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멸종위기종의 날과 기요메의 사투(死鬪)

  • 김기정/ 발행인 겸 편집인
  • 2021.04.01 09:04
(사진 본사DB)/뉴스펭귄

 

“차츰차츰 피와 기력과 의식이 사라져갔지만, 개미처럼 고집스럽게 나아갔고 장애물을 만나면 되돌아 우회했으며 쓰러지면 다시 일어났고 비탈길을 기어올랐으나 만나는 건 까마득한 낭떠리지 뿐. 눈밭에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므로 스스로에게 조금의 휴식도 허용하지 않았다. 돌덩어리로 변하지 않기 위해 넘어지면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앙투안 생텍쥐페리의 소설, ‘인간의 대지’에 등장하는 명장면이다.

생텍쥐페리의 동료 비행사였던 기요메가 이 장면의 주인공. 그는 눈 덮인 안데스산맥에 불시착해 사경을 헤매다가 일주일 만에 극적으로 생환했다.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피켈이나 로프, 식량도 없이 해발 4500미터 고지의 암벽을 따라 나흘 밤 닷새 낮을 걷고 또 걸어서. 발과 무릎, 손에서 피를 흘러나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고 죽음의 잠에도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가족과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회복한 뒤에는 다시 비행기 조종간을 잡고 광대한 하늘길을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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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정된 ‘멸종위기종의 날’을 맞아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생각하는 건 멸종저항의 길이 기요메의 사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기요메보다 훨씬 처절할 게 분명하다. 기요메는 눈보라치는 안데스산맥에서 홀로 죽음의 위험과 마주했다. 즉각적이고 가장 현실적인, 만져지는 죽음의 위험이었다. 반면 멸종을 이겨내기 위해 가는 길은 만질 수도, 느껴지지도 않는 죽음의 위험에 ‘맞서자’고 하는 것이다. 당장 자신에게 닥치지 않았고, 살아 있는 동안 닥칠 가능성은 전혀 없어보이는 위험을 위해 누가 목숨을 걸고 싸우겠는가.  그래서 멸종을 늦추거나 피하기 위해 힘을 모으자고 외치는 일은 기요메의 그것과는 층위가 다른 사투인 것이다.

국립생태원이 제작한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포스터(사진 본사DB)/뉴스펭귄

멸종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은 멸종위기종 동물들을 먼저 떠올린다.

이어 식물 중에서도 멸종위기종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다. 그리곤 그게 뭔 대수일까 한다. 지구상에 있는 수많은 동식물 가운데 ‘몇 개’가 멸종된다고 무슨 문제일까, 왜 호들갑을 떨까 의아해 한다. 지구 탄생 이래 지구생태계를 구성했던 동물 가운데 99%가 멸종했다는 과학적 사실을 제시해도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 스탠퍼드대 폴 에를리히 교수 연구팀의 분석을 보면, 앞으로 20년 안에 육지 척추동물의 500여종이 멸종의 위기에 처한다. 생물의 멸종속도가 이전에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빨라지고 있다고 연구팀은 경고한다.

지구생태계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동식물들이 그물망으로 촘촘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하나 둘 사라지면 결국 인간의 생존도 위험하다. 이 역시 과학적 사실이지만, 당장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200~300년 뒤 인류가 큰 숙제를 떠안게 되겠군 하는 정도만 해도 멸종감수성이 있는 편에 속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덕도신공항 건설과 같은 '짓'을 서슴없이 한다.

환경단체들의 조사를 보면 가덕도에 활주로를 깔려면 수심 20미터 깊이의 바다를 메워야 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돌과 흙을 확보하려면 가덕도의 야산들을 깎아야 한다. 해발 200~270미터 높이의 산봉우리 3개가 잘려나가게 된다. 대규모 절토와, 돌흙을 바다에 메우면서 발생하는 생태환경 파괴는 환경재앙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가닥도 일대는 지형보전 1등급, 생태자연도 1등급, 해양생태도 1등급 영역이 다수 포함돼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겠단다. 기후악당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는 대한민국 정부는. 보궐선거를 코앞에 둔 여야 정치인들과 뻔뻔스럽게 야합하면서. 가덕도에 속전속결로 공항을 건설하기 위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한 여당 국회의원이 현재 환경부장관으로 앉아있는데 더 보탤 말이 있을까? 

