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서 주운 북한쓰레기가 과자로... '씨낵'의 달콤한 마법

  • 이후림 기자
  • 2022.07.31 00:05
양양 서피비치에서 주운 북한쓰레기 (사진 이후림 기자)/뉴스펭귄
양양 서피비치에서 주운 북한쓰레기 (사진 이후림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이후림 기자]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라벨이었다. 쓰레기를 주워들고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한글로 쓰인 '복숭아향 탄산단물'. 북한 려명식료가공공장에서 만든 500ml짜리 달달한(?) 탄산음료였다. 

힙한 여름휴가지 중 한곳으로 꼽히는 강원도 양양 서피비치 구석에서 주운 쓰레기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서피비치 정중앙에서 왼쪽 방향으로 채 1분을 걷지 않았는데 펼쳐진 한적한 해변에서 발견했다.

텅 빈 해변에는 일회용 플라스틱 페트병, 비닐, 마스크, 우유팩, 빈 윤활제 통까지 각종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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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연안에서 떠밀려온 음료 비닐 포장재뿐 아니라 중국 플라스틱 생수병, 일본 음료병 등도 눈에 띄었다. 바다에서 얼마나 긴 시간 표류했는지 알 수 없는 쓰레기들은 예상되는 험난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멀쩡한 모습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쓰레기를 수거한지 10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씨낵(SEANACK)'이 제공한 봉투가 그새 꽉 찼다. 10분 만에 무게 1.5kg가량의 쓰레기를 수거했다.

윤활제와 중국, 일본 연안에서 떠밀려온 일회용 플라스틱병 (사진 이후림 기자)/뉴스펭귄
윤활제와 중국, 일본 연안에서 떠밀려온 일회용 플라스틱병 (사진 이후림 기자)/뉴스펭귄
양양 서피비치에서 수거한 쓰레기 (사진 이후림 기자)/뉴스펭귄
양양 서피비치에서 수거한 쓰레기 (사진 이후림 기자)/뉴스펭귄

씨낵은 환경재단과 한국관광공사, 제일기획이 함께 진행하는 대국민 쓰레기수거 캠페인이다. 바다(SEA)와 과자(SNACK) 합성어로 '바다쓰레기가 돈이 되는 과자 상점'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친환경과 여행을 결합해 재미난 '플로깅(plogging)' 캠페인을 진행해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씨낵 트럭에서 청소도구를 대여한 후 바다쓰레기를 수거해가면 무게에 따라 고래밥, 자갈치 등 해양생물 모양 과자를 받을 수 있다. 시원한 소프트아이스크림도 얻을 수 있다.

(사진 환경재단 제공)/뉴스펭귄
(사진 환경재단 제공)/뉴스펭귄
(사진 환경재단 제공)/뉴스펭귄
(사진 환경재단 제공)/뉴스펭귄
(사진 환경재단 제공)/뉴스펭귄
(사진 환경재단 제공)/뉴스펭귄

단 환경보호 취지에 따라 일회용품에는 과자를 담아주지 않는다. 텀블러, 캠핑용품 등 다회용기를 지참해야 한다.

캠페인은 지난 주말인 23일 강원도 양양 서피비치에서 최초로 시작됐고, 이번 주말인 30일과 31일에는 강릉시 경포해변에서 진행되고 있다.

오는 8월 6~7일에는 강릉시 주문진해변에서, 13~14일에는 속초시 속초해변에서 씨낵 트럭을 만날 수 있다.

참여자는 간단한 개인정보를 작성하면 씨낵이 제공하는 생분해 쓰레기봉투, 집게, 목장갑 등 각종 청소도구를 대여할 수 있다. 

씨낵이 제공한 청소도구 (사진 이후림 기자)/뉴스펭귄
씨낵이 제공한 청소도구 (사진 이후림 기자)/뉴스펭귄

캠페인이 시작된 23일, 전국 각지에서 서피비치를 찾아 우연히 씨낵 캠페인에 참가하게 된 일부 관광객은 해변 일대를 돌면서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했다. 참가자들에 따르면 해변에서는 다양한 쓰레기가 발견됐다.

