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운의 곤충을 담다] 멸종위기 물장군은 동장군을 어떻게 이길까?

  • 이강운 객원기자/곤충학자
  • 2020.12.07 10:34

멸종위기종을 증식하고 복원하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에서 멸종위기종 물장군의 월동 준비 작업이 한창입니다. 생장과 번식이 이루어지는 봄부터 가을까지만 바쁘고, 생명활동이 눈에 띄지 않는 겨울은 좀 한가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연구소는 월동 준비하느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계절입니다. 

26개 서식지외보존기관(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자신의 체온을 외부 온도와 맞추는 변온동물이긴 하지만, 곤충에게도 겨울은 치사율이 매우 높은 최악의 환경 조건이며, 정상적인 겨울 휴면을 하지 못하면 많은 개체들이 미처 봄을 보지도 못하고 죽습니다. 일 년 내내 정성으로 키운 물장군이 혹독한 겨울을 잘 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멸종위기종을 증식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오랜 기간, 종 내에서 짝짓기를 시키기 때문에 발생하는 근교약세입니다.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져 대를 이어 번식하기가 불가능하므로 사육하는 종 내에서라도 엇갈리게 짝짓기를 시키기 위해 늘 이력 관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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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장군의 등 면에 개체의 정보를 담는 넘버링 작업을 통해서 각 개체의 고유한 이력을 정리합니다. 아비가 누구고 어미가 누구며 또 그 개체가 몇 대 손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생물학적 정보입니다. 월동에서 깨어난 후 번호를 근거로 교차해서 짝짓기를 시켜 근교약세를 막아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방법입니다. 

물장군 넘버링 작업(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등에 기록된 숫자(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넘버링을 하기에는 월동을 준비하는 요즘이 최적기입니다. 워낙 힘이 세고 난리를 쳐 평소에는 잡기도 어렵지만 영하의 온도로 몸놀림이 둔한 지금은 그래도 등 뒤로 물장군을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비록 물리기도하고 찔리기도 하지만 강도는 아주 약해서 살짝 상처만 나는 정도입니다. 조심히 물장군의 가슴을 잡고 등 면의 물기를 제거한 후에 개체의 정보를 담은 숫자를 기록합니다. 

온도가 떨어져 등을 순순히 내주었지만 사실 물장군은 눈앞에 얼씬거리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어마어마한 포식자로 유명합니다. 물속의 강력한 포식자인 무자치나 망나니 황소개구리, 민물 생태계의 폭군인 끄리까지 거침이 없습니다. 물장군의 강력한 독침과 앞발을 당해낼 천적은 없었습니다. 

황소개구리 공격하는 물장군(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물뱀에 침을 꽂은 물장군(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물장군의 끄리 공격(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넘버링 작업을 마친 물장군을 온도, 습도와 광주기를 맞춰놓은 인큐베이터의 물장군 월동 케이지로 이동합니다. 월동 케이지의 수초나 벽면에 기대어 가끔 숨만 쉬며 죽은 듯이 지내면서  내년 봄까지 긴 월동을 할 겁니다.

물장군 월동 케이지(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인큐베이터에 정리된 물장군 월동 케이지(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신선한 먹이를 충분히 공급하고, 살 만한 공간을 조성하고,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주느라 온갖  정성을 기울였던 멸종위기종 물장군. 안전하게 월동을 한 후 2021년 봄, 혹한의 겨울을 무사히 보낸 건강한 물장군을 만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비나 어미가 겹치지 않게 골라서 짝을 맞춰주고, 동종포식을 피하도록 개체 사육을 했고, 알을 받아서 부화시켜 어른벌레까지 키워 지금까지 오는데 꼬박 1년이 걸렸지만 안전하게  월동을 시키지 못하면 대가 끊깁니다. 내년 증식의 씨앗이 되는 'Seed bank'가 만들어졌습니다. 

물장군 짝짓기(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물장군의 부화(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단순해 보이지만 반복적인 증식 과정이 15년 이상 걸렸으므로 익숙해 질만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 익숙해지면 안 되기도 합니다. 내일이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멸종위기종, 물장군을 증식하는 길은 늘 신경이 곤두 서는, 끝이 보이질 않는 길입니다. 

글·사진·동영상 : 이강운/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곤충방송국 유튜브 HIB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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