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기후의 가혹한 채찍질, 인구 밀집 대도시도 위험하다
[뉴스펭귄 이동재 기자] 영화 위플래쉬는 한 평범한 음악 학교의 학생이 가학적인 교수법을 고집하는 교수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단어 위플래쉬(Whiplash)는 채찍질이라는 뜻이다. 최근 이 위플래쉬가 뜻밖의 단어와 붙어 자주 언급되고 있다. 바로 ‘기후 채찍질(climate whiplash)’이다.
기후 채찍질은 한 지역에서 극단적인 가뭄과 홍수가 동시에 심화하는 현상으로 보통 극심한 사회적 피해를 동반한다. 최근 비정부기구(NGO) 워터에이드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전 세계에서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 112곳 가운데 17곳에서 ’기후 채찍질’ 현상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기후 채찍질로 인한 대표적인 자연재해 사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산불이다. 지난 1월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한 LA 산불은 극단적으로 건조한 날씨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촉발됐다. 화재가 발생하기 전까지 강수량이 평년의 4% 수준에 불과할 만큼 비가 거의 오지 않았지만, 바로 지난달에는 다시 역대급 폭우가 쏟아지면서 화재로 약해진 지반이 무너져 내리는 등 2차적인 피해가 발생했다.
연구진은 "현상이 가장 극심한 수준인 중국 항저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미국 댈러스를 비롯해 이라크 바그다드, 태국 방콕, 호주 멜버른, 케냐 나이로비 등에서도 기후 채찍질 현상이 확인됐다"며, "기후 채찍질 현상이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로 인해 점점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지역의 기후가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기후 반전(climate flip) 현상도 문제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수십 개 도시에서 건조한 기후에서 습한 기후가 되거나, 습한 기후에서 건조한 기후가 되는 기후 반전 현상이 나타났다.
이집트 카이로, 스페인 마드리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홍콩, 미국 산호세는 습했던 기후가 건조한 기후로, 인도 러크나우와 수랏, 나이지리아 카노, 콜롬비아 보고타, 이란 테헤란 등 도시는 건조했던 기후에서 습한 기후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기후가 갑자기 건조하게 바뀌면 식수 부족과 식량 공급망 붕괴가 일어나고, 수력 발전 의존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전력난까지 초래될 수 있고, 반대로 기후가 습하게 바뀐 지역에서는 폭우로 인한 홍수에 대비할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아 피해가 확산될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타이완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저체온증 환자가 속출하면서 사망자가 급증하기도 했다. 중국시보 등 타이완 언론에 따르면, 이번 겨울 타이완에서 한파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무려 1300여 명에 달했는데, 지난달에는 하루에 78명의 저체온증 사망자가 발생한 날도 있었다.
연구 공동 저자인 카디프대 마이클 싱어(Michael Singer) 교수는 “감당할 수 없다는 말보다는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현실적인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솔 오유엘라(Sol Oyuela) 워터에이드 사무총장은 "긴급한 공동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재해로부터 회복하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전 세계가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우리나라도 널뛰는 기후로 인한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환경부가 작성한 대한민국 기후변화 적응 보고서에 따르면 1912년에서 2020년 사이 109년간 동안 한국 연평균 기온 상승폭은 약 1.6도, 세계 평균인 1.09도를 크게 상회했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여름철 폭염 일수가 늘면서 온열질환자가 2022년 1564명에서 2024년엔 3704명으로 급증했고, 호우와 태풍으로 인한 재산과 인명의 피해도 해마다 커지고 있다. 또 작년에는 유례 없이 습한 날씨와 일조량 감소로 작물의 생장이 지연되고 해수면 온도 상승이 양식업에 영향을 미치는 등, 농업과 어업의 피해가 물가 상승으로도 이어지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