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혹등고래 낚는 장면이 '표현의 자유'라는 교보생명

  • 이후림 기자
  • 2021.02.26 08:00
광화문 교보생명 사옥 글판 수정 작업 중인 모습 (사진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뉴스펭귄

지난해 11월부터 광화문 교보생명에 걸렸던 글판의 '고래사냥' 그림이 일부 수정됐다. 교보생명측은 멸종위기종 혹등고래 사냥 그림을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 대형 걸개그림으로 멸종위기종을 낚는 모습이 걸려도 좋은 것인지는 다분히 논란거리다.

25일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와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는 광화문 교보생명 사옥에 부착된 글판 '고래사냥' 그림이 일부 수정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30일 광화문 교보생명 사옥에 처음 부착됐을 당시 글판. 낚시줄과 낚시바늘이 선명하다. (사진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뉴스펭귄

이 그림은 낚시꾼이 배 위에서 낚시로 멸종위기 혹등고래를 잡아올리는 모습이다. 글은 김종삼 시인의 시 '어부'에서 발췌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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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30일 처음 내걸렸을 때는 낚시줄과 낚시바늘이 선명하게 드러났었으나, 수정된 그림에는 희미하게 처리됐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측은 이 글판이 걸린 직후 교보생명 빌딩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해당 그림을 즉시 교체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이 그림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광화문 교보생명 사옥 앞 시위 중인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사진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뉴스펭귄

그림이 일부 수정된 후에도 이들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24일 교보생명 측에서 고래 사냥을 시사하는 낚싯줄과 바늘을 잘 보이지 않도록 일부 수정했지만 낚싯대와 바늘이 없어진다고 해서 반생명적인 메시지가 완전히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고래사냥은 낭만도, 기적도 아니다. 기후위기와 환경파괴로 몸살을 앓는 지구를 더욱 망가뜨리는 죽임에 불과하다"고 재차 문제를 제기했다.

고래사냥을 '기쁨'이라고 표현한 메시지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반생명적 이미지 뿐 아니라 그림과 함께 한 메시지 의도 역시 충분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바다위원회 측은 뉴스펭귄에 "교보생명 측이 일부 수정으로 성의는 보였지만 그림 속 담긴 메시지는 여전히 동일한 것이 사실"이라며 "교보생명에 내용 자체 수정 혹은 철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논란이 됐던 그림은 멸종위기에 처한 ‘혹등고래’이며 국제사회와 한국 정부 모두가 엄격히 포획을 금지하고 보전에 힘쓰고 있는 해양 동물"이라며 "이를 포획하는 장면이 서울 시내에 걸려 있는 것은 국제사회에 큰 망신이다"라고 주장했다. 1인 시위는 중단한 상태다.

그림 수정 후 낚싯대와 바늘이 사라진 모습 (사진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뉴스펭귄

교보생명 측은 이러한 논란에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그림은 고래를 낚을 것이란 의지를 표명한 것이 결코 아니며 상징적 이미지를 활용한 '표현의 자유'로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아무리 상징적 이미지라 하더라도 멸종위기종을 낚는 대형 걸개그림을 내 건 것을 '표현의 자유'로만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의 소지가 크다. 시민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곳에 이렇게 걸려 있는 그림은 자칫 시민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멸종위기 감수성'을 둔감하게 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 환경교육단체인 (사)에코유스 이상은 이사장은 "국내 가장 큰 오프라인 서점인 교보문고가 있는 빌딩이라는 점에서 멸종위기종에 대한 경각심을 불어넣어도 모자랄 판에 이런 그림을 버젓이 게시했다는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 빌딩 지하1층의 교보문고 어린이 도서 코너에는 멸종위기 관련 도서가 가장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의 이 글판은 오는 28일까지 게시될 예정이다.

한편 고래류는 만연한 포경으로 개체 수가 급감해 해양생태계 보전을 위해 국제적으로 포획이 금지됐다. 우리나라 역시 1986년부터 돌고래를 포함한 모든 고래류의 사냥과 포획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혹등고래 (사진 Pixabay)/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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