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스트레스'로 쓰러지는 국립공원 전나무들

  • 최나영 기자
  • 2022.04.25 16:34

구상나무‧분비나무 집단고사 이어…전나무 부러짐 시작돼

(사진 녹색연합)/뉴스펭귄
(사진 녹색연합)/뉴스펭귄

[뉴스펭귄 최나영 기자] 지리산‧한라산을 비롯한 국립공원 구상나무가 집단 고사하고 있는 가운데, 오대산‧설악산 등에서 전나무가 부러져 쓰러지는 현상도 확인됐다. 환경단체들은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하며, 또 하나의 생물 종이 기후위기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등산로 인근에 서식하는 전나무가 부러지거나 쓰러질 경우 탐방객들의 안전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도 했다.

25일 녹색연합에 따르면, 강원도에 위치한 설악산국립공원과 오대산국립공원, 함백산 등산로 인근에서 전나무 대경목(줄기의 가슴높이 지름이 30㎝ 이상인 큰 나무)이 부러지거나 뿌리 뽑혀 쓰러지는 현상이 2020년 전후부터 확인되고 있다. 앞서 지난해 녹색연합은 지리산‧한라산‧덕유산을 비롯한 국립공원 1천200m 이상에 서식하는 구상나무‧분비나무 고사 속도가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빨라졌다고 발표했다. 이번엔 국립공원을 비롯한 산지 700~800m 지대에 사는 전나무가 부러져 쓰러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전나무는 구상나무‧분비나무와 형제격이다. 전나무‧구상나무‧분비나무 모두 소나무과 전나무속에 속하는 종으로, 생리 생태가 흡사하기 때문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고지대에 사는 구상나무‧분비나무는 서서히 말라 죽는 모습이 관찰돼 왔는데, 상대적으로 약간 아래 지대에 사는 전나무는 부러지거나 뿌리 뽑혀 쓰러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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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에 위치한 전나무가 부러져 있다. (사진 녹색연합)/뉴스펭귄
오대산에 위치한 전나무가 부러져 있다. (사진 녹색연합)/뉴스펭귄

함백산‧오대산‧설악산 등산로 인근 전나무 쓰러짐 발견

함백산의 경우 정상으로 연결된 고한 만항리 일대의 등산로에서 전나무 대경목 5그루 이상이 부러져 있는 것이 확인됐다. 키 20m, 지름 1m 가까이 되는 전나무가 부러져서 숲속 바닥에 처박혀 있는 것을 녹색연합이 발견한 것이다.

오대산의 경우, 상원사 주차장에서 비로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에서도 전나무 거목들이 쓰러지거나 부러지는 현상이 발견됐다. 쓰러지진 않았지만 쓰러지거나 뿌리뽑힐 징후를 보이는 전나무도 있었다. 상원사 주차장을 지나서 비로봉으로 오르는 등산로 돌계단 바로 옆에 위치한 지름이 약 120㎝가량 되는 대경목이 그렇다. 이 나무는 줄기 아래쪽이 썩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껍질이 이미 벗겨지고 있으며 심재부(나무줄기의 목질부에서 중심부에 있는 단단한 부분)까지 구멍이 뚫리고 있었다.

녹색연합 측은 “밑둥이 썩고 타들어가거나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하면 뿌리째 쓰러질 수 있다”며 “등산로 바로 옆이라 태풍이나 강풍이 불 때 밑둥이나 중단부가 통째로 부러지면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어,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함백산에 서식하던 전나무가 부러진 모습. (사진 녹색연합)/뉴스펭귄
함백산에 서식하던 전나무가 부러진 모습. (사진 녹색연합)/뉴스펭귄

지리산 가문비나무 부러짐도 곳곳서 확인

설악산의 경우 오색-대청봉 구간의 등산로에서 전나무 거목이 부러진 것이 확인됐다. 설악산은 오대산과 함께 전나무가 잘 보전되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설악산은 백담사 주변을 비롯해 수렴동 계곡 곳곳에 원시성 전나무숲이 있다. 내설악(설악산 서쪽)의 장수대 지구에도 전나무숲이 곳곳에 있다. 녹색연합은 “등산로 반대 방향으로 부러진 나무가 행여 등산로 방향으로 부러졌다면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며 “설악산도 전나무가 부러지거나 뿌리뽑히는 현상이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탐방객 안전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리산국립공원에서는 가문비나무가 곳곳에서 부러진 것이 확인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법정 탐방로(샛길)에 위치한 것이 많이 부러졌다는 점이다. 부러진 가문비나무 중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가문비나무도 포함돼 있었다. 지리산 중봉 등산로 바로 옆에 있던 이 나무는 지름이 1m, 키가 30m 가량이다.

 

오대산 등산로 사이 곳곳에서 부러지거나 뿌리뽑힌 전나무가 발견됐다. (사진 녹색연합)/뉴스펭귄
오대산 등산로 사이 곳곳에서 부러지거나 뿌리뽑힌 전나무가 발견됐다. (사진 녹색연합)/뉴스펭귄

환경단체 “원인은 기후 스트레스…
전나무 공생 생물에 영향 미칠 것”

녹색연합은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기후 스트레스를 지목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적설량 부족에 겨울‧봄철의 건조가 겹치면서 나무가 허약해진 상태에서 강풍이 불자 부러졌다는 설명이다. 녹색연합 측은 “본래 침엽수는 태어날 때부터 수백 년 이상 자라는 과정에서 태풍이나 강풍을 비롯한 모진 바람에도 꼿꼿이 견디며 살아간다”며 “그런데 최근 10년 사이에 기후변화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화하면서 곳곳에서 부러짐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전했다.

녹색연합은 전나무가 죽어가는 것을 막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전나무가 죽어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며 “전나무 한 종이 없어지면 전나무와 공생하며 살아 온 100종이 넘는 생물 종이 영향을 받는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우려했다.

 

설악산 등산로 인근에 전나무 대경목이 부러져 있다. (사진 녹색연합)/뉴스펭귄
설악산 등산로 인근에 전나무 대경목이 부러져 있다. (사진 녹색연합)/뉴스펭귄

환경단체 “등산로 옆 전나무 부러지면 탐방객 위험”
국립공원공단 “자체 조사 완료…내년 정비 예정”

부러지거나 쓰러진 전나무들이 등산로 인근에서 많이 발견된 만큼, 전나무 고사가 탐방객들의 안전을 해치지 않도록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전나무는 국내 침엽수 중 부피와 무게가 큰 편에 속한다. 키가 약 30미터에 이르는 것도 있다. 서 위원은 “바람이 불어 부러질 때 다른 나무는 그냥 쓰러진다면 몸집이 큰 전나무는 조각이 나 버린다”라며 “거의 바윗돌 정도의 무게인 나무가 등산로 한 가운데로 뚝 떨어져 사람을 덮치는 등 매우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녹색연합은 설악산‧오대산‧태백산 일대의 국립공원과 주요 사찰에 서식하는 전나무로 인한 등산로 안전 위협에 대해 조사할 것을 정부에 제안했다. 특히 해당 등산로에서 100m 반경에 있는 전나무‧가문비나무‧구상나무‧분비나무‧잣나무를 전수조사하고, 건강에 문제가 있는 나무들은 별도의 관리를 함에 따라 안전 대책을 시급히 세워야 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환경단체 쪽에서는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하는데 수명이 다 돼서 고사한 것인지 기후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며 “국립공원연구원에서 원인에 대해 연구하고 있고, 결과는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립공원 안에 등산로 옆에 있어서 위험을 주는 수목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조사를 완료했다”며 “예산을 요구해서 내년에 어떤 방식으로든 정비를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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