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호랑이, 아직 멸종 아닌 절멸 단계… 지켜내야죠"
"한국호랑이, 아직 멸종 아닌 절멸 단계… 지켜내야죠"
  • 이병욱 기자
  • 승인 2019.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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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항  한국범보전기금 대표 뉴스펭귄 창간 인터뷰
혈통 같은 '아무르호랑이' 러 연해주 등에 400∼500마리 서식
한국범보전기금, '한국범' 보전위해 다방면에서 지원·연구 중
한국호랑이와 유전자 염기서열이 같은 아무르호랑이 (사진 한국번보전기금 제공)/뉴스펭귄

먼저 영화 ‘대호’가 떠올랐다. 약 100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한국호랑이의 가죽이나 뼈라도 혹시 직접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설렜다.

지난 23일 만난 이항 수의대 교수(사단법인 한국범보전기금 대표)의 서울대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그 기대가 얼마나 섣부른 욕심이었는지 깨달았다.

대신 벵갈호랑이(인도호랑이) 두 마리의 두개골을 알현(?)한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기자에게 이 교수는 “비록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사라졌지만 한국호랑이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 교수 말처럼 한국호랑이의 상황은 '멸종'이 아닌 '절멸'에 해당한다. 종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특정 지역에서 특정 종이 사라진 경우다.

한국호랑이와 같은 종으로 밝혀진 '아무르호랑이'가 현재 러시아 연해주, 중국, 북한의 접경 지역에 400∼500마리가량 살아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가 고향인 한국호랑이와 한국표범을 우리 조상들은 '한국범(虎)'이라고 불렀다. 한국호랑이를 러시아에서는 '아무르호랑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동북호(東北虎)', 그 외 다른 나라들은 흔히 '시베리아호랑이'라고 한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기름진 옥토인 한반도의 물가 범람원 지대는 야생동물이 주인이었다. 호랑이 역시 먹이인 야생동물이 풍부한 이곳에 살았다. 15세기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수리시설을 짓고 논(수전)을 마련했다. 물가를 빼앗긴 호랑이는 결국 산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여러 호랑이 아종의 과거와 현재 분포(왼쪽)와 20세기 이후 아무르 호랑이 서식 영역. ‘2010 호랑이 서식국가 회의’ 자료 (사진 한국번보전기금 제공)/뉴스펭귄

이 교수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호랑이 개체수가 줄기 시작한 것은 조선 전기부터다. 사람들이 경작지를 개간함에 따라 번식 장소와 먹잇감을 잃은 게 첫 번째 이유였다.

이후 인구 증가로 더 많은 농경지가 필요해지자 사람들은 이번엔 산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산골짜기와 중턱에 불을 질러 농지를 마련하는 ‘화전’을 만들었다. 등 떠밀려 숲으로 간 호랑이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영역을 빼앗겼다. 

20세기 초에는 서구 열강의 자본가들이 인도와 아프리카 등을 돌며 야생동물을 수렵했다. 이들 중에는 호랑이를 잡으러 한반도까지 온 사람들도 있었다. 영국의 포드 바클리 일행이 1903년 전라도를 찾아 해남과 진도 일원에서 호랑이를 사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미국인 커밋 루스벨트 일행은 1922년 함경도에서 호랑이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해수구제정책’을 통해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한반도에 살고 있던 한국의 호랑이와 늑대 등 맹수를 무분별하게 잡아들였다. 

한국호랑이와 한국표범의 시련은 이게 끝이 아니다. 6·25전쟁으로 생긴 휴전선은 백두대간의 허리를 잘라 한반도에서 호랑이와 표범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만주에서 사는 호랑이들이 백두대간을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는데 그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2006년 이 교수는 한국호랑이의 '뿌리'를 찾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이 교수는 일본과 미국, 유럽 등 해외 연구자들을 통해 한국에서 넘어간 호랑이 뼈나 두개골, 가죽 등이 있는지 수소문했다.

그렇게 찾던 한국호랑이의 유물을 이 교수는 일본 도쿄과학박물관과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찾아냈다. 

