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원의 시비] 지금은 지구에 '혁명'이 필요할 때
[채석원의 시비] 지금은 지구에 '혁명'이 필요할 때
  • 채석원 기자
  • 승인 2019.01.2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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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을 뭔가 현실적인 변화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혁명을 386세대가 쫓던 뜬구름쯤으로나 치부하는 사람들이다. 아니면 뜨거웠던 열정이 쏟은 토사물을 찾아 한국사회 후미진 곳 어딘가를 배회하는 유령쯤으로나 여기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목격한 것처럼 개혁만을 좇아선 정작 개혁이 어렵다. 권력이나 자본의 소유자들이 마지막까지 손에 쥔 것들을 놓지 않으려고 얼마나 아등바등하는지 우린 잘 알고 있다. 슬라보예 지젝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고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젝은 최근 한 언론사에 기고한 칼럼에서 프랑스에서 벌어진 노란 조끼 운동을 촉발한 계기가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한 조처였다는 사실을 언급한 뒤 급진적인 변화를 위해선 기름값 인하를 요구할 게 아니라 환경을 위해 기름 의존도를 줄이도록 요구하라고 말한다. 교통운송 체계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대신 삶의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정으로 변화를 바란다면 68혁명의 구호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지젝은 현 체제에 기반을 두지 않은 요구를 하는 게 우리가 직면한 생태적·사회적 곤궁을 풀 수 있는 유일하고도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지젝이 대놓고 지적했듯이 이런 현실인식은 적어도 환경적인 측면에선 100% 옳다.

‘꿩 대가리 숨기기’란 말이 있다. 위험에 처하면 머리만 풀덤불에 숨기고 몸통은 훤히 노출하는 꿩의 습성에 빗대 눈앞에 닥친 위험을 외면하기에 급급한 어리석은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는 지구 온도가 1도씩 오를 때마다 알프스의 만년설과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가공할 자연재해와 생태계 파괴가 벌어진다고 경고한 바 있다. IPCC는 지구 온도가 2도 이상 오르면 여름철 폭염으로 유럽에서만 수만 명이 죽고 세계 각종 생물의 3분의 1이 멸종 위기에 처할 거라고 했다.

남극에서 펭귄을 연구하는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세종기지 인근의 빙하가 해마다 10m 넘게 사라지는 걸 보면서 인류에게 닥칠 재앙이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사진=이 선임연구원 제공)
남극에서 펭귄을 연구하는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세종기지 인근의 빙하가 해마다 10m 넘게 사라지는 걸 보면서 인류에게 닥칠 재앙이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사진=이 선임연구원 제공)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은 JTBC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에 나와 지구 온도가 2도 오르면 일부 지역은 5, 6도 상승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관장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급격히 오르면 산불이 나기 쉽다. 산불로 나무가 사라지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어난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하면 순식간에 지구 온도가 6도 이상 올라갈 수 있다. 그러면 지구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대재앙을 걱정해야 한다. 실제로 이 관장은 지구 온도가 6도가량 오를 때 지구멸종이 완성된다고 단언한다.

걱정이 지나치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해 11월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 연구팀이 과학저널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을 소개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지구온난화 억제책을 적극 시행하지 않아 지금처럼 지구온난화가 계속해서 악화한다면 금세기 안에 지구 온도가 3, 4℃가량 높아질 거라고 밝혔다.

남극에서 펭귄을 연구하는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세종기지 인근의 빙하가 해마다 10m 넘게 사라지는 걸 보면 조만간 인류에게 닥칠 재앙이 떠올라 걱정스럽다고 했다.

상황이 이럼에도 돌아가는 꼴은 온통 ‘꿩 대가리 숨기기’다. 경유차 감축, 노후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 등의 방침은 물론 옳다.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이런 대책으로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의 대통령이 “기후변화는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 지구에서 급격한 기후변화라는 대재앙을 과연 막을 수 있을까.

멸종위기 전문 매체인 <뉴스펭귄>은 이런 무력감 속에서 창간됐다. 이미 기후변화가 돌이킬 수 있는 시점을 넘어섰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동물과 식물들이 잇달아 멸종하고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모두가 풀덤불에 머리를 숨긴 채 언 발에 오줌만 열심히 누고 있다.

<뉴스펭귄>은 남극 세종기지 옆에서 매년 녹아 줄어드는 빙하가, 푸에르토리코의 천연림 루킬로에서 눈에 띄게 사라지는 곤충이, 이젠 보호소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급감한 수달이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줄기찬 경고와 요구를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가능성의 영역으로 끌어오고자 한다. 무모한 우리의 도전이 타협과 개혁의 당의정에 취한 지구에 쓴 경각심을 던지는 혁명의 경종이 되기를 희망한다. 지구가 경각에 놓였다는 걸 안타까워하는 눈 밝은 독자들의 응원을 바란다.


멸종위기종 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