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무더위를 날려주는 그 이름, '유령곤충'?

  • 이강운 객원기자/곤충학자
  • 2020.07.24 16:39

올해 유난히 곤충 이름이 사람들 입으로 많이 오르내린다. 대벌레도 그 중 하나.

배 마디가 대나무 마디 같아 대벌레라 불리지만 대벌레목의 학명인 Phasmida는 고대 그리스어로 phantom, 즉 유령이라는 뜻이다. 영어 이름이 'Ghost insects'라고 불리는 이유도 학명을 그대로 해석한 덕분이다.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생태계 내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초식 곤충이라 새나 다른 육식성 곤충 등 포식자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자기가 먹는 식물의 일부처럼 위장하면서 비밀리에 행동하는 행동학적 특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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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위장의 달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전설의 고향'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위장이 언제나 성공하란 법은 없다. 혹시 천적이 찾아내면 죽은 척, 바로 의사행동을 한다. 자신을 방어할 무기라는 게 위장하거나 죽은체 하기가 고작인 정말 힘없는 놈이다.

산행 중에 10cm 넘는 길쭉한 놈이 불쑥 나타나 깜짝 놀란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장 약한 존재이므로 위험하지 않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대벌레(사진 이강운 객원기자 제공)/뉴스펭귄
긴수염대벌레(사진 이강운 객원기자 제공)/뉴스펭귄

대벌레는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 지방에도 일부 살고 있지만 대부분 종류의 대벌레들은 보통 열대나 아열대 지역에서 서식한다. 고온 다습한 환경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대벌레는 수컷 없이 암컷 혼자 알을 낳는 단위생식(처녀생식, 무성생식)을 하는 특이한 곤충으로 유명하다.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수컷을 찾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도 없고 짝짓기 하느라 천적에게 노출 될 위험도 적으니 나름 좋은 생식 방법이라 생각한 모양.

또한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을 때 배우자를 찾느라 시간 허비하지 않고 빨리 번식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서울 은평구 봉산 해맞이 공원 일대에 떼로 나타난 이유가 알에서 부화할 때 혹시 다른 지역과 비교해 고온다습해 국지적으로 최적의 조건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물론 크게 보면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영향 탓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 지구적으로 혹은 전국적으로 모든 종에게 영향을 발휘해야 하는데 유독 대벌레 대발생만 기후변화라 하면 애매하다. 큰 비 내린 후 습도가 높으면 대발생 조건이 충족되므로 확실하게 원인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날개대벌레(사진 이강운 객원기자)/뉴스펭귄
분홍날개대벌레(사진 이강운 객원기자)/뉴스펭귄

대벌레 알도 종마다 특이해서 종을 분류하는 보다 정확한 기준이 된다. 대벌레 알 껍질은 아주 단단해서 웬만해선 부서지지 않는다.

단단한 알 껍질을 녹일 수 있는 것은 강한 산성이 있는 새의 위장이므로 일부러 먹혀서 멀리 이동을 한다. 걸어 다니면서 이동하는 일은 너무 확산 속도가 느리므로 세력을 넓히기 위해서는 기꺼이 몸을 던져 직박구리의 밥이 되려고 한다. 

날개대벌레알(사진 이강운 객원기자)/뉴스펭귄
분홍날개대벌레알(사진 이강운 객원기자)/뉴스펭귄

산림 생태계에서의 대벌레의 역할은 숲을 덮는 활엽수림의 잎을 먹음으로써 숲 속 내부에 빛을 들어오게 하고 식물을 소비한 배설물로 토양을 기름지게 한다. 물론 위장과 의사 행동의 방어 전략이 있지만 다른 생물들의 먹이 감이 되는 생태계의 엔지니어 역할도 빼 놓을 수 없다. 

사실 외국에서 대벌레는 pest(해충)가 아니라 pet(애완 동물)으로 사랑받고 있는 곤충이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일종의 위장 행동으로 흔들흔들 리듬을 타는 행동이 재미있어 보이고 큰 사이즈에 멋진 외양 때문이다.

사랑받지는 못해도 미움덩어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서로 딱한(?) 현실이다.  

 

글·사진: 이강운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곤충방송국 유튜브 HIB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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