휴가차 가족과 함께 서피비치를 찾은 미사강변초등학교 4학년 김동우 학생은 씨낵 트럭을 발견하고 곧바로 참여를 결정했다. 자연과 환경에 특히 관심이 많다는 동우 군은 단순 휴가차 놀러 온 바다에서 생각지 못한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어 뿌듯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김동우 학생은 "모래 아래 숨겨진 쓰레기가 생각보다 많았다"며 "각종 쓰레기를 주우면서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도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회가 된다면 친구들과 다시 한번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씨낵 캠페인에 참여한 미사강변초등학교 4학년 김동우 학생 (사진 환경재단 제공)/뉴스펭귄
씨낵 캠페인에 참여한 미사강변초등학교 4학년 김동우 학생 (사진 환경재단 제공)/뉴스펭귄

직장인 서동희(28)씨와 대학생 서동주(22)씨 자매는 휴가차 함께 서피비치를 방문했다가 해당 캠페인을 접하고 준비 운동 겸 쓰레기 수거에 참여했다. 자매는 해변 모래사장보다 주차장 근처, 서피비치 바로 앞 도로 등 해변 일대를 공략했다.

대여한 봉투 2개는 각종 쓰레기로 금세 가득 찼다. 

해변 일대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쓰레기는 단연 담배꽁초와 담뱃갑이었다. 담배 쓰레기의 경우 해변과 도로할 것 없이 많았지만 주차장 쪽 상황이 특히 심각했다. 일회용 음료병과 식품 포장재, 젓가락 등도 상당수 발견됐다.

씨낵 캠페인에 참여한 서동희 씨와 서동주 씨 (사진 환경재단 제공)/뉴스펭귄
씨낵 캠페인에 참여한 서동희 씨와 서동주 씨 (사진 환경재단 제공)/뉴스펭귄

동희 씨와 동주 씨 자매는 "서피비치에 자주 방문하는데 해당 캠페인을 처음 접해 호기심에 참여해 봤다. 생각보다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놀랐다. 특히 담배꽁초는 어느 곳에나 있었다"며 "쓰레기를 주우면서 웬만하면 일회용품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자매는 씨낵과 같은 캠페인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서동희 씨는 "환경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 말로만 '쓰레기를 줄이자' 하는 것보다 눈길을 끄는 캠페인 한 번이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쓰레기를 과자로 바꿔준다는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좋다. 쓰레기를 줍다 보면 '나 하나쯤이야'란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 환경재단 제공)/뉴스펭귄
(사진 환경재단 제공)/뉴스펭귄

서피비치에서 진행된 씨낵 캠페인은 자녀를 둔 가족단위 관광객 참여율이 비교적 높았다. 한국관광공사 ESG경영팀 안광호 차장에 따르면 참여자 60~70% 이상은 초등학생 이하 자녀가 있는 가족단위인 것으로 확인됐다.

쓰레기를 주우면 과자를 준다는 아이디어가 아이들에게 특히 반응이 좋았다는 평가다.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도 아이를 위한 환경교육 차원에서 충분히 참여를 고려할 만한 가치 있는 활동이라는 평가다.

(사진 환경재단 제공)/뉴스펭귄
(사진 환경재단 제공)/뉴스펭귄

그렇다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쓰레기를 주운 효과는 어땠을까? 캠페인 진행 마지막 날까지 두고 봐야겠지만 우선 시작은 꽤 성공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광호 차장은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덕에 첫날 이후 이튿날부터는 주울 쓰레기가 없을 정도였다"며 "서피비치를 청소하는 분들에 따르면 매일 나오는 쓰레기양이 어마어마하다고 하는데 적어도 캠페인 기간 동안에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 수가 줄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 차장은 "쓰레기 수거량이 줄은 효과도 있지만 무엇보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시민 계도 효과가 더욱 컸다고 본다"며 "성과가 좋다면 환경재단과 논의해 정기적으로 씨낵 활동을 펼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려해 보겠다"고 전했다.

다음 씨낵 캠페인은 오는 8월 6~7일 양일간 강릉시 주문진해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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