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사람의 오만과 자연의 권리

  • 임항/뉴스펭귄 자문위원
  • 2022.01.24 10:18

어떻게 하면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을 실천으로 바꿀 수 있을까

임항 (전 국민일보 환경전문 대기자)
임항 (전 국민일보 환경전문 대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이 장기화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가 수개월 안에 바이러스의 소멸단계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도 있지만, 당장은 우리나라도 세계도 이 전염병과 치열하게 전쟁 중이다. 코로나19는 박쥐를 비롯한 야생동물로부터 유래했으며, 기후변화의 원인과도 맞닿아 있는 무분별한 개발 열풍과 자연 훼손으로 빚어진 것이라는데는 이견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기후변화나 생물 다양성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뒷전이다.

특히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 쏟아지는 구체적 공약들도 유독 기후변화와 환경문제는 피해가고 있다. 이 시대의 가장 화급한 과제 중 아무리 양보해도 세 손가락 안에 꼽아야 할 기후변화 이슈를 입에 담기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는 것은 뭔가 비정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두 명의 유력후보는 주로 경제성장 잠재력의 재료로서만 그린뉴딜이나 탄소중립을 거론할 뿐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당연히 감내해야 할 온실가스 감축의 고통분담 필요성을 설득하고 효과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게 정치인의 의무 아닌가.
 

한국인, 경제성장 지향형 사회 선호…기후행동 가치관과 정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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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선 지금도 부동산 가격과 경제성장에 목을 매는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이래 한국 국민들을 사로잡고 있는 성장물신주의는 코로나19 발발 이전과 비교해서도 오히려 더 큰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글로벌리서치와 함께 지난 2020년 6월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포스트코로나 관련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분배와 성장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3.6%가 ‘성장’을 택했다. ‘분배’라고 답한 이는 24.7%에 그쳤다. ‘개인 간의 능력 차를 인정하고 경쟁력을 중시하는 사회’를 선택한 사람(61.6%)이 ‘개인 간의 능력 차를 보완한 평등사회’를 택한 사람(14.7%)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세금을 적게 내는 대신 위험에 대한 개인의 책임이 높은 사회’를 선택한 사람(50.4%)이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위험에 대한 사회보장 등 국가의 책임이 높은 사회’를 택한 사람(22.3%)보다 배 이상 많았다. 더욱이 이런 응답 추세는 2년 전 동일한 문항으로 실시했던 조사결과보다도 그 격차가 더 커진 것이다.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인들이 코로나 19와 같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미증유의 사태를 겪고 나서도 각자도생형, 경세성장 지향형 사회를 더욱 선호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이런 결과는 기후행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 전환, 녹색 전환, 무한 경제성장 모델의 탈피, 지속불가능성의 해체와는 정반대인 가치관을 한국인이 강고하게 유지하고 있음을 한 번 더 각인시킨다”고 강조했다. (<탄소사회의 종말>, 2020, 21세기북스, 329p.)
 

기업과 정부 역할 크지만 실천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

정치인들은 득표를 위한 계산에서 기후위기에 매우 낮은 순위를 매기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에서 80~90%의 국민이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기후변화를 얼마나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느냐, 이를 정부 정책의 얼마나 높은 우선순위에 둬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다른 국가 의제들에 비해 관심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사IN이 한국리서치와 함께 실시해 1월 10일 공개한 대규모 여론조사 2022 대한민국 기후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1000명은 ‘나의 문제처럼 느낀다’는 의제로 주거‧부동산(74.9%), 일자리‧고용(70.5%), 저출산‧고령화(68.3%)에 이어 기후위기‧환경문제(64.5%)를 네 번째로 많이 손꼽았다. 정부의 최우선정책이라는 의제에서도 기후위기‧환경문제는 43.3%로 네 번째로 꼽혔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이 더 많이 요구되는 쪽은 아무래도 기업과 정부일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실천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비중이 농업을 포함한 산업과 발전 관련 부문에서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소비자들이 단합된 힘을 발휘한다면 산업계에 탄소중립적 경영을 요구하거나, 소비행태 변화를 통해 에너지 전환‧친환경 경영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쉽지 않은 길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정치인들에게 후손들을 위한 고통분담을 앞장서서 호소하고 이를 실천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더욱 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사진 pixabay)/뉴스펭귄
(사진 pixabay)/뉴스펭귄

 

