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피셜 지오그래픽] ⑧ 햇살, 공기, 시간이 조각한 마토보 언덕을 거닐다

  • 남준식 객원기자
  • 2020.11.27 08:00
혼자 떠난 여행에선 생각할 시간이 많다. 음악도 책도 친구도 없는 이때에 나는 무슨 생각들을 했던 걸까? 남은 건 사진 한 장뿐이다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남준식 객원기자가 이번에 소개하는 마토보언덕은 짐바브웨의 국립공원이다. 정확하게는, 약 3100㎢에 달하는 전체 마토보언덕 가운데 14%인 약 440㎢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화강암으로 이뤄진 구릉 지대인 마토보언덕은 강의 침식, 풍화작용에 의해 깊은 계곡이 생겼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좋아서 영국령 남아프리카 제국의 창시자인 세실 로즈가 'World's View(세계적 전망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상에는 지역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돌로 만든 신전이 있다. 또한 3000여 점에 이르는 고고학자료가 밀집해 있는데, 기린 코끼리 사자 얼룩말 등의 동물 그림, 활을 쏘거나 창을 들고 수렵하는 원시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동굴벽화가 유명하다. 약 2000년 동안 이 곳에 살았던 산족(부시맨)이 바위에 그린 수백 개의 그림, 흙가마를 비롯한 역사적 문화유물들이 많이 발견됐다. 국립공원 안 100㎢ 넓이의 동물 보호구역에는 세계에서 검은 독수리와 흑백 코뿔소가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곳 중의 하나다. 2003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편집자

내가 짐바브웨의 마토보 언덕(Matobo Hills)에 간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특이하게 생긴 돌'을 보기 위해서였다. 어째 내 눈에는 이런 것들만 보일까도 싶지만, 좋아한다는데 굳이 이유가 있어야만 할까! 그냥 좋다.

세계 3대 폭포이자 액티비티의 천국으로 불리는 빅토리아 폭포, 그곳에서 햇빛을 너무 쬈는지 조금은 아픈 머리를 가누고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덜컹이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여행의 낭만을 더했다. 생각보다 남아프리카의 겨울은 추워서, 침낭과의 애정이 불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룻밤을 꼬박 달려, 수도 하라레(Harare)에 이어 짐바브웨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불라와요(Bulawayo)에 도착했다. 영국 식민시절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듯, 곳곳에 유럽풍 석조건물이 눈길을 끌었다. 선선한 날씨와 적당한 고도감이 더해져 이국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 도시에 여장을 풀고, 도시락을 넣은 가방만 멘 채 마토보 언덕으로 떠났다.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짐바브웨의 최고권 지폐에는 다름 아닌 '돌'이 그려져있을 정도로, 짐바브웨에는 돌이 많고, 그만큼 돌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돌의 종류는 '화강암(granite)'이다.

마토보의 수많은 언덕 중에서도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섰다. '세계의 눈(World's view)'이라고 불리는 곳. 집채만 한 돌덩이들이 구를 듯 말 듯 어설프게 놓여있는 형상이 과연 영화 <파워 오브 원>에서 보던 것이 분명했다. 이 돌덩이들의 정식명칭은 '토르(Tor)'. 우리말로는 '핵석(core stone)'이라고 한다. 북한산이나 설악산과 같은 돌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들바위가 바로 토르인 것. 동글동글하게 생겼다고 해서 모두 자갈이라고 하면 곤란하다. 자갈은 물에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토르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우리는 당연히 산이 솟아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의 생각을 지배하는 이 고정관념을 잠시 내려놓아 보았다. 사실, 산을 덮고 있던 두꺼운 지표면이 긴 세월에 걸쳐 비바람에 씻겨 내려가고, 단단한 부분만 남게 된 것이 현재 보이는 산의 모양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깊은 지하에 묻혀있던 암반이 높은 압력으로부터 해방되면서 쩍쩍 금이 가지 않을까? 그 갈라진 틈을 '절리(joint)'라고 한다. 왜, 우리 몸의 뼈와 뼈 사이의 관절도 영어로 joint라고 하지 않는가. 이 절리와 절리 사이로 빗물이 침투하면 화강암의 '풍화(weathering)'가 진행된다. 풍화란 쉽게 말해, 돌이 썩는 과정이다. 돌이 썩으면? 그렇다. 흙이 된다.

