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라쿤카페' 동물들은 어디로 가나?

  • 홍수현 기자
  • 2020.09.29 14:09

'라쿤, 미어캣, 왈라비'등 2010년대 후반 들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이색동물 카페'에 제동이 걸렸다. 

동물원과 수족관을 현행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관리 가이드라인을 신설하는 법안이 연이어 발의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색동물'은 현행법상 반려동물로 지정된 6종(개·고양이·토끼·페럿·기니피그·햄스터) 외 야생동물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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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이 라쿤을 만지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동물복지연대 어웨어,휴메인벳 제공)/뉴스펭귄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에 동물원과 수족관 설립 시 허가제를 도입하고 동물복지를 위한 입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내용을 담았다. 박상혁 의원은 무분별한 동물체험 행위를 제한해 동물학대를 방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고 한정애 의원은 사육환경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관리감독에 대한 지침을 마련토록했다. 이 외 비슷한 내용을 담은 법안이 최근 두 달 사이 9개나 발의됐다. 

(사진 동물복지연대 어웨어,휴메인벳 제공)/뉴스펭귄

업주들은 울상이다. 대체로 허가제에는 긍정적인 반응이나 이제까지 아무런 규정이 없다가 갑자기 전시 및 체험활동 등을 규제하면 이색동물 카페가 폐업 위기에 처하고 동물들은 갈 곳이 없어 안락사를 당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라쿤카페를 운영 중인 A 씨는 뉴스펭귄에 "성체가 된 라쿤은 같은 라쿤끼리도 합사가 어렵고 받아주는 동물원도 없다"며 "수익창출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라쿤들을 모두 데리고 살기는 사실상 힘들다. 이런 식이라면 라쿤은 결국 안락사를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효연 동물산업협회 회장은 "이색동물 카페를 허가제로 전환하고 관리규정을 신설하는 것에 적극 동의한다"면서도 "입법 과정에서 현장에 있는 자영업자와 소통이 부족했다. 동물권도 중요하지만 자영업자들의 생존권도 중요한 게 아니냐"고 뉴스펭귄에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본문과 상관이 없습니다 (사진 Pixaay)/뉴스펭귄

'동물원 허가제'등 동물권 보장을 위한 입법 시도는 지난 2013년 제19대 국회부터 시작됐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이 관람 목적으로 동물을 인위적으로 훈련시켜 선보이는 '동물쇼'를 금지하고 동물원을 허가제로 전환하는 등 내용을 담은 동물원법을 발의했으나 회기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한차례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무산됐다. 

고도비만인 라쿤. 많은 개체가 무분별한 사료·간식 주기 체험 및 활동 부족으로 비만증을 보이고 있었다 (사진 동물복지연대 어웨어, 휴메인벳 제공)/뉴스펭귄

환경부는 "그동안 수차례 입법을 시도했고 현장 목소리를 수렴하는 과정도 있었다"며 "이번 일이 갑작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3년간 유예기간을 준다. 이 기간 동안 법규에 맞는 시설을 갖추면 카페를 계속 운영할 수 있다"고 뉴스펭귄에 말했다. 환경부는 사이테스종(멸종위기종)을 위한 시설은 별도로 마련해 내년 상반기에 오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환경부는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동물 수입이 중단돼 카페 폐업 등으로 시장에 분양되는 이색동물 중 대부분을 동물원에서 흡수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모두 안락사에 놓인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캥거루과 동물에서 '죽음을 부르는 병'이라 부르는 세균성 골수염에 걸린 채 전시 중이던 왈라비 (사진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휴메인벳 제공)/뉴스펭귄

동물보호단체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야생동물 카페를 조사하던 중 '감금사육'되는 캥거루과에서 자주 발생하는 세균성골수염을 앓고 있는 왈라비가 만지기 체험에 이용되는 걸 본 적이 있다"며 "동물이 오락적 목적을 위해 전시돼서는 안 된다"고 뉴스펭귄과 인터뷰에서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는 "많은 이색동물 카페가 전시를 비롯해 '분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색동물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황에서 발생하는 분양으로 유기되는 개체수도 증가하고 있다"며 오히려 무분별한 분양이 결국 안락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음수대가 없는 공간에 전시 중이던 미니피그 (사진 동물복지연대 어웨어,휴메인벳 제공)/뉴스펭귄

동물복지문제연구소가 발표한 '2019 야생동물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야생동물 카페는 64곳이고 이 중 가장 많이 전시되는 동물은 라쿤(36곳)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7년 35개 업소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물은 동물 사육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임에도 자유롭게 물을 마실 수 있게 시설을 갖춘 곳은 12개 업소 중 단 5개뿐이었다. 임신을 한 개체나 갓 젖을 뗀 것으로 보이는 라쿤, 친칠라, 토끼 등이 전시에 이용되는 업소도 있었다. 좁은 공간에 오랜 시간 방치돼 정형행동을 보이는 개체도 다수 발견됐다.  

카페 내에서 번식을 통해 낳은 새끼 동물을 판매하는 곳도 있었는데, 그중 4곳만이 동물판매업으로 등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라쿤과 미어캣은 번식력이 강한 동물 중 하나로 꼽힌다. 조사과정에서 중성화된 개체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인터넷을 통한 불법 분양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라쿤 (사진 Pixabay)/뉴스펭귄

한편 라쿤은 지난 6월 '생태계 위해우려 생물' 1호로 지정됐다. 생태계에 유출될 경우 국내 삵, 오소리, 너구리 등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광견병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라쿤을 무단으로 자연에 방사하거나 유기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야생에서 포획된 라쿤은 안락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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