 겨울을 잘 버티고 견뎌낸 식물을 몸에 좋다고, 맛있다고 뿌리를 뽑고 잎을 잘라내는 행동에 일말의 미안함이 있다.

쑥국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냉이된장찌개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달래무침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나물(날 것+물)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의 날것을 살짝 물에 데치거나 무쳐서 먹는 음식을 말한다. 나물 중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냉이, 쑥, 달래는 봄나물의 대표 주자로 특히 향이 진하다. 날 것으로 먹지 않고 굳이 데치거나 무쳐서 먹는 수고를 하는 과학적 이유가 있다.

초식성 곤충 애벌레에게 식물은 널린 밥상이다. 이른 봄 파릇파릇한 새 싹부터 두툼한 잎, 줄기, 심지어 뿌리까지 애벌레는 식물의 모든 부위를 먹을 수 있다. 특히 잎은 단순히 먹이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잎 뒷면은 작은 애벌레가 포식자로부터 몸을 숨기고 강열한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장소이며, 잎을 말아 은신처나 번데기를 트는 장소로 활용하기도 한다. 식물의 잎은 먹을 것, 숨을 곳이 풍부한 애벌레의 미소 서식지(micro-habitat)로 그들의 생존 기반이라 할 수 있다.

환삼덩굴 잎 속 네발나비 애벌레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네발나비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황벽나무 잎을 말아 은신처를 만든 대왕팔랑나비 애벌레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대왕팔랑나비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먹어대고 괴롭히는 벌레들에게 식물은 어떻게 대항할까?

우선 잎에 촘촘히 털을 세워 물리적 장벽을 만들거나 잎을 단단한 조직으로 두텁게 하여 섭식 효율을 떨어뜨린다. 미끈미끈하게 왁스 층으로 뒤덮어 애벌레가 미끄러지게 하는 방법도 사용한다. 애벌레는 털이 적은 가장자리 부분만 선택적으로 섭식하거나 발에 흡착판 구조나 발톱을 특화해 털 사이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는 적응 진화를 발전시킨다. 단단한 조직의 두꺼운 표피 조직은 강한 턱으로 잘라 먹는다,

1차 방어선이 무력화되면 식물은 다른 형태의 2차 전략인 화학전으로 전환한다. 물리적인 1차 방어는 섭식 효율을 감소시키거나 접근을 막는 소극적 방어라 할 수 있지만 2차 대사물인 화학전은 신경계를 교란하거나 섭식 자체를 억제하여 성장을 방해하며 독성 축적을 유도해 애벌레의 생존율을 낮추는 적극적 방어 수단이다.

식물이 만들어내는 화학적 방어 물질(secondary metabolites)은 애초에 초식성 애벌레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제조한 독성 물질이다. 그러나 독이 약이 되는 원리를 터득한 인류는 식물의 독성을 ‘조절해 이용’하는 방법을 찾았다. 바로 물로 데치거나 무치는 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식물의 독성 물질이 안전한 식재료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쌉싸름한 나물 맛은 해독 과정 중에 남은 독성물질의 쓴 맛이라 할 수 있다.

식재료로 나물을 사용하는 인간 이전에 곤충은 식물의 독성을 이용해 자기 방어 물질로 활용하는 가장 고도화 된 동물 분류군이다. 독성을 피하는 방식이 아니라 특정 독성 식물만 골라 먹는, 화학적 방어 물질에 적응된 생리·형태를 발달시켰다. 체내에서 독성 물질로 바뀌지 못하도록 대응하는 단백질 효소로 무력화할 뿐만 아니라 체내에 저장해 천적에 대한 방어물질로 사용하니 남의 힘을 빌려 자기를 보존하는 곤충의 특화된 생존 기술이다

쑥의 테르펜(Terpene), 냉이의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 독성은 아니지만 강한 향의 알리신(Allicin)을 갖고 있는 달래가 바로 화학적 방어 물질이다. 쑥을 먹는 애벌레, 냉이를 먹는 애벌레는 식물의 독성 물질에 맞춰 대응 전략을 갖고 잘 살아가고 있다. 과도하게 산나물을 채취하여 벌레들의 식탁을 빼앗지 말라고 아내에게 부탁을 하지만 이 정도는 끄떡없다며 지인들이 오면 어느새 들로 내달려 한 움큼씩 나물을 뜯어오는 아내를 말릴 수는 없다.

쑥 먹는 작은멋쟁이나비 애벌레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작은멋쟁이나비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냉이 먹는 대만나비 애벌레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대만나비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식물과 애벌레는 군비경쟁(co-evolutionary arms race)을 지속하면서 상호 진화해왔다. 애벌레를 죽이기 위한 독성물질을 의약적 효능으로 전환하여 약을 만들고, 쌉싸름한 나물 맛으로 풍미를 더하는 식사를 하면서도 섬세한 생태적 연결고리인 벌레를 과소평가하거나 싫어하니 곤충학자인 필자로서는 섭섭하다.

작년 수목원정원관리원에서 ‘곤충과 식물이 만들어가는 생물다양성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정원 문화가 확산되면서 보기 싫은 벌레를 없애고 꽃만으로 채워진 식물의 낙원을 꿈꾸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정원은 아름답고 사람들에게 자연과의 접점을 제공하는 좋은 장소이지만 벌레가 없으면 실제로는 생태계가 붕괴 직전의 불안정한 시스템이 될 수 있다.

자연 생태계에서 어느 한 집단의 일방적 승리는 없다. 벌레가 식물을 전멸시킬 수도 없고 벌레가 없다고 식물이 무한 성장을 할 수 없다. 무한 성장은 공간, 자원, 빛, 토양 영양소 등 우세종이 단일 지배할 가능성이 커 생물다양성 상실로 이어진다. 겉은 푸르고 예쁘지만 속은 죽어 있는 생태 사막이 될 수 있다는 주제였다. 오히려 "애벌레는 식물의 적이 아니라, 생태계의 건강을 유지하는 파트너"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정원문화가 생태문화로 확장되기를 부탁했다.

수목원정원관리원 강의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아쉬운 팁 하나! 봄나물은 제철 야생에서 캔 것이 으뜸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야외로 나가 봄나물을 캐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염분 농도가 높은 염화칼슘의 제설제와 농약의 독성 물질로 토양이 오염되어 있으니 노지에서 채취하는 나물은 보약이 아니라 독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물을 직접 캐러 가는 일은 그 자체로 자연과의 대화였고, 자연이 주는 선물을 고맙게 여기는 마음을 키우는 과정이었는데 자연과 맺던 관계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아프다.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