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해외 연구자들도 보러 오는 잔가시고기
[뉴스펭귄 이동재 기자] 약 60년 전 멸종한 민물고기를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일본의 젊은 민물고기 연구자들이 우리나라 하천을 찾았다. 일본의 학자들은 일본에선 멸종해버린 아름다운 민물고기가 한국에서는 잘 지켜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1914년 일본, 지금의 효고현 단바시의 한 하천. 가이바라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두 청소년, 다나카 야사후로와 아시다 토지미는 어류 채집을 하다가 낯선 겉모습의 민물고기를 발견하고 몹시 흥분했다.
이들은 이 낯선 민물고기의 정체를 알고 싶어 박물학 전공이었던 담임 선생님 나카가와를 찾았지만, 채집돼 온 민물고기는 나카가와 역시 본 적이 없는 종. 그는 동정을 의뢰하기 위해 당시 도쿄제국대학의 다나카 시게호 교수를 찾았고, 민물고기가 그동안 기록된 적이 없는 신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이바라 중학교 학생에게 발견돼 신종으로 기록된 이 민물고기는 'Pungitius kaibarae'라는 학명을 가지게 됐다. 일본 가시고기속 어류 중에서는 가장 남방에 서식한다고 미나미토미요(남쪽의 가시고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그러나 미나미토미요는 발견된지 20년도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췄다. 당시 원인이 명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1910년대부터 시작된 대규모 농지 정비로 물길이 바뀌고, 공장이 들어서는 등 서식지 파괴가 심각했던 것으로 유추되고 있다.
1960년대 일본 고유 어류로는 최초로 절멸한 것으로 공포된 미나미토미요. 그러나 어느날 바다 건너 한국 땅에서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미나미토미요와 아주 비슷한 민물고기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미나미토미요와 같은 종으로 감정된 민물고기의 한국 이름은 바로 '잔가시고기'다.
지난달 15일 한일담수어류 연구 발표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일본 민물고기 연구자들은 한국을 찾은 젊은 연구자들은 발표회가 끝난 뒤 바로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며칠간 우리나라 연구자들과 함께 동해안 남부 지역 하천을 찾았다. 한국 고유의 민물고기, 그중에서도 잔가시고기를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함이었다.
잔가시고기를 마주한 일본 어류 학자들은 한국의 잔가시고기가 정말 아름답고 매력적인 민물고기라며 한국에서는 이 민물고기가 멸종되지 않도록 잘 보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교토대학 이학부 가와구치 코시로 연구자는 "미나미토미요는 일본에서 멸종 상태로 더 이상 관찰할 수 없는 민물고기"라며, "생물학적 손실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한국의 잔가시고기가 잘 보존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교토대학 농학부 후지이 류호 연구자는 "일본에서 잔가시고기의 멸종은 생물지리학적으로 큰 손실이었다"며, 잔가시고기와 같은 많은 담수 어종이 현대의 도시화와 하천 환경 악화로 사라지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라며 하천 보호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교토대학 이학부 사토 아츠로 연구자는 "잔가시고기는 정말 아름답고 매력적인 민물고기"라며, "잔가시고기를 포함한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환경이 먼저 잘 지켜졌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전했다.
잔가시고기, 우리나라에선 멸종 걱정 없나?
잔가시고기는 미나미토미요와 같은 종으로 구별돼 동일한 학명을 쓰고 있긴 하지만, 사실 일본의 미나미토미요가 이미 오래 전 멸종돼 비교해 볼 길이 없다. 우리나라 민물고기 연구자 채병수 박사는 "과거 문헌을 비교해 봤을 때 우리나라 잔가시고기 중에서도 대구 영천을 흐르는 금호강에 분포한 잔가시고기 집단이 일본의 미나미토미요와 비슷하다"면서, "일본에 개체가 남아있으면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텐데 멸종이 되어 버려서 같다고 짐작할 뿐이지 정확하게 같다고 확언하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잔가시고기는 '대구 영천 일대'와 '포항 울산', '강릉 북쪽' 등 세 지역의 하천에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가적색목록의 준위협(NT) 생물종에 포함돼 있는 잔가시고기는 2005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됐다가 2012년 해제됐다.
채 박사는 잔가시고기가 여전히 멸종 위협에 놓여있다며 종이 기준이 아니라 집단을 기준으로 보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잔가시고기가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된 이유가 잔가시고기 보존이 훌륭해 개체수가 늘어서가 아니라 각 지역 집단 개체들의 분류학적인 혼란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채 박사는 "최초에 경북 영천에 있는 잔가시고기 집단이 가장 분포가 좁고 개체수가 적어 보호가 필요하다고 얘기했었는데, 다른 지역에 잔가시고기 집단이 있다는 이유로 멸종위기종에서 빠지게 됐다"며, "사실 같은 종이라도 집단마다 유전적으로 다 다르다. 종이 기준이 아니라 집단별로 보호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한편 채 박사는 "잔가시고기나 멸종위기종뿐 아니라 많은 민물고기들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며, "전국에서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하천 공사들로 우리나라 민물고기의 개체수가 전체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채 박사는 위협 요인 중 하나로 골재(모래나 자갈) 채취로 인한 하천의 평탄화를 꼽으면서, "많은 어종이 성장 시기에 따라 이용하는 수심이 다르다. 모래나 자갈을 파내 하천이 평평해지면 민물고기들의 산란장, 먹이터 등이 모두 망가지게 돼 살기가 어려워진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