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기후위기 앞에 '면피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이유
[발행인칼럼] 기후위기 앞에 '면피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이유
  • 김기정/발행인
  • 승인 2020.08.2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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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집중호우 피해 지역인 전남 구례군 구례5일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대화하고 있다.(사진 청와대)/그린포스트코리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집중호우 피해 지역인 전남 구례군 구례5일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대화하고 있다.(사진 청와대)/그린포스트코리아

 

"영월 동강의 올갱이만도 못한 기상청"

기나긴 장마의 끝 무렵이었던 지난 주말,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했다. “이젠 기상청이 무조건 곳에 따라 폭우가 올 거라고 예보하는구만.” 강한 비가 내린다고 했다가 안 오면 비난 받을 일이 없지만, 거꾸로인 경우에는 속된 말로 욕을 바가지로 먹기 때문에 그렇게 예보(?)한다는 것이다.

물론 검증된 사실도 아니고, 근거가 있는 얘기도 아니지만 개연성이 아예 없지만은 않은 주장으로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역대급’으로 불리는 54일간의 장마 내내 기상청의 엉터리 예보가 어디 한두 차례였나. 이번에도 어김 없이 ‘예보가 아니라 중계’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기상청은 '오보청'의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 고향(강원도 영월) 친구들 중에는 아주 짓궂게 이렇게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기상청은 동강의 골뱅이(올갱이)만도 못해!” 동강에 서식하는 민물 올갱이들이 비가 올라치면 강가로 나오는 걸 빗대어 하는 소리다. 강 안쪽 바위 등에 붙어 있는 올갱이들은 구름이 잔뜩 껴 비가 올 듯 하면 강가로 기어 나온다.

혹자는 기상청의 반복되는 오보 원인을 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기상관측에 이용하는 슈퍼컴퓨터의 용량(능력)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데 슈퍼컴퓨터를 통해 확보한 데이터를 해독하는 능력이 처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슈퍼컴퓨터는 무려 520억원짜리다! 게다가 1000억원을 들여 한국형수치예보모델(KIM)까지 도입했다!) 이 역시 사실인지를 알 수는 없는 주장이지만, 사실이라도 큰 일이고 사실이 아니라면 더 큰 문제다.

이번 장마기간 엉터리 예보에 대한 기상청의 해명은 이렇다. 비구름이 남북으로 좁고 동서로 길게 형성되면서 통상적인 수준을 벗어난 국지성 호우가 자주 발생해 예측이 어려웠다고. 한 마디로 기후변화에 따른 극단적인 기상 현상 발생으로 인해 예측이 자주 빗나갔다는 설명이다. 슈퍼컴퓨터를 통해 확보한 데이터의 해독 능력 같은 본질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이처럼 극단적인 기상 현상 발생 탓으로 쉽게 돌려버리다니!

 

한국수자원공사 박재현사장(가운데)이 지난4일 충주댐을 찾아 둘러보고 있다.(사진 수자원공사)/그린포스트코리아
한국수자원공사 박재현사장(가운데)이 지난4일 충주댐을 찾아 둘러보고 있다.(사진 수자원공사)/그린포스트코리아

기상청 예보 뒤로 냉큼 숨은 수자원공사

이번 장마와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곳 가운데 또 하나가 한국수자원공사다. 수자원공사 용담지사는 지난 7일 오후 5시 댐 방류량을 초당 690t에서 8일 낮12시에는  초당 2900t으로 늘렸다. 이로 인해 충북 영동군과 옥천군, 전북 무주군, 충남 금산군 지역 주택 171채와 농경지 754ha가 물에 잠기는 등 큰 피해 발생했다. 이 수해로 인한 이재민은 4개군에 414가구 644명에 달한다.

SBS의 보도에 따르면, 용담댐 방류로 인한 침수피해는 명백한 인재다. 용담댐은 7일 낮 12시 초당 2천여t의 물이 유입되는데, 방류량은 이의 15%인 300t에 그쳤다. 유입량이 더 늘어난 오후 3시40분에는 방류량을 10% 정도로 오히려 더 줄였다. SBS보도는 이를 두고 “홍수기에 방류량을 조절해 댐 수위를 홍수 제한 수위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댐 운영지침을 어긴 것이며, 특히 갑자기 큰 물을 흘려 보내면서 제대로 된 안내조차 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이들 4개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구성한 ‘용담댐 방류 관련 4군 범대책위원회’의 주장을 들어보면 인재라는 지적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범대위가 발표한 공동입장문에 따르면 “용담댐은 환경부훈련상 홍수기(6월21일부터 9월20일까지) 제한수위 261.5m를 준수해야 하지만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8일 피해발생 때 까지 제한 수위를 초과해 운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전에 탄력적으로 방류량을 조절할 수 있었음에도 최저수위 확보에 급급한 나머지 급격한 방류로 홍수조절에 실패, 결국 인위적 재난을 초래했다”고 강조했다.

수자원공사는 이같은 지적에 기상청 탓을 했다. 장마가 곧 끝난다는 기상청 예보에 따라 관리지침대로 수위를 조절했고, 강 하류의 펜션과 래프팅 업체에서 방류량을 늘려달라는 민원을 해 그렇게 했다는 해명이다. 이한구 수자원공사 이사는 “예기치 못한 어떤 그런 강우에 대비해 방류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댐 안전을 고려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둘러댔다. 수자원공사의 취약한 댐 관리 시스템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그야말로 ‘냉큼’ 날씨와 규정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런 정책, 그런 자세로는 기후위기 대응 "택도 없다"

기상청과 수자원공사의 군색한 변명에 조금이라도 힘을 실어줄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번 집중호우는 예측이 쉽지 않았고 사상 최장기 장마라는 점은 분명하다. 서울 경기지역에 평균 870mm의 장맛비가 내려 평년 장마철 강수량 366mm의 두 배 훌쩍 넘었다는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한다.

