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서재] 코뿔소가 항문으로 초음파 검사를 받는 이유

2023-09-06     손아영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사라져가는 코뿔소


[뉴스펭귄 손아영] 코뿔소는 사자, 호랑이, 기린 등 유년기를 지나는 아이들이 인간 외의 생명체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동물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정말 익숙하죠.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코뿔소 종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으며, 수마트라코뿔소는 전 세계에 80마리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코뿔소는 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걸까요?

 

 

자취를 감춘 ‘대문자 I’ 수마트라코뿔소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수마트라코뿔소는 현존하는 코뿔소 중 가장 작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오래된 종입니다. 유전분석 결과 수마트라코뿔소가 털코뿔소의 살아 있는 가장 가까운 친척임이 밝혀졌는데, 털코뿔소는 마지막 빙하기에도 생존해 있었습니다. 수마트라코뿔소는 코끝에 커다랗게 하나, 바로 뒤에 작게 하나 총 2개의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뾰족한 윗입술은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뜯는 데 사용하죠. 하지만 수마트라코뿔소는 거칠어 보이는 외모에 비해 의외로 부끄럼이 많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야생에서는 빽빽한 덤불을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이처럼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이들은 점점 더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숲들이 벌목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서식지가 좁아지고 분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결국 1980년대 중반 이후 야생 수마트라코뿔소의 수는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고, 지난 2019년 말레이시아에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코뿔소가 항문으로 초음파 검사를 받는 이유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수마트라코뿔소는 현재 항문을 통해 초음파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조금 이상한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이는 사실 수마트라코뿔소의 개체수를 늘리기 위한 인간의 노력 중 하나입니다. 수마트라코뿔소의 교미를 위해서는 암컷의 유도배란이 필요합니다. 근처에 적합한 수컷이 없으면 암컷은 배란을 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죠. 멸종위기로 개체수가 줄어든 상황에서는 수컷을 대신해 인간이 인공수정을 도와야 합니다. 암컷의 난소를 자극하는 호르몬주사를 맞히고 냉동해 둔 수컷의 정액을 자궁에 넣어주는 것이죠. 이후 암컷의 임신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간이 직접 이들의 항문에 팔을 집어넣어 초음파 검사를 실행합니다. 인간이 저지른 일이기에 인간의 노력으로 구할 수밖에 없는 모순적인 멸종위기의 현실인 듯합니다.

 

 

인간의 쾌락에 희생되는 코뿔소들


(사진 unsplash)/뉴스펭귄

다른 코뿔소라고 수마트라코뿔소와 상황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자바코뿔소는 한때 동남아시아 전역에 살던 동물이지만 현재 지구상에서 보기 드문 종이며 50마리가 채 남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 모두 자바의 보호구역 한 곳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존했던 야생 자바코뿔소는 2010년 겨울, 베트남의 한 밀렵꾼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한편 100년 전 아프리카에 100만 마리에 가까운 개체 수가 서식하던 검정코뿔소는 5000마리까지 줄어들었습니다. 현재 유일하게 멸종위기 목록에 등록되지 않은 온흰코뿔소조차 21세기 들어 500g당 2만 달러 이상으로 판매되는 뿔을 암시장에 내다 파는 밀렵꾼 탓에 위기에 처한 상황입니다. 코뿔소의 뿔은 오랫동안 중국의 전통 약재로 쓰였으나 최근에는 최고급 파티의 마약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동남아시아 클럽에서는 분말로 만든 코뿔소 뿔을 코카인처럼 흡입하고 있죠. 

 

 

상상 속의 동물

 


인간의 잔인한 탐욕 때문에 코뿔소는 이제 스스로 번식조차 할 수 없는 동물이 되었습니다. 인공수정의 도움을 받아 수차례의 유산을 겪은 뒤에야 임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죠. 어쩌면 동물 백과 속 코뿔소는 더 이상 실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동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