한 종의 멸종, 전체 붕괴로 이어질 수도

탄소중립 사회로 간다는 것은 우리들이 지금까지 적은 비용으로 누리던 편리함과 쾌적함, 대량소비 등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물론 재생에너지, 배터리, 인공지능 등 탈탄소 기술개발과 이에 대한 투자를 통해 성장률이나 삶의 질을 낮추지 않고도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고 과학자와 전문가‧산업계는 대체로 믿는 편이다. 그러나 과거 로봇기술이 그랬듯이 기술개발의 미래는 불확실하고, 그것이 성공하더라도 상업화까지의 긴 과정이 남아 있다. 또한 화석연료 소비를 크게 줄이는 기술이 도입되면, 전기차의 경우처럼 그만큼 자동차 소비가 늘어나 감축효과가 무색해지는 제본스의 역설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온실가스와 나와 내 가족, 우리나라에는 닥치지 않을 것만 같은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해 지금 당장의 편리함과 즐거움을 포기하라고 다짜고짜 요구한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우리가 왜 기후변화를 걱정해야 하고, 왜 그것에 대처해야 하는지, 더 넓은 맥락에서 관점을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구 안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식물들에게 눈을 돌려보자. 생태계와 그 안의 동‧식물, 그리고 우주가 모두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심지어 사람의 대장 안에도 우주와 생태계의 형성원리가 구현돼 있다. "우주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이들은 다시 우주를 닮은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진화된 인류는 또 하나의 우주"라고 할 수 있다. (신준환, <나무의 일생, 사람의 마음>, 2021, 156p.)

따라서 자연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도 일어난다. 수렵채취를 하던 북미의 인디언들은 특정 동‧식물종이 사라지면 사람에게도 위기가 닥친다고 믿었다. 생태계의 각 종간의 연결고리는 워낙 복잡해서 그 작동 메커니즘의 만분의 일도 결코 알 수 없다. 중남미에서 나비들의 날개짓이 북미의 허리케인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 사회생물학자 최재천은 이를 젠가놀이에 비유했다. 어떤 팻말을 제거했을 때 전체 구조물이 다 무너질지 모르는 것과 같이 생태계에서 어느 한 종의 멸종이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생물 다양성의 보전은 그것 자체가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대책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인류는 지금까지 화석연료를 제한 없이 마구 캐내듯이 생물종들도 대규모로 약탈해 왔다. 또한 화석연료와 광물 개발이 생태계 훼손과 동‧식물종의 대량멸종의 직접적 원인이기도 하다.

(사진 pixabay)/뉴스펭귄
(사진 pixabay)/뉴스펭귄

 

자연에서 일어난 일은 사람에게도 일어난다…
인간중심주의‧무제한 경제성장 깨뜨려 멸종‧기후변화 막아야

캐나다의 환경법전문 변호사인 데이비드 R. 보이드는 2017년에 펴낸 책 <자연의 권리>에서 “다른 동물, 종, 자연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남용하는 행태의 근간에는 서로 연결된 세 가지 고질적인 관념이 자리한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인간중심주의, 즉 인간은 자연 세계의 나머지와 별개이며 그보다 더 우월하다는 만연한 믿음이다. 이러한 우월 콤플렉스로 인해 우리는 인간이 진화의 정점에 위치한다고 본다. 둘째는 생물과 무생물을 포함한 자연의 모든 것이 우리의 재산이며, 우리는 그것들을 마음대로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셋째는 무제한의 경제성장을 현대사회의 지상과제로서 추구할 수 있고,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23p.)

이 세 가지 관념을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기후변화 대응의 실천 동력을 높이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수백만 종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다른 모든 종만큼이나 물‧공기‧식량‧안정적 기후를 가져다주는 생태계에 생물학적으로 의존적이다. 인간이 땅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을 공동체로 여길 때 그것들에 대한 남용은 사라질 것이다. 모든 생물종은 지구공동체에서 스스로 살아갈 권리를 지닌다. 이제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입법기관‧법원이 동‧식물종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하기 시작했다. 침팬지와 범고래 등 억류된 동물이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소송이 제기되고 종종 승소하기도 한다. 뉴질랜드와 에콰도르 등지의 헌법‧법령‧판사들은 강과 숲, 생태계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인간에 의한 멸종을 멈춰라. 자연에서 일어난 일은 사람에게도 일어난다는 깨달음이야말로 기후변화에 맞선 실천을 촉발할 가장 강력한 기폭제다.

필자 소개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감사(현) / 국민일보 환경전문기자(전)/ 국민일보 논설위원(전)

*본 기고문은 필자의 고유한 견해로, 뉴스펭귄의 편집방향과는 무관합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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