원인은? 모두가 한 목소리로 지적하지만 기후변화가 이같은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재앙의 원인이다. 누가 뭐래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기상과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시베리아 고기압의 차고 건조한 공기와 북태평양 고기압의 덥고 습한 공기가 한반도 상공에서 지루하게 대치하면서 집중호우로 이어졌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 기온이 상승하면서 북쪽의 찬 기운을 막던 제트기류가 약해진 탓이다.

더욱이 앞으로는 이처럼 예측이 쉽지 않은 기상 상황이 자주 나타날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자못 심각하다. 날씨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면 우선 기상예보가 정확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비가 어디에 얼마만큼 내릴지 정확하게 예측하는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나, 기상청은 그걸 예측하라고 국민의 혈세를 들여 운영하는 기관이다.

기상청의 예보 수준이 올갱이들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우스갯으로만 넘길 수 없는 건, 날씨 예측 임무에서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데 따른 피해가 자심한 때문이다. 기상청이 동강의 올갱이, 인디언 기우제에 빗대어 조롱을 당하는 신세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국민들도 매번 홍수 피해에 노출되는 신세를 면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분발이 필요하다. 모든 데이터와 나타나는 현상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커다란 경고음을 울리고 있지만 정부의 대응은 지극히 미온적이다.

2025년까지 모두 160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190만개를 창출한다는 ‘한국판 뉴딜 정책’만 봐도 그렇다. 이의 핵심정책 가운데 하나인 그린뉴딜에는 정작 기후위기를 타개하려는 절박함이 전혀 엿보이질 않는다. 그동안 쏟아냈던 정책의 재탕, 삼탕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는 내용들이다. 미래 세대로부터 지적을 받게 되면 “무슨 소리, 우리도 이만큼 했어”라는 면피용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환경팔이’하는 일부 환경관련 단체들의 행태도 도긴개긴이다. 기후변화, 환경 등은 이런 단체들에게 돈벌이 이상의 의미가 없는 무심한 단어, 개념일 뿐이다. 

물음표 모양의 구름이 태양을 등지고 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에 심각한 의문을 표시하는 듯 하다. (그린포스트코리아 자료사진)/그린포스트코리아
물음표 모양의 구름이 태양을 등지고 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에 심각한 의문을 표시하는 듯 하다. (그린포스트코리아 자료사진)/그린포스트코리아

 

머피의 법칙과 닮은 '면피의 법칙'

머피의 법칙은 세상일이 대부분 안 좋은 쪽으로 일어나는 경향을 뜻하는 말이다. 이의 좋은 예로 등장하는, 잼 바른 빵은 꼭 잼 바른 쪽으로 바닥에 떨어지는 경우다. 우연인 듯 보이지만 과학적으로는 필연의 결과다. 잼 바른 쪽이 무겁기 때문에 중력의 법칙에 따라 그 쪽으로 떨어진 것 뿐이다. 그러므로 “아 난 왜 이리 재수가 없을까”하고 끌끌 혀를 찰 일이 결코 아니다. 마땅히 그럴만한 일이 그렇게 겹쳐서 벌어진 것 뿐이니까. 

이번 장마 기간에 관련된 각 기관들이 내놓은 설명 또는 해명들은 면피할 거리만 찾는 군색한 것들이다. 하필이면 슈퍼컴퓨터로도 분석하기 어려운 국지성 호우가 와서, 하필이면 강 하류 펜션업자들이 방류량을 좀 줄여달라고 해서, 하필이면 4대강 사업으로 물 흐름을 망가뜨려 놔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머피의 법칙과 닮지 않았나? 이름하여 ‘면피의 법칙’.

그런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의지, 자세가 순전히 면피 수준에 머물러서는 이 나라에 미래가 없다. 흔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사람 체온이 1도 오르면 몸이 안 좋다는 걸 느끼기 시작하듯이 지구는 이미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에 따라 나쁜 징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또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지낸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는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후위기는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 앞서 있었던 5번의 대멸종에서 보듯 지구는 스스로 생명을 없앨 수 있는 과정이 엄청나게 많다. 2도 기온 상승은 그 방아쇠를 당기는 거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유지하면 2060년 쯤에 지구온도 상승폭이 2도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고, 그땐 인간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도 지구 스스로 변화를 증폭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는 서민들이 가장 먼저 떠안는다. 이번 집중호우와 홍수 때 다시 한번 입증된 사실이다. 지금 정부가 예방책을 마련하지 못해 자연 재해의 굴레에서 국민들이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무엇으로 면피하려 해도 결코 피해갈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관한 한, 정부에는 면피의 법칙이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 물관리를 종합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환경부가 과연 그만한 역량과 철학을 보유하고 있는지, 차제에 면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장 먹기에는 곶감이 달고, 정부 당국자들로서는 면피할 거리가 구세주 같겠지만, 누적되는 면피의 무게를 못 이겨 결국 정부의 신뢰는 폭삭 주저 앉을 것이다. 역대급 장마를 불러온 기후위기가 보낸 경고다. (2020. 8. 20) 


멸종위기종 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