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인리발전소 흰 연기는 입김과 같은 현상?

  • 최나영 기자
  • 2022.05.04 18:58

인근 주민들 “대기오염물질 배출 우려…대책 마련해야”

[뉴스펭귄 최나영 기자]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40년 넘게 살았다는 주민 양승진씨. 그는 인근 서울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볼 때마다 찝찝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냄새가 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 것 같아요. 눈에 드러나는 증거가 없으니까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주민들이 모르는 사이 위험 물질이 폐에 점진적으로 쌓여 가고 있을까 걱정돼요.”

발전소 측은 해당 연기가 수증기라고 주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발전소 인근에는 '발전소 굴뚝에서 나는 하얀 수증기는 사람의 입김과 같은 현상'이라는 설명이 적힌 표지판이 달려 있다. 마포구청도 4일 <뉴스펭귄>과의 통화에서 “굴뚝에서 나오는 물질은 100도 이상인데 대기 온도와의 차이로 인해 수증기처럼 하얀 연기가 보이는 것”이라며 “내용을 잘 모르는 일반 주민들이 봤을 때는 오염물질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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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복합화력발전소(당시 당인리발전소)는 1930년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석탄화력발전소다. 중유발전소로 운영되다 1993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전환했다. 2013년 발전소 성능개선‧지하화 공사를 시작한 이후, 2017년 중단했던 전력생산을 2019년 재개했다. 발전소 지상에는 마포새빛문화숲이 조성돼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이곳의 서울복합 1‧2호기는 각각 400MW규모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발전본부 (사진 한국중부발전 홈페이지)/뉴스펭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발전본부 (사진 한국중부발전 홈페이지)/뉴스펭귄

발전소 가동초기엔 질소산화물 더 많이 배출

하지만 흰 연기에는 질소산화물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서울발전본부는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5ppm 이하로, 대기환경보전법상 질소산화물 배출허용기준인 20ppm보다 훨씬 낮다고 설명한다. 발전설비에 질소산화물을 질소와 수증기로 바꾸어주는 시설 등이 설치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해당 수치는 발전이 정상가동 상태에 이르러 안정화됐을 때의 배출량이다. 가동초기 단계에는 정상가동 상태 때보다 질소산화물뿐 아니라 다른 유해물질 배출량도 더 높다. 감사원이 2020년 발표한 ‘미세먼지 관리대책 추진실태’에 따르면, LNG발전소의 경우 가동 초기에는 질소산화물 외에도 일산화탄소‧총탄화수소를 비롯한 대기오염물질을 정상 가동 때보다 더 많이 배출한다.

전진형 당인리발전소 공해문제 주민대책위 위원장은 “트럭이 첫 시동을 걸 때 시커먼 매연이 쏟아지듯 발전소도 가동 초기 정상 가동 때보다 훨씬 많은 오염물질을 쏟아낸다”고 설명했다.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복합화력발전소의 경우 가동개시‧재가동시 5시간, 가동중지 직후 2시간 동안은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한 대기오염 물질 배출이 가능하다. 전 위원장에 따르면, LNG발전의 경우 화력발전에 비해 단가가 높아서 상시 가동이 어려워 가동 중단과 가동을 반복한다. 

 

서울발전본부 인근에 설치된 표지판 (사진 전진형 당인리발전소 공해문제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 제공)/뉴스펭귄
서울발전본부 인근에 설치된 표지판 (사진 전진형 당인리발전소 공해문제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 제공)/뉴스펭귄

감사원도 이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감사원은 보고서에서 “고농도의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인구가 밀집한 도심에 위치한 LNG발전소의 가동과 중단을 반복해 대기오염 물질 배출량이 증가하면 인근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고 진단했다.

실제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2020년 당인리발전소에서는 질소산화물이 222톤 배출됐다. 같은해 마포‧노원‧강남구 등 쓰레기 소각장 3곳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합한 것보다 많은 양을 배출한 것이다. 질소산화물은 미세먼지 원인 물질 중 하나다. 먼지‧환산화물‧질소산화물을 합친 초미세먼지 배출량과 비교해도, 당인리발전소의 배출량(14.9톤)과 3개 소각장의 배출량(16.3톤)은 비슷한 수준이다.

 

4일 서울 마포구 서울발전본부 앞에서 환경단체들과 주민들이 서울복합화력발전소 대기오염물질 배출 문제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4일 서울 마포구 서울발전본부 앞에서 환경단체들과 주민들이 서울복합화력발전소 대기오염물질 배출 문제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인근 주민들 “발전소 없애기 어렵다면 최소한 대책이라도 마련해야”
언제 어떤 물질 배출되는지 알리는 현광판 설치 등 제안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발전소에서 언제, 어떤 물질이 나오는지 인근 주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발전소 측이 어떤 물질이 배출되고 있는지 온라인에 공개하고 있지만 일반 주민들이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전 위원장은 “발전소가 언제 가동되는지 알아야 가동시간에 맞춰 창문이라도 닫고 공기청정기라도 사용할 수 있을 것 아닌가”라며 “유해물질이 많이 배출되는 날엔 지역주민들에게 안심문자를 보내는 등 발전소를 쉽게 없앨 수 없다면, 최소한 지역 주민들이 건강 걱정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조치라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해물질로 인해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조기에 해결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양씨도 “문제 해결을 위해 구의원‧시의원을 찾아가거나 간담회에 참석해 줄기차게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며 “역학조사를 하거나 어떤 유해물질이 나왔는지 현광판을 마련해 달라는 등의 요구를 했고 당시에는 해주겠다고 했지만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마포구청 관계자는 <뉴스펭귄>과의 통화에서 “당인리발전소 배출 물질 관련해서는 환경부에서 관리‧감독하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서울발전본부 관계자는 “오염물질은 기준치 이하로 배출된다”고 답했다. 환경부와는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 위원장 측은 “발전소 측은 대기오염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배출된다고 하지만 여러 자료의 수치가 다른 것을 봤을 때, 실제로는 그 이상 배출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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