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열매 맺힌 나무 거의 없어" 한라산에서 전해진 구상나무 근황

  • 조은비 기자
  • 2021.10.22 10:54
(위쪽부터) 2016년, 2021년 백록담에 위치한 구상나무에 맺힌 열매 (사진 국립산림과학원)/뉴스펭귄

[뉴스펭귄 조은비 기자] 한라산에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멸종위기 구상나무가 올해 거의 열매를 맺지 못했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잘 알려져 있는 구상나무는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등에서 서식하는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최근 지구가열화(지구온난화) 여파로 집단 고사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개체 수가 줄어들면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 '위기(EN, Endangered)'종에 지정됐다.

22일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한라산에 분포한 구상나무 중 올해 열매를 맺은 개체가 거의 없어 보존 및 복원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간신히 맺힌 열매에도 해충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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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실량 급감은 그동안 양호하게 열매를 맺어왔던 백록담 지역을 포함해 Y계곡, 백록샘, 남벽분기점, 장구목, 진달래밭 등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한라산 영실 지역에 있는 구상나무 45개체 중 15개체만이 평균 34.8개 열매를 맺었고 이마저도 해충 피해를 입었다. 이는 27개체 중 26개체가 평균 69개 열매를 맺었던 지난해 결실량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위쪽부터) 2016년 정상적으로 맺힌 구상나무 열매와 2021년 변형된 형태의 열매 (사진 국립산림과학원)/뉴스펭귄

10개체에서 열매 3개씩 총 30개를 채취해 관찰했을 때는 1개 만이 건전했고, 충실한 종자는 전혀 없었다. 충실한 종자는 씨앗이 가볍지 않고 건강한 종자를 뜻한다. 지난해 충실한 종자 비율은 95.9%로 높았다.

국립산림과학원은 한라산 구상나무 결실량이 지난해와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원인을 봄철 이상기후로 추정했다. 구상나무는 같은 그루에 암꽃과 수꽃이 생기는 '암수한그루'로 암꽃은 대개 5월에 달리고 수분이 이뤄지면 열매가 되어 10월까지 익는다. 하지만 올해 5월 초 한라산은 기온 급강과 서리가 얼어붙어 상고대가 맺히는 등의 이상기후를 겪었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4월 26일~5월 10일 사이 영실 지역의 일평균기온을 비교해보면 열매가 비교적 잘 맺혔던 2016, 2017, 2020년에는 섭씨 5~18.1도를 유지했지만 잘 맺히지 않았던 2018, 2019, 2021년에는 섭씨 10도 안팎을 유지하다가 섭씨 3.6~4.5도로 급감하고 다시 회복하는 현상을 겪었다.

개화기에 겪은 급격한 기온변화가 결실량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기후 피해 현상은 어리목, 윗세오름, 진달래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해충 피해도 심각했다. 간신히 맺힌 열매는 해충 피해를 입어 표면에 송진이 흘러나오고 형태가 휘는 등 건강한 상태를 찾기 어려웠다.

(위쪽부터) 2016년 정상적인 열매와 2021년 해충 피해를 입은 열매 (사진 국립산림과학원)/뉴스펭귄

조사에 참여한 임은영 연구사는 "기후위기로 인해 풍매화인 구상나무의 꽃가루 날림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는데, 개화와 결실로 이행되는 단계에서 기온이 급강하여 결실량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또한 급감한 구과들에 대한 해충의 경쟁적인 가해는 더욱 심각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임균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은 "내륙과는 달리 제주도 한라산 구상나무의 경우 해거리 현상은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구상나무 결실량 감소 원인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고 시급히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며 "향후 유관기관 및 전문가 집단 등과의 연구협력을 통해 대응해 나가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구상나무 열매. 기사 본문과 관련 없는 사진 (사진 국립생태원)/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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