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뽕잎 좀 주실래요?' 울진 산양이 혹독한 겨울을 나기까지

2022-01-01     조은비 기자
울진에 살고 있는 산양 (사진 (사)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군지회)/뉴스펭귄

[뉴스펭귄 조은비 기자] '살아있는 고대동물', '화석동물'이라고 불리는 산양. 200만 년 전부터 지구에 서식하면서 그 모습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 같은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 '취약 (VU, Vulnerable)'에 속하며, 무분별한 국제거래를 규제하는 사이테스(CITES) 협약 부속서 Ⅰ급에 해당한다.

국내에는 약 900마리가 설악산, 비무장지대(DMZ), 경북 울진 등에 분포해있으며 멸종위기야생동물 Ⅰ급,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신석기, 청동기 시대부터 서식이 확인됐을 정도로 오랜 시간을 살아왔지만, 서식지 파괴, 먹이 부족, 밀렵 등의 피해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2014년 한국환경생태학회지에 올라왔던 'GPS Collar를 이용한 멸종위기 한국 산양의 행동 특성' 논문에서는 사람의 도움 없이는 향후 20년 내에 절멸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분석했다.

폭설도 산양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눈을 헤쳐나갈 수 없어 그 자리에 꼼짝없이 고립되기 때문이다. 1964~1965년 대폭설로 고립된 산양 약 6000마리가 사냥됐으며 폭설이 내렸던 2010년 울진에서는 25마리가 폐사체로 발견됐다.

국내 산양 생존을 위한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 울진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산양을 돕는 사람들이 있다.

(사진 (사)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군지회)/뉴스펭귄

시민들로 구성된 문화재청 산하 민간단체 (사)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군지회는 위급상황에 처한 산양을 구조하거나, 폐사체를 수거해 생태연구에 기여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사)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군지회에 따르면 울진에서 서식이 확인된 산양은 126마리다.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울진에서 구조된 산양은 총 24마리이며 구조된 뒤 치료를 받고 방사된 산양은 3마리, 폐사된 산양은 75마리에 달한다.

김상미 울진군지회 사무국장은 폐사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 치료시설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응급상황에는 빠른 치료가 필요한데, (울진 내에) 치료시설이 없어 그동안 강원도 인제 국립공원생물종보전센터까지 차에 태워 보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바이러스 등으로 2차 감염이 되기도 한다"고 지난달 28일 뉴스펭귄에 설명했다.

이어 "(산양의) 눈을 보면서 얘는 살아서 올 것이다. 예상을 해도 만 하루도 안돼서 폐사하기도 했다. 차 이동으로 인해 스트레스도 받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진 (사)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군지회)/뉴스펭귄

산양 치료시설이 부족한 상황이 알려지면서 울진산양치료센터 건립이 추진됐지만, 운영비 문제로 2019년 7월 중단된 상태다.

김 사무국장은 "다행히 지난해부터는 경북 영양군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수의사분이 현장으로 찾아와주시면서 응급처치가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울진 내에는 아직 치료시설이 없는 상태다.

위급상황에 처한 산양은 모니터링에서 발견되거나, 등산객, 농장주 등 시민들의 신고를 통해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인근 농가에서도 신고가 들어왔다. 김 사무국장은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쳐놓은 그물에 뿔이 걸려서 휘감겨 있었다"라며 "눈을 가리고 뿔에 엉킨 그물을 풀어 구조했다. 이 산양은 빠르게 구조됐기에 건강상 문제없이 현장에서 바로 방사될 수 있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사진 (사)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군지회)/뉴스펭귄
(사진 (사)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군지회)/뉴스펭귄

겨울철 산양의 생존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먹이부족 문제다. 산양은 1.5~2㎞씩 서식지를 정하면 잘 옮기지 않는 특성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경쟁에 밀린 일부 개체들이 먹이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다가 굶어서 폐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산양이 뽕잎을 잘 먹어서 뽕잎과 콩깍지를 먹이급여소에 채워놓는 활동을 한다"라며 "먹이급여소는 응봉산, 금강소나무숲길, 구수곡휴양림 인근에 4개가 설치돼있다. 12월부터 4월까지 먹이를 공급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벌채 및 조림이 진행된 지역에 산림청의 요청으로 먹이급여를 할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울진 내에서 산양 먹이공급을 돕기 위해 힘을 보태는 반가운 소식들도 들려오고 있다.

울진에 있는 노음초등학교 학생들은 지난해 12월 60만 원 상당을 기증해 산양 모니터링에 쓰이는 무인센서카메라 1대와 뽕잎을 제공했다. 올해 12월 23일에는 30만 원 규모의 뽕잎을 기증해 산양들의 먹이공급을 도왔다.

노음초등학교 학생들이 산양 먹이급여소를 찾았다 (사진 (사)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군지회)/뉴스펭귄

학생들은 교내 장터에서 판매한 달걀 수익으로 산양 먹이를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무국장은 "유정란에서 부화한 닭이 낳은 알을 팔아 얻은 돈을 1년간 모았다고 들었다"라며 "먹이를 기증한 학생들과 같이 카메라도 설치하고 뽕잎을 먹이급여소에 채워넣는 활동도 했다"고 설명했다.

손병효 도예가도 선뜻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도예작품 전시를 하고 얻은 수익 중 50만 원을 산양들의 겨울철 먹이공급에 기증한 것.

이 밖에도 (사)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군지회는 각각 올해 9회, 3회째를 맞이한 울진산양전시회, 울진산양캐릭터공모전 등을 진행하며 울진에 살고 있는 산양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사진 (사)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군지회)/뉴스펭귄

고향이 울진이라는 김상미 사무국장은 "동물을 정말 좋아하는데, 산양이 소과라서 눈이 너무 예뻤다. 정말 귀하고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 고장의 것은 내가 지켜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또 산양을 지키는 것이 이 생물만 지킨다고 볼 수는 없다. 환경은 순환되기 때문에 그 주변의 동식물도 더불어 보호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군지회 측은 직접 촬영한 울진 산양 영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산양의 순한 눈망울을 함께 감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