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빠진 '악어' 신세... 원인은 낚시용 납추
[뉴스펭귄 남예진 기자] 세인트 루시아(St. Lucia) 호수에서 살고 있는 나일 악어들이 낚시용 납추로 인해 납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다.
세인트 루시아 호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시망갈리소(iSimangaliso) 습지공원에 있는 호수로, 세계유산으로 지정돼있다.
최근 남아프리카 국립 생물 다양성 연구소(SANBI, South African National Biodiversity Institute)는 세인트 루시아 호수 내 서식하는 나일 악어들로부터 납중독 증상이 관찰된다고 발표했다.
나일 악어는 마다가스카르, 이집트, 남아프리카 등에 서식하고 있다. 전 세계 분포 수는 대략 6만 마리로 예상되며 세인트루시아 호수에 서식하는 개체는 약 1000마리 정도로 파악된다.
세인트루시아 호수에는 악어, 하마, 왕도마뱀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고 있지만, 생태관광지로 지정돼 1930년부터 일부 지역에 한해 레저 낚시가 허용됐다. 연구원들은 낚시에 사용된 납추를 납중독을 일으킨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악어는 소화작용 보조 혹은 수중에서 일정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돌을 섭취하는데, 이때 호수 바닥에 버려진 납추도 함께 삼켜버린다.
논문 저자 중 지구화학자 마크 험프리(Marc Humphries)는 악어가 삼켰던 납을 배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만성 납중독이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악어 체내에 축적된 납은 빈혈과 치아 손상을 유발하고, 심각한 경우 영양 불균형과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다.
연구팀은 야생 나일악어 22마리로부터 꼬리 지방 및 혈액을 채취해 지역 보호센터에 있는 세인트루시아 호수 출신 악어 3마리와 대조했다.
보호센터 악어들은 체내 납 농도가 평균 208ng/㎖로 나타냈지만, 야생 악어는 평균 1000ng/㎖ 이상으로 비교군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보통 인간 체내 납 농도가 100ng/㎖ 이하일 때 정상으로 보는데 이보다도 약 10배 높은 수치다.
야생 악어 중 유독 심각한 증상을 보인 5마리는 체내 납 농도가 6000ng/㎖를 넘겼고, 1마리는 무려 1만3100ng/㎖라는 값을 기록했다.
연구원들은 “표본으로 선택된 악어 일부에게서 이빨이 부러지거나 없어진 것을 관찰했다”라며 “그 중 한 마리는 비정상적으로 창백할 뿐 아니라 무기력 증세를 보여 심각한 빈혈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라고 밝혔다.
이번 논문에 기록된 악어의 혈중 납 농도는 이전에 보고된 것보다 높은 수치로, 지금까지 측정된 야생 척추동물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험프리는 납추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건 지속가능성과 연관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야생동물과 인간이 입을 피해를 줄이기 위해 납추 사용을 자제해야 하며, 환경 보호 당국에서 이런 움직임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해당 논문은 오는 9월 국제 환경 학술지 케모스피어(Chemosphere)에 게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