교차하는 절리면을 따라 풍화가 진행되면 가운데의 신선한 부분만 남아 둥근 모양의 화강암괴가 남게 되고, 주변의 썩은 풍화물들은 빗물에 씻겨 내려간다. 이렇게 토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화강암은 어떻게 이토록 한 줌의 흙도 없는 민둥산을 만들 수 있는 것일까?

화강암을 구성하고 있는 주요 광물 가운데 하나가 '석영(quartz)'이라는 광물이다. 이 석영은 쉽게 말해 모래알이다. 풍화된 화강암은 잘게 부서지는데, 이때 떨어져 나오는 모래알은 빗물에 쉽게 씻겨 내려가기 때문이다.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이 신비롭고 처연한 장소가 풍기는 정서는 예전부터 많은 이들의 눈독을 샀나 보다. 남아프리카의 식민지 정치가 세실 로즈(Cecil John Rhodes, 1853~1902)는 이곳에 안장되기를 원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걸 보니, 한때 대륙을 주름잡던 제국주의자라고 죽음을 피할 순 없었나 보다. 짐바브웨의 옛 이름 로디지아(Rhodesia)는 로즈의 성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로부터 백 년의 세월이 지나 잡초만 무성한 마토보 언덕에는 쓸쓸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로즈의 무덤 옆에는 샹가니 기념비(Shangani Memorial)가 웅장하게 서 있다. 그런데 그것은 짐바브웨를 침략하다가 전사한 영국군을 기리는 것이다! 짐바브웨의 입장에서는 오욕의 산물이거늘, 지금까지 그대로 두고 관광객을 반기는 이유를 물었다. "It's a history(역사일 뿐)" 라는 가이드의 짧은 대답을 듣자, 예상치 못한 전개에 순간 '벙찌고' 말았다. 우리나라였으면 진작에 때려부수었을 것이라고 말하자, 이번엔 "I can't judge that(내가 판단할 일이 아냐)"라는 시니컬한 대답이 돌아왔다.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로즈의 무덤 옆에 앉아 끝없이 펼쳐진 화강암 바다를 바라보았다. 영화 <파워 오브 원>이 눈앞의 풍경과 오버랩됐다. 특히, 남아프리카에서 성장기를 겪는 영국인 소년 P.K에게 인생의 멘토 할아버지가 가르침을 주는 대목이...

"학교에선 자료를 머릿속에 담고, 자연에선 네가 본 것과 느낀 것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거라. 네가 품게 될 모든 질문의 답은 자연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옳은 곳을 보고 옳은 질문을 한다면, 그렇게 네가 찾은 답을 모아 그 누구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거란다." 영화 <파워 오브 원> 중에서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자연은, 그대로 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정복자인 양 행세한다 해도, 인간의 유한성은 자연의 무한성에 털끝조차 닿지 못한다. 제국의 정복자 로즈가 마토보 언덕 위에 누워있으나 언덕 아래에 누워 있는 수많은 죽은 이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는게 그 증거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토보는 그대로 있다! 

인간은 결국 자연에서 ‘풍화’되는 종(種)의 하나일 뿐이다. 그렇기에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 

마토보 언덕 위에서,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것들 곧 사라지고 없을 것들을 잠깐이나마 떠올렸다. 이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출발지, 아프리카로 여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뉴스펭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업체들이 기후노력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뉴스펭귄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신청에는 1분도 걸리지 않으며 기후솔루션 독립언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