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넘버5' 이면에 숨은... 아무도 몰랐던 향유고래의 멸종위기

  • 남주원 기자
  • 2021.03.27 00:00
샤넬 넘버 5 (사진 Flickr)/뉴스펭귄

[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개개인이 가진 욕망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충족시켜주는 방법 중 하나는 아마도 '향(香)'을 맡고 그 향에 취하는 행위일 것이다.

때때로 향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순간과 영원의 경계를 허무는 힘을 가졌다. 그렇기 때문에 향유고래의 배설물이, 침향나무의 침향과 사향노루의 사향이 이토록 귀하고 가치있게 여겨지는 것이리라.

욕망과 '멸(滅, 사라져 없어짐)'은 궤를 같이한다. 지나친 불꽃은 주변으로 튀어 그 일대를 남김없이 태워버릴 수 있다. 하나의 생물 종을 지구상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즉 '멸종'의 전제 조건은 인간의 욕망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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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세계 3대 향(香)'으로 불리는 용연향과 침향, 사향을 우리 인간에게 내어준 동식물은 현재 모두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향유고래 (사진 Wikipedia)/뉴스펭귄
용연향 (사진 The Natural History Museum)/뉴스펭귄

용연향은 수컷 향유고래의 배설물로 '바다의 로또'라고 불릴 만큼 값비싼 동물성 향료다. 오랜 시간 바다 위를 떠다닌 것일수록 그 과정에서 햇빛과 소금기에 노출돼 색이 옅고 딱딱하며 향이 좋다.

영어로는 '앰버그리스(ambergris)'라고 불리는 용연향은 명품 브랜드 샤넬의 시그니처 향수인 '샤넬 넘버 5(Chanel N°5)'와 같은 고급 향수 재료로 쓰여왔다. 용연향은 그 자체로는 향이 거의 없으나 다른 향료와 작용했을 때 향을 극대화시키고 오랫동안 보존시키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에는 희소성과 가격으로 인해 대부분의 고가 향수 브랜드에서 조차 이와 유사하게 만든 합성 향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여전히 '고급스러움'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향유고래의 국제 멸종위기 등급 (사진 IUCN)/뉴스펭귄

하지만 정작 향유고래는 멸종위기에 직면해 있다. 무분별한 남획과 해상교통인한 피해, 폐수, 해양쓰레기 등 인간이 야기한 각종 문제들로 생존에 위협을 받아 현재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 '취약'(VU, Vulnerable)종으로 등재돼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고래잡이가 금지되고 있으나 인간사회는 지난 수백 년 동안 향유고래를 포획해 왔다. 특히 향유고래의 거대한 장 속에서 만들어지는 용연향과 머리에서 나오는 질 좋은 기름은 인간의 탐욕을 더욱 부추겼다.

침향 (사진 Wikipedia)/뉴스펭귄

멸종위기에 처한 현실은 침향나무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서 '부모님 건강', '기력회복', '심신안정'과 같은 광고 문구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침향은 예로부터 굉장히 귀한 약재로 여겨져 왔다.

침향나무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일대에서 자라는데, 벌레 공격 등 자연적으로 상처를 입으면 이를 치료하기 위해 나무에서 천연 수지가 분비된다. 이때 수지가 목재 안쪽에 굳어져 형성된 것이 바로 침향이다. 

침향나무의 국제 멸종위기 등급 (사진 IUCN)/뉴스펭귄

침향이 건강에 이롭다는 소문이 확산하자 사람들은 침향나무를 무분별하게 채벌해 왔다. 침향 특성상 소량만 생산되는데다 인간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량 채취된 결과 자연산 침향은 거의 고갈되고 말았다.  

현재 생산되는 침향은 대부분 인공 침향으로, 동남아 현지에서 인위적으로 침향나무에 상처를 내 수액을 함유한 목재들이다. 짧은 시간 안에 다량의 침향을 얻으려 나무에 고의적으로 상처를 입히고 화학성분을 투입한다고 전해진다.

침향나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 '위급'(CR, Critically Endangered) 단계에 처해 있는 만큼 심각한 멸종위기종이다. 사이테스(CITES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부속서 2종으로도 등재돼 있어 국제거래시 수출입국간 사전 허가 및 증명 관계 등을 필수로 한다.

사향노루 (사진 국립생물자원관)/뉴스펭귄
돌체앤가바나 머스크 향수 (사진 Dolce & Gabbana)/뉴스펭귄

사향노루는 또 어떠한가. 사향은 수컷 사향노루의 배꼽과 생식기 사이에 있는 사향샘에서 채취한 동물성 향료로 일명 '머스크(musk)'라고도 한다. 

생식선에서 나온 분비물이므로 이성을 유혹하는 효과가 있다고 여겨져 이 또한 향유고래처럼 고급 향수의 재료로 쓰인다. 우리가 머스크향을 떠올리면 따뜻하고 포근하면서도 관능적인 느낌이 떠오르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다만 최근에는 대부분 합성 머스크향이거나 인공적으로 향을 만든 뒤 이름만 머스크 향수라고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머스크는 이성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향의 대명사로 여겨지곤 한다.

사향이 각종 향료 및 약재로 쓰임에 따라 사향노루 남획은 급증했고 결국 이들도 멸종위기를 피할 수는 없었다. 사향노루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과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에 등재돼 있다.

사향노루 국제 멸종위기 등급 (사진 IUCN)/뉴스펭귄

이처럼 무차별적인 인간의 욕망은 수많은 동식물의 죽음을 촉발하는 '멸종의 방아쇠'가 되고 말았다. 돈와 건강, 성적 매력 등을 위해 이들 종을 마구잡이로 손아귀에 넣는 행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가르는 것과 다름없는 꼴이다. 

'용연향과 침향 그리고 사향'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이 세 가지 대상은 그것들을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향유고래와 침향나무, 사향노루가 '살아있어야' 가능한 것들임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생물들이 이따금 자연 안에서 내어주는 선물을 우리가 오래도록 지혜롭게 누리기 위해서는, 이들 종을 보존하는 데 힘을 쏟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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