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식탁 ②] ‘기후플레이션’ 부르는 널뛰는 날씨

20년 사이 폭염으로 식량 생산량 12% 감소

2024-09-30     곽은영 기자
이상기후는 농작물 생산량 감소와 밥상 물가 상승의 원인이 돼 ‘기후플레이션’을 부른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 뉴스펭귄

[뉴스펭귄 곽은영 기자] 올해 여름은 지구 역사상 가장 더웠던 계절로 기록됐다. 전문가들은 매년 맞는 여름이 앞으로 남은 여름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무서운 괴담 같은 현실이다. 

뜨거운 날씨는 단순히 덥다는 감각만을 남기고 지나가지 않는다. 지구 평균 기온이 1℃ 증가할 때마다 밀과 쌀, 옥수수, 콩과 같은 전 세계인들의 주식이 되는 곡물의 수확량이 큰 폭으로 감소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전 세계에서 발생한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평균 48만 9000명에 달하고 이 기간 식량 생산량은 12% 감소했다. 폭염과 가뭄으로 서유럽에선 2022년 작물 생산량이 약 45% 감소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기후변화로 수십 년 내에 전 세계 식량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위기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 중 하나는 장바구니 물가다. 폭염, 가뭄, 폭우, 홍수, 이상저온 등 빈번한 이상기후는 농작물 생산 감소와 밥상 물가 상승의 원인이 돼 이른바 ‘기후플레이션’을 부른다. 

기후플레이션은 기후(Climat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등으로 농산물 생산이 급감하면서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기름과 설탕 등 일상적인 식재료의 가격 상승부터 심상치 않다. 특히 올리브유는 ‘리퀴드 골드(금 액체)’로 불리며 급격한 가격 상승세를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1분기 국제 올리브유 가격이 톤당 1만 88달러로 지난해 동기간 대비 70% 이상 올랐다고 밝혔다. 분기 기준 톤당 가격이 1만 달러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리브유 가격 상승의 배경에는 기후변화에 취약한 올리브 생산량 감소가 있다. 올리브유 최대 생산국인 스페인에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고 산불까지 겹치면서 연 생산량이 66만 톤으로 반토막 난 영향이 크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식품사에서 판매하는 올리브유 가격도 14~30%로 덩달아 상승했다.

설탕도 이상기온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브라질에 이어 세계 2, 3위 설탕 수출국인 인도와 태국이 엘니뇨 현상에 따른 연이은 가뭄에 시달리면서 설탕 생산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설탕 가격 인상은 과자,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의 가격 상승을 부른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기상이변 현상으로 우리나라에선 올해 초 한 알에 1만 원이 넘는 ‘금사과’에 이어 5월 한 통에 1만 원이 넘는 ‘금양배추’, 최근에는 2만 원에 육박하는 ‘금배추’까지 등장하며 소비자들의 지갑을 얼어붙게 했다. 

역대급 폭염과 가뭄 등 기상이변 현상으로 국민 과일로 불리던 사과는 ‘금사과’가 되고 최근에는 ‘금배추’까지 등장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자료에 따르면 30일 기준 배추 1포기의 평균 소매가격은 9662원으로 1만 원에 육박한다. 전월 대비 36%, 1년 전 대비 56% 이상 상승한 가격이다. 배춧값 상승의 배경에는 역대급 폭염과 일부 지역의 가뭄이 있다. 추석 이후에도 꺾이지 않는 채소 가격에 다가오는 김장철이 두렵다는 말도 나온다. 

김치의 주재료 가운데 하나이자 국민 1인당 연 7~8kg을 소비하는 마늘도 수난을 겪고 있다. 전국 마늘 주산지에서는 고온과 잦은 강수로 마늘이 멈추지 않고 자라는 ‘벌마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통 6~9개인 마늘쪽 수가 12개 이상 분화해 상품성이 떨어지는 ‘벌마늘’은 기온이 1℃ 상승하면 발생률이 크게 증가한다고 알려진다. 

한국은행은 “2000년대 이후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이상기후 기여도가 커지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이상기후가 물가 상승에 약 10%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은행의 ‘기후변화가 국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기온 상승은 농산물 가격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을 이끈다. 

기획재정부 역시 최근의 채소류 가격 상승을 두고 “기후변화에 따른 구조적 요인 영향이 있다”고 분석하며 “현 상황이 일시적 요인을 넘어섰다”고 바라봤다. 

기후변화로 널뛰는 날씨는 농산물 생산에 직접적이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른 밥상 물가 상승은 피할 길이 없다. IMF는 ‘통화정책과 기후의 연결고리’ 보고서를 통해 통화정책만으로는 부정적인 기후 환경에 따른 물가를 잡을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면 식탁에도 큰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는 식량 불안정과 생물 다양성 불균형이라는 문제를 불러온다. <날씨와 식탁>은 달라진 날씨가 인간을 비롯해 지구에 사는 생명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식탁을 키워드로 살펴보는 12회차 연재다. 기후변화의 증거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식탁을 중심으로 기후위기의 현재를 살펴보고 나아가 생존권을 위협받는 동물의 권리와 지속가능한 식사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2회차에서는 기후위기로 인한 식탁 재난 현장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