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피셜 지오그래픽] ③ 6천만년전에 지구가 빚은 4만개의 현무암 기둥

  • 남준식 객원기자
  • 2020.10.21 07:50

 

[내’피셜 지오그래픽]은 한 대학생 지리학도가 10개 나라를 ‘탐험’한 기록이다. 이런 류의 기록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배낭여행’이라는 단어 대신 탐험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찾아간 곳들의 지구생태적 가치가 우선은 크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구의 살갗 아래까지 날 것 그대로 바라 본 시선이 단순한 여행의 차원을 넘은 까닭이다. 세상을 자기 희망대로 단순화하지 않았을 때야 비로소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중에서). 이 연재물이 가치를 갖는 것은, 젊은 지리학도가 170일간의 탐방을 통해 새로운 것들, 현상들, 문제들을 발견했다는데 있다. 이런 연유로, 연재물의 타이틀 [내’피셜 지오그래픽]은 ‘내가 쓴 특별한(스페셜)’, ‘내가 생각을 교정하여 정의한(나의 뇌피셜)’ 등의 중첩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연재물은 모두 10회에 걸쳐 독자들과 만난다. [편집자]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마지막 수업을 장식하는데 있어서 긴 말은 필요가 없다고 칠판에 남은 한 줄의 문장이 말해주었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새끼들을 떠나보내는 어미 북극곰처럼 선생님의 작별은 간결했다. 아일랜드의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조지 버나드 쇼의 명언이라는데,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 너무 아깝다’라는 뜻으로, 우리더러 젊음을 낭비하지 말라고 하셨다. 역시 아일랜드의 영화감독 존 카니가 연출한 <비긴 어게인>의 OST에 이 명언이 들어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아일랜드의 정서 저변에는 슬픈 아름다움이 깔려있는가 보다. 그걸 낭만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젊음! 청춘이랬다. 그렇게 좋다는 청춘이건만 숱한 젊은이들을 울리는 이유는 뭘까. 또 왜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는 걸까. 가슴 뛰는 것이 청춘일까? 시름시름 앓기도 하는 것이 청춘일까? 그리고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청춘일까? 청춘을 둘러싼 오만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버나드 쇼의 말마따나 아직 난 잘 모를 뿐. 배낭에 주섬주섬 넣는 옷가지며 빵쪼가리가 내 청춘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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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학교를 떠나 오랜만에 묵직한 배낭을 메고 자유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마치 제 집을 이고 다니는 달팽이 같다. 거창한 계획 따윈 없고 그저 오늘 뭐 할지, 오늘 뭐 먹을지, 혹은 내일 어디에 갈지만 생각한다. 당장 내 앞의 상황에만 충실할 수 있다는 것. 그 단순함을 좋아한다. 그리고 순간순간 그 안에 피어나는 이방(異邦)의 고독과 마주하는 것.

1969년 누군가 처음 그린 이 슬로건은 데리의 상징이 되었다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스코틀랜드로 넘어가기 전에 북아일랜드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었다. 이내 도로의 포장이 바뀐다. 사람들을 따라 주유소에 내려 유로를 파운드로 바꾸었다. 배낭이 무거운 탓이 컸지만 다른 여행자의 길잡이가 되라고 아끼는 론리 플래닛을 책장에 꽂아두고 왔다.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에 북아일랜드를 합쳐 United Kingdom라고 한다. 그 말인즉슨 북아일랜드는 원래 아일랜드의 땅이었지만 현재는 영국의 땅이 되었다는 뜻으로도 설명된다. 마찬가지로 북아일랜드 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북방의 이 도시를 아일랜드에서는 데리(Derry)라고 부르고, 영국에서는 앞글자를 추가해 런던데리(Londonderry)라고 부른다. 아일랜드에게 데리는 무슨 의미일까? 반대로 영국에게 런던데리는 어떤 의미일까? 