이 교수는 마침내 두 곳에서 어렵게 구한 뼛조각을 통해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DNA)를 얻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가져온 유전자와 현존하는 6종의 호랑이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한국호랑이의 유전자 염기서열은 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의 것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이 교수는 "러시아와 연해주, 중국, 북한 접경지역에서 살고 있는 아무르호랑이 400~500마리가 바로 한국호랑이다. 아무르호랑이를 잘 보존하는 것이 결국 한국호랑이를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19세기 후반 한반도에서 포획된 호랑이 두개골. 도쿄 국립과학박물관 소장 (사진 한국범보전기금 제공)/뉴스펭귄

이 교수는 한반도에 한국호랑이 복원이 가능한지 조사하는 기초연구를 마쳤다. 호랑이처럼 먹이사슬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포식자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는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는 멸종위기에 처한 특정 종을 복원하는 의미도 있지만 생태계를 건강하게 지키는 역할도 한다.

이 교수는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회색늑대를 복원하자 까치와 곰 등 다른 동물의 개체 수도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다"면서 "과포화 상태인 사슴을 회색늑대가 잡아먹어 개체수가 줄어드니 사슴의 먹이인 식물과 나무 열매가 많아졌고, 이에 따라 까치와 곰의 먹이도 증가하면서 이들의 개체 수가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지리산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고 토종여우의 복원도 시도한 이유가 같은 이치라고 강조한 이 교수는 "남한에서 호랑이를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북한 백두산에선 가능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국호랑이의 경우 수컷은 약 1000㎢, 암컷은 약 400로 행동반경이 넓어 인간과 충돌할 수 높다. 때문에 인구 밀도가 높은 남한보단 인구 밀도가 낮은 백두산에서 호랑이를 복원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재 이 교수는 북한과 가까운 중국 백두산 지역에 한국호랑이의 복원 가능성을 조사하는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가 대표로 있는 한국범보전기금은 이 살아 남은 '한국범들'의 보전을 위해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지원한다.

한국범보전기금은 2004년 2월 일반 시민들의 모임으로 태동했다. '녹색아시아를 위한 만원계' 중 '아무르표범보호만원계'로 시작된 이 소소한 움직임이 10년 넘게  ‘호랑이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출발이 됐다. 시민들이 정성으로 모은 기금은 영국의 런던동물협회(ZSL)를 통해 러시아 피닉스기금에 전달되고 있다.

2010년 호랑이해를 거치면서 한국호랑이·한국표범 살리기 범국민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2011년 2월 환경부 산하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2004년 2월 9명으로 시작된 이 모임이 현재는 100여명의 회원으로 몸집을 불렸다.

사단법인 한국범보전기금 대표인 이항 수의대 교수가 벵갈호랑이의 두개골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뉴스펭귄

한국범보전기금은 극동러시아-중국-북한 접경지역에 살아남은 한국표범·한국호랑이의 보호·보전을 지원한다. 또 생태통로 확보를 통한 백두산 지역과 인접한 한반도 지역으로의 복원 가능성과 한국표범·한국호랑이 유전자를 연구한다.

이와 함께 한민족 문화유산인 한국호랑이 문화의 복원을 위해 애쓰면서 국가 상징동물인 호랑이의 활용에 대한 연구와 관련 홍보 및 교육도 수행한다.

한국범보전기금의 회비와 후원금 일부는 한국호랑이와 한국표범의 멸종을 막고자 오랫동안 활동해 온 러시아 '피닉스기금'(대표 세르게이 베레즈넉)과 '티그리스재단'(대표 마이클 회테)을 지원하는데 사용된다.

피닉스기금과 티그리스재단은 알타(ALTA·Amur Leopard and Tiger Alliance·아무르호랑이와 아무르표범 보호활동을 위해 모인 13개의 러시아와 국제적 민간단체의 연합체)의 한 단체로서 밀렵 방지를 위한 순찰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호랑이와 표범 보호·보전의 중요성을 알리고 교육하는 데 혼신을 다하고 있다.

이 교수는 "서식지 외 보전을 위한 번식은 유전적 다양성을 보전하고, 인위적 사육 환경에 유전적으로 적응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세계동물원수족관협회(WAZA)는 한국호랑이(아무르호랑이)의 근친번식을 방지하고 과학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범세계적 종관리계획(Amur Tiger GSMP)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서식지 외 보전이란 야생의 서식지 안에서 개체군 보전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멸종위기종을 인위적 시설에서 사육 번식시켜 미래에 야생으로 다시 돌려보낼 개체들을 보전하는 것"이라며 "서식지 외 보전 계획은 반드시 야생 서식지 내 보전을 지원해야 하며, 야생 생태계 보전에 대한 시민교육 프로그램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항 사단법인 한국범보전기금 대표/뉴스펭귄


멸종위기종 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