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수첩] 나는 집을 잃은 벵골호랑이였다

2022-12-16     이수연 기자
(사진 WWF - Richard Barrett)/뉴스펭귄

[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나는 방글라데시와 인도의 습지를 안방처럼 누비며 생태계를 지배하는 맹수 중의 맹수, 벵골호랑이다.

단독 생활을 할 만큼 독립적이고, 사냥할 때도 꼼꼼하고 철두철미하다. 용맹함은 두 번 말하면 입 아프다. 하지만 지구가 뜨거워지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2070년에 우리 집은 물에 잠겨 완전히 사라진다. 그럼 나는 죽는다. 내 친구들은 이미 97%가 지구에서 사라졌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의 상황을 알리는 그린피스의 '귀여움을 구해줘' 캠페인에는 '나를 닮은 귀여운 동물 찾기' 테스트가 있다. 이 테스트는 △벵골호랑이 △푸른바다거북 △사막도마뱀 △반달가슴곰 △흰족제비 △황제펭귄 △코알라에 이르는 7종의 멸종위기 동물 중에서 어떤 동물이 나와 가장 닮았고, 해당 동물이 기후위기로 어떤 위험에 빠졌는지 알려준다.

테스트 결과, 나와 닮은 멸종위기 동물은 벵골호랑이였다. 나는 당연히 벵골호랑이가 아니니까 집을 잃진 않겠다고 안심하던 찰나, 지금 이 순간에도 물에 서서히 잠기는 나라와 집들이 떠올랐다. 어느 날 집이 물에 잠겨 사라지는 공포는 벵골호랑이에게만 찾아오지 않는다. 그 다음은 인간이다. 진짜 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스산했다.

(사진 WWF - Ola Jennersten)/뉴스펭귄

밀림의 맹수 벵골호랑이마저 취약하게 만드는 기후위기 앞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두가 한 번쯤 던지는 이 질문에 내가 어설프게 내린 답은 '냉소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냉소는 벵골호랑이와 같은 수많은 생명에게 막대한 빚을 지기 마련이다. 그게 뉴스펭귄의 오랜 독자에서 기자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어디서나 용맹한 벵골호랑이가 계속 당당할 수 있도록 절망 대신 희망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혼자는 어려워서 함께할 사람들이 필요한데, 이들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멸종위기종의 서식지인 갯벌을 지키려 7년을 기록한 영화감독, 꽁초 주워서 담배회사로 보내 장관상 받은 초등학생들, 못생겨서 관심 밖인 멸종위기종만 입양하는 뉴질랜드인들. 이번 달에 기사를 쓰며 새로 알게 된 사람들만 해도 거대한 문제 앞에 체념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이 품은 의지 곁에 슬쩍 선다면 막막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50년 뒤면 벵골호랑이 서식지가 전부 사라진다는 논문을 발표한 샤리프 무쿨(Sharif Mukul) 박사는 "이번 연구는 어떠한 대처도 하지 않았을 때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예측일 뿐"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이들의 서식지를 보호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무시무시한 맹수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서 다시 테스트했다. 이번에는 이상기온과 폭염으로 빨리 늙는 사막도마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