분명 이곳은 영국땅인데 도처에 아일랜드의 삼색기가 펄럭이는 것이 나의 상식으로는 이상했다. 곳곳에 프로파간다를 연상케하는 IRA(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통일을 요구하는 반군조직)의 선전벽화 앞에서 나는 이것들이 진심인지 장난인지 잠시 분간이 가지 않기도 했다. 대체 이곳의 정체성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영국은 현대 문명의 중심이며, 세계의 시간은 영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세계는 영국말로 소통하는, 영국은 아직도 대단한 나라임에 틀림 없다. 한편 아일랜드는 500년 넘게 영국의 식민지로 살면서 뿌리 깊은 홀대와 차별을 겪었다. 일례로, 영국에게 곡물을 착취당한 아일랜드는 감자를 주식으로 삼았는데, 감자 대기근이 터져 100만 명이 이상이 굶어 죽는데도 정작 영국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북아일랜드가 영국으로 편입되자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아일랜드는 테러를 감행했고, 이것이 1970~80년대에 걸쳐 3000명 이상이 죽은 북아일랜드 분쟁이다. 전쟁 수준의 분쟁이 20세기 후반에, 그것도 다름 아닌 영국의 한복판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소위 문명국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던 나의 스테레오타입들을 흔들고 있었다. 동시에 아일랜드와 영국의 관계에서 꼭 우리나라와 일본을 보는 듯 했으니, 원교근공의 전례 아래 국력이 모자란 민족의 몸부림은 강대국의 그늘에 가려질 뿐임을 생각했다.

데리 전경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아일랜드 국기와 함께 팔레스타인 국기가 게양되어있는 것이 흥미롭다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누가 그러던데.. 테러가 약자들의 전쟁이라면, 전쟁은 강자들의 테러라고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1972년에 발생한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사건 추모비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미친 짓이지만 선배와 5박 6일 동안 제주도의 화산지형만 답사한 적이 있다. 그땐 왜 그렇게 학구열이 불탔는지.. 학구열이라기보다는 왜 그렇게 방랑벽이 심했는지. 거대한 깔때기 모양의 칼데라를 두 눈으로 보고 싶어 당시 출입금지였던 송악산에 몰래 기어오르다가 화들짝 튀어나온 까투리에 놀라 둘 다 뒤로 자빠지고 덩달아 심장도 떨어질 뻔했던 기억, 한탄강을 따라 혼자 거닐었던 철원 용암대지의 황금빛 들녘, 동굴탐사부에서 경험한 석회암의 태곳적 신비와 잠자고 있는 박쥐 뒷통수의 촉감은 잊을 수 없다. 그러한 순간들이 층층이 누적되지 않았더라면 자이언츠 코즈웨이(Giant’s Casueway)의 돌기둥들이 귀여워 보이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인의 둑길'이라는 이름답게 난쟁이처럼 보이는 사람들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지리학 전공서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워낙 유명한 곳인지라 전에 이미 와본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용암이 식을 때 단면의 모양이 육각형이 되는 이유는 교수님도 모른다고 하셨다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우리나라의 옥포와 미포에서 배를 만들기 전까지 조선업의 전통 강호는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Belfast)였다. 우리나라가 황포돛배를 타고 다닐 적에 여기선 벌써 타이타닉이 건조되고 출항하였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타이타닉 기념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구경하다가 스코틀랜드로 넘어가는 비행기 시간이 임박한 것을 깨닫고 부리나케 공항으로 갔는데, 이거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알고 보니 벨파스트에는 공항이 두 개였고, 벨파스트 시티 공항에서 다시 벨파스트 국제 공항으로 갔을 때 비행기는 힘차게 활주로를 달리고 있었다.

타이타닉이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조선소였던 '헤럴드 앤 울프(H&W)'의 도크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타이타닉과 부딪힌 빙산의 모양으로 디자인된 100주년 기념관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타이타닉이요? 제가 본 영화 중에 최고였어요" (사진 남준식) / 뉴스펭귄

다음은 내 기억 속에 가장 추웠던 곳, 러시아로 간다. 단언컨대, 나는 그곳에서 인간동태가 될 뻔 했다.  

한반도의 극한호우는 지구가열화가 원인이라고 카이스트(KAIST) 연구진이 최근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먼 나라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는 급박하고 구체적인 위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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