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 멸종위기종] 한라산에 갇힌 나는 천연기념물 '산굴뚝나비'

2021-12-11     이후림 기자
짝짓기 중인 산굴뚝나비 (사진 이영돈 박사 제공)/뉴스펭귄

뉴스펭귄의 새로운 기획시리즈 [우리 고장 멸종위기종]은 국내에 서식하는 주요 멸종위기종의 ‘현주소’를 알리는데 초점을 맞춘다.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종이든, 그렇지 않든 사라져가고 있는 종들이 처한 위기상황을 주로 드러내는 것이 목표다. 우리 바로 곁에서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다는 사실과, 그 종을 보존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다. 공존과 멸종은 관심이라는 한 단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뉴스펭귄 이후림 기자] 제주가 한반도와 연결돼 있던 한랭한 빙하기 시절, 서늘한 기후에서만 서식하는 한  북방계나비는 빙하기가 끝난 이후 북방계식물들과 함께 서늘한 기후를 유지하던 한라산 정상에 갇히게 됐다. 빙하기 종식과 해수면 상승으로 한반도 지형이 바뀌면서 제주와 육지가 분리됐기 때문이다.

'산굴뚝나비'의 한라산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비록 지금은 멸종위기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차저차 살아남은 덕에 2005년 천연기념물 명칭도 얻었을뿐더러 2019년에는 구상나무에 이어 한라산국립공원 깃대종으로도 선정됐다.

국내에서는 7월에서 9월 사이 오직 제주도 한라산 해발 1700m 이상 고산 지대에서만 관찰되는 귀한 몸이다. 한라산에서 사라진다면 한국에서는 곧바로 절멸이다. 

한라산 정상 (사진 이영돈 박사 제공)/뉴스펭귄

그러나 점점 조여오는 기후위기와 지구가열화(지구온난화)로 서식지가 줄어들고 먹이식물이 사라지면서 결국은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됐다.

최근 산굴뚝나비 개체 수는 눈에 띌 만큼 급격히 감소했다. 산굴뚝나비 분포와 개체군 동태, 서식지 보전 등 해당 개체 관련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이영돈 박사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이들 개체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하루 최대 1000마리 이상 보이던 산굴뚝나비는 최근 5년간 많으면 하루에 50~100마리 남짓을 볼 수 있게 됐다.

출현시기도 짧아졌다. 지구가열화로 한라산 정상 백록담 기후가 점점 따뜻해지면서 기존 7월부터 9월 초까지 출현했던 나비들이 7월 중순부터 나타나 8월 말이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늘한 기후를 선호하는 산굴뚝나비가 점점 더 높은 고산지대로 서식지를 옮기는 건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실제 한라산 해발 1300m부터 서식하던 개체들이 지금은 1600~1700m 사이에서부터 포착된다. 안 그래도 얼마 되지 않는 서식지가 점점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짝짓기 중인 산굴뚝나비 (사진 이영돈 박사 제공)/뉴스펭귄

이영돈 박사는 7일 뉴스펭귄에 "기후가 변하면서 저지대부터 고지대까지 적응해 서식하는 ‘굴뚝나비’ 종도 한라산 고산지대로 많이 올라오고 있는 상태"라면서 "이들과 경쟁에서 밀릴 것으로 예상되는 산굴뚝나비는 백록담까지 올라가다가 최후에는 결국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유충 때 먹고 자라는 볏과 식물 '김의털'도 최근 무섭게 확장하고 있는 '제주조릿대'에 밀려 상당수 사라졌다. 같은 볏과 식물 제주조릿대는 한라산 고온현상과 가축 방목 중단으로 번성하기 시작했다. 뿌리 번식이 뛰어난 제주조릿대가 서식지에 침입하게 되면서 키가 작은 식물들이 햇볕을 받지 못해 죽게 된 것.

산굴뚝나비 흡밀식물이 되는 바늘엉겅퀴, 금방망이, 시로미, 곰취 등은 모두 제주조릿대보다 키가 작다. 한라산을 뒤덮어가고 있는 제주조릿대 탓에 햇볕을 받지 못한 흡밀식물들이 속수무책으로 사라지고 있는 상태다.

한라산 백록담 (사진 이영돈 박사 제공)/뉴스펭귄
한라산 정상 (사진 이영돈 박사 제공)/뉴스펭귄

이 박사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릿대는 이들 멸종위기에 있어 부수적인 원인일 뿐 근본적 원인은 지구가열화다. 이 박사는 "추운 곳을 좋아하는 개체인데 따뜻해지는 기후에 밀려 백록담으로 향하는 것"이라며 "조릿대에 의해 먹이가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근본적 원인은 기후위기"라고 못 박았다.

결국 간접적인 인간활동이 이들에게 유일한 서식지를 빼앗은 것이다.

이 박사는 그럼에도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한라산 1700m 이상에서만 서식하지만 혹시나 따뜻한 기후에 적응하는 개체가 나타나면 다시 1400~1500m까지 내려올 수도 있다"면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조릿대를 제거하고 먹이식물을 심어 나비들이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내려올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이어 "한 번에 내려오도록 유인하는 것보다 알맞은 서식환경을 만들어주면서 조금씩 내려오는 것을 도와주면 따뜻한 기후에 적응하는 개체도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산굴뚝나비는 한라산에서 멸종되면 국내에서는 끝이다. 우리나라 한라산을 대표하는 깃대종이자 백록담에만 서식하는 상징성 있는 개체가 사라지면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산굴뚝나비 (사진 국립생물자원관)/뉴스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