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파는 정유사가 '유튜브 저화질' 권하는 사회

  • 임병선 기자
  • 2022.03.19 00:00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사진 임병선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임병선 기자] 최근 기업들은 자신들이 '친환경 경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개인에게도 '친환경 실천'을 호소하고 있다. 국내 정유사들도 마찬가지다.  

정유사 GS칼텍스는 최근 제로웨이스트, 플라스틱 분리배출을 강조하는 게시물을 올리며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해 개인 실천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업체는 지난달 27일에는 '북극곰의 날'을 기념해 "우리 모두의 애정과 관심이 있다면 빙하가 녹아 멀어진 북극곰 가족을 다시 이어 줄 수 있다"며 "오늘 하루만큼은 북극곰들을 위해 의미 있는 친환경 실천을 해보면 어떨까"라고 밝혔다.

(사진 GS칼텍스 페이스북 캡처)/뉴스펭귄
(사진 GS칼텍스 페이스북 캡처)/뉴스펭귄

전 세계 최고 수준 과학자들이 기후위기 원인을 확증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제6차보고서 제1실무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위기 주 원인은 인간의 화석연료 사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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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생존에 꼭 필요한 북극 얼음이 사라지는 사태가 유발된 배경에는 개인이 유튜브를 3시간 동안 보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지 않은 행위보다는, 최신 자료 기준으로 봤을 때 2020년 온실가스를 779만t 배출하고 2021년 2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GS칼텍스를 비롯해 화석연료 기업의 책임이 더 크다는 의미다. GS칼텍스의 2021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 대비 5.03% 줄어든 것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였던 상황이라 실제적으로는 감축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진 현대오일뱅크 페이스북 캡처)/뉴스펭귄
(사진 현대오일뱅크 페이스북 캡처)/뉴스펭귄

국내 다른 정유사들도 비슷하게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이지 못한 상태에서 '개인의 친환경 실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간단한 실천으로 지구를 구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콘텐츠를 게시했다. 이들이 제시한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이란 스마트폰 밝기를 낮추고 동영상 스트리밍을 지양하고 다운로드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것, 동영상 시청 시 화질 줄이기, 직장 메일함에 쌓인 메일 삭제하기 등이다.

2020년 현대오일뱅크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683만t이다.이는 전년 대비 소폭 증가한 수치다. 이런 탄소배출량을 담보로 현대오일뱅크는 2021년 기준 영업이익 사상 최대치인 1조 1424억 원을 기록했다.

에스오일도 9일 SNS를 통해 '숨막히는 디지털발자국?'이라는 콘텐츠를 내놓고 '스마트폰과 혼연일체 된 일상'에서 '디지털 탄소발자국을 줄여보세요'라고 제안했다. 이들은 사람들이 각각 데이터 8.6mb, 전화통화 26분, 유튜브(동영상 플랫폼) 15시간 등을 이용할 때마다 자동차 1km 주행 시 발생하는 온실가스 양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7일에는 또 소비자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고기 없는 하루를 실천하자며, 탄소배출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에스오일 페이스북 캡처)/뉴스펭귄
(사진 에스오일 페이스북 캡처)/뉴스펭귄

2020년 에스오일의 탄소배출량은 961만t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됨에도 2019년 대비 소폭 증가했다. 2021년 말 사업보고서 기준 에스오일 자본 총계는 약 6조 9818억 원이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개인의 친환경 실천을 제안하는 게시물을 올리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업체는 최근 계열사인 SK에너지를 통해 기존 휘발유보다 비싼 대신, 탄소배출권으로 탄소배출량을 상쇄한 '탄소중립 휘발유·경유'를 출시하면서 해당 제품을 사용하면 소비자들이 '친환경'을 실천할 수 있다고 홍보한 바 있다. 업체의 '탄소중립 연료'는 일반 휘발유에 비해 L당 12원 더 비싸다.

(사진 SK이노베이션)/뉴스펭귄
(사진 SK이노베이션)/뉴스펭귄

그러나 기후솔루션, 카본마켓워치 등 국내외 환경단체 분석에 따르면 해당 제품이 탄소중립이라는 근거가 부족하다. 기후솔루션은 SK에너지가 탄소배출권을 어디서 구매했는지조차 공개하지 않았으며, 연료가 연소되는 단계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계산도 하지 않은 제품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개인 역할도 있고, 석유기업 혼자서 기후위기를 모두 일으킨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이 대대적으로 변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친환경 실천'만 강조하면 개인에게 기후위기 책임이 전가될 우려가 있다.

청년기후긴급행동 오지혁 공동대표는 앞서 뉴스펭귄과 대선 관련 '기후0번' 캠페인 인터뷰에서 국내 정유사들이 '개인의 친환경 실천'을 홍보하는 행위가 마치 소비자를 상대로 한 '가스라이팅' 같다고 지적했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상대방이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만들고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다.

화석연료 기업이 '개인의 탄소배출량 절감'을 독려하는 형태의 광고, 홍보 행위는 해외에서 환경단체나 시민단체로부터 강한 지탄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초대형 화석연료 기업인 BP가 대중화한 '탄소발자국'이라는 개념과 절감 캠페인은 개인에게 기후위기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로 지적받았다. 

펜주립대(Penn State University) 교수들은 2019년 5월 미국 언론 USA투데이 사설을 통해 "개인이 비건을 수행하 기후를 구할 수 없다.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사설에서 기후를 악화시키는 개인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행위는 사람들끼리 기후 문제를 두고 분열하며, 일부 사람들을 '죄지은 사람(people in sin)'으로 몰아가게 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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