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동거중⑦] 우리집 '아기 토끼'는 카메라를 좋아해

  • 이순지 기자
  • 2020.07.27 07:50

이렇게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지으면 되는 건가요?

카메라가 좋은 햇살이. 어릴 때 사진을 찍으면 이런 표정을 지었다(사진 이순지)/뉴스펭귄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서 제대로 된 사진 찍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려동물의 생이 끝나갈 때쯤 그제야 사진첩을 뒤적이는 시간이 돌아온다. 그때가 되면 이미 사진을 찍기엔 늦어버린다. 랄라 장례식에 놓아줄 사진을 찾을 때 내가 그랬다. 그래서인지 랄라의 동생 햇살이에게는 유독 카메라를 들이미는 일이 많아졌다. 물론 눈으로 보는 것이 아직은 훨씬 좋다. 그래도 눈으로 볼 수 없을 때를 생각하며 카메라에 햇살이를 남긴다.

햇살이의 첫 촬영은 안타깝게도 주인공이 아닐 때 시작됐다. 랄라에 대한 얘기를 신문사에 기고해야 할 일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사진이 필요했다. 랄라와 함께 있는 사진을 찍고 싶었던 나는 집에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랄라는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어 본적이 1번 있다. 랄라가 사람 나이로는 20대 때였는데 진심으로 예뻐해 주는 사진작가 덕분에 귀여운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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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많은 시간과 함께 토끼에게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요한다. 집에서 스튜디오까지 이동해야 하고, '찰칵' 터지는 조명에 토끼 몸이 떨리는 등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 여기다 토끼를 안 좋아하는 사진작가를 만나면 최악에 최악이 더해진다. 무성의한 작가는 토끼의 귀를 종종 잘라먹고 결과물을 내놓기도 한다.

사진이 필요할때 랄라는 몸이 아팠기 때문에 집을 최대한 스튜디오처럼 꾸몄다. 벽지는 하얀색 커튼으로 가리고 랄라의 침대 계단을 소품으로 사용했다. 왕관 머리핀도 장식으로 사용했다. 카메라를 좋아하지 않는 랄라는 한참을 계단에서 서성이다가 겨우 1장의 만족할만한 사진을 만들어냈다. 햇살이는 랄라 언니가 사진을 찍을 때 '빼꼼'하고 끼어 촬영에 동참했다.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었다.

햇살이와 반대로 카메라를 싫어했던 우리 랄라(사진 이순지)/뉴스펭귄

햇살이는 참 씩씩한 토끼였다. 왕관 핀을 꼽고 카메라를 들이대도 꼼짝하지 않고 포즈를 취했다. 귀도 앞 뒤로 움직이고 몸을 뒤틀기도 했다. 이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나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보통 토끼들은 한 곳에 두면 뛰쳐나가기 마련이다. 랄라는 제법 내가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도 적응하지 못했다.

언니 랄라는 실패했지만 유독 카메라를 좋아했던 햇살이는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처럼 근사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이 뒤로도 햇살이의 카메라 사랑은 계속됐다. 스마트폰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포즈를 취했다. 케이지 위에 발을 올린 사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이다. 아직 화장실도 잘 가리지 못해 오줌이 노랗게 묻어있는데도 사진을 찍겠다고 카메라를 쳐다봤다. 나는 또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뻐 환호성을 내질러가며 사진을 찍었다.

"저 귀엽지 않나요?" 포즈 좀 아는 토끼 이햇살(사진 이순지)/뉴스펭귄

햇살이의 카메라 사랑은 키운 지 한 해가 흘러도 여전하다. 카메라만 보면 포즈를 취한다. 나는 또 그 모습이 좋아서 달려가 사진을 찍는다. 앞으로 햇살이가 살아가는 동안 일기를 쓰듯 사진을 찍을 생각이다. 다시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알고 있다. 마음에 기억한 랄라처럼 먼훗날 햇살이도 마음으로 그리고 사진으로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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