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뱀의 박제된 '슬픈 운명'

  • 남주원 기자
  • 2019.12.22 10:48

서울대공원에서 자연번식에 성공한 그물무늬왕뱀
사육공간 부족으로 알 20개 중 2개만 부화, 나머지는 '박제'
길이 8m, 세상에서 제일 큰 뱀...20마리 더 키우려면 사육장 400배 커져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보아뱀/뉴스펭귄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왕자'에는 ‘코끼리를 집어삼킨 보아뱀’이 나온다. 코끼리를 잡아먹을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크다는 말인가.

동화에 등장하는 보아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마어마하게 큰 뱀이 실제로 존재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뱀 중 하나로 꼽히는 그물무늬왕뱀이 바로 그 주인공.

'어린왕자'의 보아뱀도, 우리가 영화에서 자주 보는 무시무시한 아나콘다도, 모두 그물무늬왕뱀과 함께 ‘보아과’에 속하는 뱀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뱀’이라는 타이틀을 놓고 봤을 때 길이는 그물무늬왕뱀이 더 길고, 굵기와 무게는 아나콘다가 더 무겁다.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그물무늬왕뱀은 길이 4.8∼7.6m, 무게 160㎏ 이상이다. 육식성으로 새나 포유류를 잡아먹으며, 성장할수록 먹이의 크기도 점점 커진다. 작은 뱀들은 쥐를 먹지만 크면서 천산갑, 고슴도치, 원숭이, 멧돼지, 쥐사슴 등을 먹는다. 심지어 호랑이나 표범, 악어처럼 무서운 맹수들도 종종 잡아먹는다. 그물무늬왕뱀은 상대를 자신의 기다란 몸으로 칭칭 휘감아 질식시켜 죽인다. 

(사진 서울대공원)/뉴스펭귄

이 커다란 뱀을 동물원에서 사육하려면 최소 얼마만큼의 공간이 필요할까.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그물무늬왕뱀은 ‘둘레는 가장 긴 개체 길이의 125% 이상, 최소 너비는 가장 긴 개체 길이의 20% 이상, 높이는 2m 이상’의 사육장에서 서식해야 한다. 게다가 한 마리를 추가할 때마다 사육시설 넓이를 35%씩 늘려야 한다. 이 기준은 아나콘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서울대공원은 지난 6일 그물무늬왕뱀의 번식을 최초로 성공시켰다. 하지만 법정 사육공간이 확보되지 못했기에 부화 예정이었던 20여 마리의 새끼 뱀들 중 단 2마리만을 살릴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공원측은 “국내 유관 동물원에 수용여부를 알아보았으나 사육시설 설치기준으로 적당한 기관을 찾지 못했다. 외국 동물원으로의 반출은 국내 여건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물무늬왕뱀 한 마리가 8미터까지 자라게 되면 둘레는 10미터 이상, 최소 너비는 1.6미터 이상, 높이는 2m 이상의 사육공간이 필요하다. 추후 그물무늬왕뱀의 어마어마해진 길이를 감안했을 때, 만약 20마리가 추가된다면 서울대공원은 현재의 뱀 사육장에서 넓이가 약 404배 늘어나야 한다. 서울대공원은 이러한 한계로 인해 안타까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동물원 측은 “부화를 중지한 알은 모형 제작에 참고하기 위해서 보관 중이며 교육연구용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현재 일반인 대상 공개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사육시설 설치기준과 관련한 법률들을 실제 시설환경에 적용하기에는 애로점이 적지 않은만큼 앞으로 논의를 통해 개정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물무늬왕뱀은 국제보호종으로, 현재 CITES II(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교역에 관한 협약)에 등재돼 있다. 

한반도의 극한호우는 지구가열화가 원인이라고 카이스트(KAIST) 연구진이 최근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먼 나라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는 급박하고 구체적인 위험입니다.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위기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다른 많은 언론매체들과 달리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나 주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자본,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뉴스펭귄이 지속적으로 차별화 된 기후뉴스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후위험을 막는데 힘쓰도록 압박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입니다만, 뉴스펭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기꺼이 후원할 수 있는 분들께 정중하게 요청드립니다. 아무리 작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지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가능하다면 매월 뉴스펭귄을 후원해주세요. 단 한 차례 후원이라도 환영합니다. 후원신청에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으며 기후위험 막기에 전념하는 독립 저널리즘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