지리산에는 반달가슴곰이 산다.

2000년대 초 5마리만 남은 것으로 추정돼 절멸을 눈앞에 뒀다가 복원사업 끝에 현재 지리산을 비롯한 야생에 69마리가 ‘제 터’를 잡고 사람들과 공존한다. 그런데 경남 하동군은 반달가슴곰 서식지인 지리산에 산악열차를 깔겠다고 한다. 이름하여 ‘알프스하동’ 사업. 환경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쳐 민간사업자가 공사를 포기하고, 기획재정부가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요구해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하동군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핵심사업이라며 결코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선거용 표어가 멸종위험을 정당화할 수 없다. 100년 미래 하동의 먹거리라고 하동군은 강변하지만, 산악열차로 지리산생태계가 파괴되면 하동군에게 100년 뒤 미래는 없다. 군수가 그 정도 미래관이 없다면 그 마을은 앞날은 깜깜하다. 

석탄화력발전은 또 어떤가.

과학자들은 머잖은 미래에 지구에 여섯번째 대멸종이 닥칠 것이며, 그 원인은 전적으로 인간이 내뿜는 온실가스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전 세계 각 나라는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 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온실가스는 석탄을 비롯한 화석연료를 태울 때 가장 많이 나온다. 석탄화력발전의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삼척에 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중이다. 상대적으로 값싼 연료로 발전소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면 발전소 운영자들 입장에서는 이문이 많이 남는 장사다. 그렇게 자신들의 주머니만 채우면 그만일까? 그것 때문에 인류의 멸종이 수십년 앞당겨 질 수 있는데? 석탄화력발전 운영자의 손주들이 그 피해자(멸종)가 될 게 100% 분명하다고 해도 석탄화력을 운영할까?

멸종이 그렇게 직접적으로 닥칠 위험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의 사례를 통해 답하자면, 북극곰을 들 수 있다. 지구가열화, 기후위기의 '단골희생양'으로 등장하는 북극곰은 이대로 가면 80년 안에 멸종할 것으로 예측됐다. 어제(31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북극의 해빙이 10년에 평균 13.1%씩 감소하고 있다. 지난 10년새 한반도 면적의 8배 이상이 녹아내렸다. 이는 북극의 기온가열화가 지구 전체에 비해 두 배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결과다. 국제적인 북극곰 보호단체인 ‘북극곰 인터내셔널(Polar Bears International)’은 지구가열화가 이렇게 지속된다면 북극곰의 멸종은 80년도 남지 않았다고 추정했다. 백설의 선하디 선한 이미지로 펭귄과 더불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북극곰은 그렇게 사라져갈지도 모른다. 하동군이 얘기한 100년보다 짧은 시간만에. 

사람들은 또 묻는다. 왜 하필이면 ‘멸종저항’이냐고.

저항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를 지적한다. 과격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구에 닥칠 멸종의 화급함에 비해서는 저항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약하다. 이 보다 더 강한 표현을 찾지 못해 저항이라고 말하는 것 뿐이다.

저항이든, 저지든, 늦추기든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이런 차원에서 행동을 이끌어지 못하는 경고는 양치기 소년의 외침 만큼이나 잘못된 결과를 야기한다는 최준석 작가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2021. 3. 18 아주경제 참고). 문제는 당장 눈앞에 닥친 내 일이 아닌데, 행동으로 이끌어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데 있다. 정부가 이를 추동하고 방향을 제시할 의무가 있는데, 가덕도신공항에서 확인한 ‘정부의 실패’는 너무나 치명적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정부가 역할을 다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하고 견제하면서, 한편으로는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행하는 수 밖에 없다. 우선은 각성한 개인들이 책임감으로 무장해서 실행에 나서야 한다. 

‘인간의 대지’에서 기요메는 생환해서 이렇게 말한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한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이지.  한 걸음 더. 항상 똑같은 걸음을 다시 시작하는 거야…”

생텍쥐페리는 “인간이라는 것, 그것은 바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라고 이 소설에서 썼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탓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비참함을 마주했을 때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멸종의 위험이 전적으로 우리들의 탓은 아니지만, 미래 세대가 어느 날 벼락처럼 멸종과 마주하게 된다면 우리들은 몹시 부끄러울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멸종을 막아내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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