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장군 암컷은 진정 모성애가 없는 걸까?

  • 이강운 객원기자(곤충학자)
  • 2020.09.01 17:44

'죽음의 발톱'을 의미하는 학명(Letocerus)처럼 물속을 주름잡는 최상위 포식자인 물장군은 어마어마한 식성으로도 유명하다. 낫처럼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큰 앞발과 신경 독을 주입하는 뾰족한 주둥이를 지닌 강력한 포식자지만 물장군은 매우 느려 그 엄청난 식사량을 채우기가 어렵다. 동작은 굼뜨고 먹이는 많이 필요하니 상대를 잘 골라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 

물장군 발톱(사진 이강운 객원기자)/뉴스펭귄

식사량을 채우고 속도가 느려 손쉽게 잡을 수 있는 먹이, 동족인 물장군을 선택한다. '동종포식(Cannibalism, 同種捕食)'이다. 물장군은 암컷이 짝짓기 후에 수컷을 먹어 치우는 짝짓기 동종포식을 할 뿐만 아니라 자매, 형제를 잡아먹는 동종포식(Sibling cannibalism)도 서슴치 않는다. 때를 가리지 않고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동종포식을 하니 무서운 놈들이다.

물장군의 동종포식(사진 이강운 객원기자)/뉴스펭귄
물장군의 자매 동종포식(사진 이강운 객원기자)/뉴스펭귄

생물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같은 종 내에서 한 개체가 다른 개체를 먹는 동종포식은 생명 순환 과정 속에서 찾아낸 최고 ‘번식 전략’이라고 볼 수는 있다. 엽기적인 행동이지만 대를 이어 생존하는 방식이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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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장군은 몸집을 키워 물속 최상위 포식자가 되기 위해 더 큰 알을 낳아 덩치를 키우는 전략을 택했다. 알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산소가 필요하고 그래서 용존 산소량이 적은 물속보다 산소 공급이 원활한 육지로 올라왔다. 

그러나 물 밖으로 나오니 엄청난 양의 자외선을 견뎌야 하고 치명적인 온도 변화와 천적에게 노출되는 혹독한 환경에 직면하게 됐다. 물풀에 덩어리(Cluster)로 알을 낳고 품어서 지키지만 암컷은 없다. 수컷이 알을 품어 보호하는 부성애(Paternal care) 행동이 독특해 보이지만 수컷이 암컷의 역할을 대신함으로써, 암컷은 추가적인 영양공급을 자유롭게 해, 알을 낳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 탈 것 같은 열기를 아랑곳하지 않는 아비 물장군은 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쏟아지는 햇빛과 자외선을 몸으로 막고, 품고 있는 알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운다. 

알을 지키는 물장군 부성애(사진 이강운 객원기자)/뉴스펭귄

인간을 포함한 거의 모든 동물에서 자식에 대한 투자는 대체로 암컷 몫으로 알려져 있다. 5000 종 이상의 포유류 중에서 부성애를 보이는 종은 겨우 10%에 불과하고 지구 생물의 70%를 차지하는 곤충의 경우도 부성애는 매우 드물다. 

인간의 모성애(사진 이강운 객원기자)/뉴스펭귄

모성애를 포기한 것은 이해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투자했던 자기 자식들을 까먹고 훼손해 다른 생물들의 먹이감까지 만드는 까닭을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밀도를 조절하기 위해서? 나중에 커서 먹이 문제로 자신과 다툴 잠재적 경쟁자를 미리 없앤다고?

알을 까먹는 물장군 암컷(사진 이강운 객원기자)/ 뉴스펭귄
물장군 알을 먹는 검정송장벌레(사진 이강운 객원기자)/뉴스펭귄

물장군의 혼돈스러운 행동 양식을 인간으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화한 방법이므로 또 그렇게 갈 것이지만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글·사진: 이강운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 곤충방송국 유튜브 HIB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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