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동거중⑧] 파맛 첵스와 토끼 사이

  • 이순지 기자
  • 2020.08.03 07:50

"약속을 지켜주세요! 파맛 첵스가 먹고 싶습니다."

파맛 첵스와 기념사진을 찍은 햇살이. 셀럽이라면 요즘 유행하는 물건과도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나요? 사실 햇살이는 파맛 첵스를... 아주 싫어했습니다(사진 이순지)/뉴스펭귄

무모한 한 회사의 국민 투표는 현실이 되었다. 파맛으로 만든 시리얼이라니? 파맛 첵스가 나오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파로 만든 첵스라니? 유행에 편승하고자, 나도 마트에 들러 파맛 첵스를 어렵게 샀다.

파 캐릭터가 웃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햇살이에게도 파맛 첵스를 들이밀어 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이 첵스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우유와는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고 곰탕에 어울립니다. 이렇게 먹어도 사실 그리 맛있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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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에게 이 파맛 첵스를 들이민 이유는 간단했다. 먹보 햇살이의 반응이 궁금했다. 별명이 먹보인 햇살이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냄새를 킁 한번 맡더니,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표정을 지었다. 몸을 황급히 돌리더니 눈빛으로는 강력한 레이저를 뿜었다. 햇살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걸 왜 나한테 준거야? 이 엄마가 말이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네.' 햇살이는 그 뒤로 다시는 파맛 첵스 근처도 오지 않았다. 물론 우리집에서도 아무도 먹지 않아 애물단지가 됐다.

좋아하는 풀을 먹고 있는 햇살이. 눈빛도 입매도 부드럽다(사진 이순지)

누군가 내 인스타그램에 이런 댓글을 달았던 적이 있었다. 토끼가 고기도 먹고 아무거나 다 먹는 잡식성이라고 했다. 그래서 토끼 주변에 먹을 것을 놔두면 남아나는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내가 토끼를 키워보니, 이 말은 완전히 오류 그 자체다. 토끼도 식성이 있다. 물론 고기는 먹지 않는다.

과자도 취향이 있다. 토끼에게 과자를 먹이면 안되지만, 안타깝게도 토끼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간식을 만들어 내는 일부 업체들이 있다. 토끼와 햄스터 같은 소동물 위주의 간식을 만드는데 이 간식들은 밀가루로 만든 스틱 과자와 비슷하다. 토끼들은 이 간식만 보면 어쩔 줄 몰라한다. 또 빼빼로나 홈런볼을 먹는 토끼들도 있다고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절대 먹으면 안 된다.

파맛 첵스를 말 그대로 '극혐'하는 햇살이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매일 풀과 초식성 사료만 먹는 우리 햇살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건강을 이유로 많은 것을 먹여보지 않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역시 영양제다.

하얀색 서랍 두 번째 칸에는 햇살이를 위한 사료가 있는데, 사료를 달라고 시위 중이다. 서랍에는 햇살이 이빨 자국도 있다. 서랍을 열려는 시도가 남긴 흔적이다(사진 이순지)/뉴스펭귄

하얀색 알약인데 삼각형 모양을 가지고 있다. 냄새를 킁킁 맡아보면 달콤한 향이 난다. 이 영양제 봉투를 흔들면 햇살이는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달려온다. 그리곤 어서 영양제를 달라고 나에게 눈빛 공격을 해댄다. 나는 그런 햇살이를 보면 어쩔 줄 몰라하며 영양제를 손에 건넨다. 한 번에 하나만 먹으면 좋겠지만, 햇살이는 욕심이 많은 토끼다. 한 번에 두 개를 양 볼에 넣고 오물오물 입을 움직인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역시 햇살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영양제라는 사실이 확실해진다.

토끼의 건강을 위해 알팔파, 티모시를 먹여야 한다고 매일 다른 반려인들에게 말한다. 또 어떤 날은 간식도 먹이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말하지만 나도 사실 귀여운 햇살이의 표정이 보고 싶어 간식을 몰래 줄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말한다. 풀을 가장 많이 먹어야 건강하다고! 오늘도 귀여운 햇살이는 나를 보며 좋아하는 영양제를 달라고 보챈다. 나는 못 이긴 척 영양제 2알을 줘야겠다. 2알이 오늘의 정량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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