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와 뱃사람...시민들이 기록한 바다 속 생명의 모습

"기록이 바다를 구한다"고 주장하는 주체적 시민과학자들

2024-09-27     이동재 기자
최근 환경 문제 해결의 대안적 주체로 시민과학자가 주목받고 있다. 시민과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 연구에 일반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이다. (사진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뉴스펭귄

[뉴스펭귄 이동재 기자] 인간이 바다에 버리는 쓰레기가 바다를 병들게 하고 있다. 처리되지 않은 하수, 비료, 화학물질 등 오염 물질도 끊임없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해양 생물의 목숨을 위협한다. 이런 가운데 바다의 관리 사각지대를 감시하고 관련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시민이 늘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해양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기업, 어업계의 노력이 필수적이지만, 한편에서는 일반인들이라고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환경문제 해결하는 '시민과학자' 들어봤나요? 

최근 환경 문제 해결의 대안적 주체로 시민과학자가 주목받고 있다. 시민과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 연구에 일반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이다.

가령 시민과학자는 간단한 교육을 받고 도구들을 활용해 현장에서 해양 쓰레기를 모니터링하거나 생물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등 연구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또한 전문가와 협력해 직접 연구를 설계하는 등 방식으로 연구 과정에 참여할 수도 있다.

해양수산개발원 정지호 실장은 “넓은 바다를 정부와 일부 전문가의 역량만으로 모니터링하기는 불가능하다”면서, “관리 사각지대를 감시하고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시민이 늘어나야 한다”며 시민과학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민과학은 단순히 많은 양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수단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민과학의 특징은 과정에 참여하는 이들을 모두 해당 연구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당사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시민과학이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장기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정지호 실장은 “바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바다에 대한 크고 작은 의사결정이 미래 세대와 시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내려질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기록으로 세상 구하는 시민과학자

2012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시민과학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 논문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자연과학 연구에서는 시민과학이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적 방법론으로 더욱 크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 24일 뉴스타파 함께센터에서 2024 해양시민과학포럼이 열렸다. (사진 녹색연합 제공)/뉴스펭귄

이런 가운데 지난 24일 뉴스타파 함께센터에서 2024 해양시민과학포럼이 열렸다. 포럼에선 우리나라 시민과학자들이 모여 해양 오염 문제 해결에 참여했던 사례를 공유하고 시민과학의 활성화 방법을 논의했다.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 홍선욱 대표는 해양 쓰레기 시민과학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직접 설계하고 해양수산부에 제안해 국가 해양 쓰레기 모니터링 제도를 만드는 등 시민과학을 통한 해양 쓰레기 모니터링 프로그램 구축 사례를 공유했다. 

홍 대표에 따르면 시민과학자들이 지난 16년 간 기록한 모니터링 자료는 해양 쓰레기에 대응하는 국가 정책을 만드는 기초 자료로 활용돼 왔다.

홍 대표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쓰레기가 나오는)수도꼭지를 찾아내는 것”이라며, “어떤 수도꼭지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시민의 기록을 통해 만든 데이터를 기반으로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활동”이라고 소개했다.

고명효 해녀는 2023년부터 매월 2회씩 서귀포 문섬과 범섬 연산호 서식지를 정기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진 녹색연합 제공)/뉴스펭귄

경험을 나누기 위해 나선 시민과학자 고명효 해녀는 2023년부터 매월 2회씩 서귀포 문섬과 범섬 연산호 서식지를 정기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고명효 해녀는 “아름다운 산호를 보고 사진 찍는게 좋아 활동을 시작했지만, 활동을 하면 할수록 산호가 처한 위협을 마주하게 됐다”며, “낚시 쓰레기에 엉켜 잘려나간 산호와 관광잠수함 운행 과정에서 뭉개진 산호 서식지를 보며 심각함을 인식하고 변화를 기록하는 활동에 더 열심히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명효 해녀는 "낚시 쓰레기에 엉켜 잘려나간 산호와 관광잠수함 운행 과정에서 뭉개진 산호 서식지를 보며 심각함을 인식하고 변화를 기록하는 활동에 더 열심히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 고명효 파란 산호탐사대원)/뉴스펭귄

특히 고명효 해녀는 “최근 급격한 수온 상승까지 더해져 연산호 서식지가 위기에 처해있다”며, “바다의 변화를 기록하고 관찰하는 사람이 더 많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수 시민과학자는 원양어선에서 해해지는 어구 쓰레기 불법 투기, 혼획으로 인한 고래 폐사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해 방송사에 제보했다. (사진 녹색연합 제공)/뉴스펭귄

자신을 전직 원양어선 항해사로 소개한 또 다른 시민과학자 김민수 씨는 원양어선에서 해해지는 폐어구 불법 투기, 혼획으로 인한 고래 폐사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해 방송사에 제보했다.

김민수 시민과학자가 기록한 영상에는 63빌딩 서른 채가 들어갈 정도의 대형 어망을 바다에 버리는 장면, 그물에 걸려 고통스러워 하다 폐사한 돌고래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는 “앞으로 바다에 나갈 청년들에게 이것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알리는 것이 변화의 시작점”이라며, “자신의 기록과 경험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현실을 바꾸는 데 쓰이도록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수 전직 항해사는 원양어선에서 해해지는 폐어구 불법 투기, 혼획으로 인한 고래 폐사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해 방송사에 제보했다. (사진 김민수)/뉴스펭귄

박정운 황해물범시민사업단 단장은 백령도 주민의 점박이물범 서식지 모니터링 활동 사례를 공유했다. 

백령도 점박이물범 서식지는 어민, 관광객, 군대, 물범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공간이다. 특히 물범이 쉬는 바위는 어민들에게도 홍합, 미역, 다시마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공간으로 지역 주민들은 오랜시간 물범과 바다를 공유하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하며 살아왔다. 

박정운 단장에 따르면 지역주민과 물범 보호 활동을 함께 할 수 있었던 비결은 ‘꾸준함’이다. 박 단장은 “2003년 첫 조사 이후 지속적으로 지역주민과 물범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록하는 과정에 초대했고, 주민들이 참여한 기록 활동의 결과로 백령도가 국가 생태관광지로 지정되는 등의 결과로 이어지면서 자부심을 느끼는 주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이러한 조사를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주민들을 물범 보호 활동의 주체로 이끄는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