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운의 곤충을 담다] 마취전문의 왕나나니! 그 위에 기생파리!

  • 이강운 객원기자/곤충학자
  • 2020.11.24 08:00

뉴스펭귄의 객원기자로 활동중인 곤충학자 이강운소장(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이 23일부터 본지에 기명칼럼을 연재합니다. 기명칼럼의 코너명은 '이강운의 곤충을 담다'며, 신비로운 곤충의 세계를 영상과 사진, 맛깔나는 글로 풀어냅니다. 특히 이 소장은 이 코너를 통해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곤충들의 생태계를 조명하는 콘텐츠를 자주 선보일 예정입니다. 서울대 농학박사인 이 소장은 곤충 유튜브 방송국 HIB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겨레신문과 동아일보에 각각 곤충 관련 칼럼을 장기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장이 뉴스펭귄에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 '이강운의 곤충을 담다'에 독자 여려분의 관심과 사랑을 기대합니다.<편집자>

 

 

2019년 8월부터 지난 4월까지 약 8개월 간, 머리로만 알고 있던 구멍벌 생태를 직접 촬영한 관찰 기록입니다. 30년 이상 곤충과 친구하며 지내왔지만 이토록 흥미로운 광경은 처음입니다.

왕나나니가 자기보다 두 배 이상 더 큰, 갈색여치 애벌레를 질질 끌고 가고 있습니다. 파브르 곤충기 첫 페이지에 나오는 구멍벌(노래기벌)의 생태 기록처럼 자기는 먹지 않지만 육식하는 애벌레를 위해 사냥을 한 것이죠.

충북 영동에서 크게 발생해 과수 농가를 괴롭히던 돌발 해충, 갈색여치가 왕나나니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여치 종류는 여치를 비롯해 베짱이, 매부리 등이 속한 메뚜기목의 곤충으로 사마귀도 무시 못하는 잔인함과 무엇이든 먹어 치우는 왕성한 식욕의 포식자로 유명한 곤충입니다. 자기보다 덩치도 크고, 강력한 포식자인 갈색여치를 질질 끌고 가는 왕나나니의 사냥실력이 대단합니다.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그런 대형 갈색여치를 왕나나니가 어떻게 잡았을까요? 

왕나나니(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긴날개중베짱이(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함평여치(사진 이강운 소장. 2019년에 발표한 미기록종)/뉴스펭귄
왕나니니 갈색여치 사냥(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적재적소에 침을 놓으려는 극단적인 신체적 변화로 진화한 가는 허리와 마취 침이 먹이를 제압하는 무기입니다. 개미보다 더 가느다란 허리(첫 번째, 두 번째 배자루마디)는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너무 가늘어 툭 떨어질 것 같지만 강하며, 기능은 뛰어납니다.

먹이의 배후에서 마취 침이 달려있는 배 끝 꽁무니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가장 연약하고 치명적인 부위(대부분 가슴 연결 마디)를 찾아 날쌔게 찌르면 끝. 침에 찔린 먹이는 마비 되어 맥없이 축 늘어지고 눈 깜작할 사이에 해치웁니다. 실처럼 가는 허리에 비해 커다란 머리와 강력한 큰 턱도 한 몫을 합니다. 딱딱한 땅을 파고 자기보다 더 큰 먹이를 물고 갈 수 있는 완벽한 기능을 합니다. 

왕나니니의 가는 허리(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왕나니니의 마취침(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왕나니니의 턱(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발버둥도 없이 얌전히 끌려가는 여치는 죽은 것처럼 보이나 상처도 없고, 색상도 그대로 인  살아있는 싱싱한 먹이입니다. 턱으로 물고, 양쪽 다리를 모아 움켜 잡고 날개 짓을 합니다. 온 힘을 다해 갈색여치를 끌고 와 굴앞에 내려놓고 앞발과 강력한 턱을 이용해서 엄청난 속도로 땅굴을 파내려 갑니다. 애벌레 먹이인 갈색여치를 땅굴에 집어 넣고 다시 흙으로 입구를 막은 뒤 주변에 나뭇가지와 낙엽으로 위장하자 땅굴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듬 해 봄 왕나나니 땅굴을 확인한 결과 왕나나니의 흔적은 없습니다. 땅굴에서 발견된 것은 왕나나니가 아니라 이미 기생파리로 우화한 파리 번데기 껍질이었습니다.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집을 지어주고 충분한 먹이를 저장해 두었고, 입구를 봉해 안전하다 생각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둥지를 떠났는데, 왕나나니의 수고가 고스란히 기생파리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사냥 실력 뛰어난 왕나나니가 기생을 당했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이미 계획을 세우고 기다리던 기생파리가 결국 승자였습니다. 

갈색 여치의 잔해(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기생파리 번데기 껍질(사진 이강운 소장)/뉴스펭귄

세상 어딘들 안전한 곳이 있겠습니까? 

한반도의 극한호우는 지구가열화가 원인이라고 카이스트(KAIST) 연구진이 최근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먼 나라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는 급박하고 구체적인 위험입니다.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위기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다른 많은 언론매체들과 달리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나 주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자본,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뉴스펭귄이 지속적으로 차별화 된 기후뉴스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후위험을 막는데 힘쓰도록 압박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입니다만, 뉴스펭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기꺼이 후원할 수 있는 분들께 정중하게 요청드립니다. 아무리 작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지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가능하다면 매월 뉴스펭귄을 후원해주세요. 단 한 차례 후원이라도 환영합니다. 후원신청에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으며 기후위험 막기에 전념하는 독립 저널리즘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