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나 잘하지? 왜 고양이 밥을 주니"

  • 이순지 기자
  • 2020.06.08 09:00

어느 날 찾아온 고양이

노란 털색을 가진 한 고양이가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다(사진 이순지)/뉴스펭귄

제 이름 앞에는 여러 수식어가 붙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말이죠. '정동 캣맘', '고양이 밥 주는 직원' 등등. 어느 순간 동물과 관련된 것들이 제 삶을 차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동물 보호에 앞장서야겠다"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한 적은 없습니다. 2015년 회사 앞을 걷던 제 앞에 노란색 고양이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 고양이는 이 모든 수식어들의 이유가 되어줬습니다.

노란색 고양이는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딘지 큰 얼굴에는 똘망한 눈이 자리 잡았고, 입 주변도 단정했습니다. 통통한 뱃살은 이 주변에서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줬습니다. 특징이 있다면 꼬리 끝이 뭉뚝하고 두 쪽으로 갈라져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난폭한 누군가에게 학대를 당한 것은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알고 보니 건강 상태가 좋지 않게 태어난 길고양이에게 자주 보이는 꼬리 모양이라고 합니다. 이 노란색 고양이의 엄마는 무언가 잘 먹지 못했었나 봅니다. 거리 위 고양이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으니깐요. 

이 노란색 고양이는 겁도 없는지,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사람을 보면 배를 보이고 벌러덩 누워버렸습니다. 날씨가 따뜻한 날은 사람이 지나가는 길 한가운데를 막고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반겨줬습니다. 날씨가 추운 날은 수풀 속에서 "야옹"하고 소리를 냈습니다. 저는 이 노란색 고양이가 귀여워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습니다. 편의점에서 이 노란색 고양이에게 사 줄 수 있는 것은 참치캔이 전부였지만요. 기름기를 뺀 이 참치캔을 노란색 고양이는 소리까지 내며 맛있게 먹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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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뉴스를 만들며 지루하고 지쳤던 저에게 이 노란색 고양이는 선물 같았습니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웃을 수 있게 해 줬으니깐요. 어느 날은 이 노란색 고양이가 뱃살이 통통해진 이유를 찾게 됐습니다. 제 나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캣맘을 발견했습니다. 불쑥 이 캣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여기서 고양이 밥을 주고 계신건가요?", "여기는 막둥이네라고 하는데 언젠가부터 사료와 물을 주고 있어요." 아마도 이 분도 노란색 고양이의 매력에 낚여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고양이의 이름도 알게 되었습니다.

막둥이는 제가 그렇게 예뻐하던 노란색 고양이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세 마리의 아기 고양이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약하고 애교 많았던 막내가 지금의 막둥이였습니다. 막둥이는 서울 한복판 궁궐 근처에서 태어나 쭉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막둥이라고 불리는 이 노란색 고양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이 캣맘은 가끔 사료나 물을 줄 수 있으면 함께 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막둥이(사진 이순지)/뉴스펭귄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막둥이를 위해 이 정도 일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부터 저의 캣맘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집에 고양이를 키우지는 않지만 매달 월급날이 되면 저는 고양이 사료 20kg을 준비합니다.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캔도 한 박스씩 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밥을 줄 때는 얼마나 쭈뼛거렸는지 모릅니다.

누가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 생각하지는 않을지 걱정했습니다. 그래도 나를 보며 웃으며 달려오는 막둥이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들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막둥이에게 간식을 주는 저를 보고 한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부모에게나 잘하지? 왜 고양이 밥을 주고 있어요?" 아무 말하지 못하고 울상을 짓고 있으면, 제 대신 옆에 있던 사람들이 "부모한테는 이미 잘하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러세요"라고 대신 따져주는 일도 생겼습니다. 

이 한마디 때문에 그리고 막둥이의 야옹 소리 덕에 저는 진짜 캣맘이 되었습니다. 캣맘이 된 후 제 삶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금은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방 한편에는 어디서나 만날 고양이를 위한 캔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고양이의 귀여운 젤리. 막둥이는 모든 것이 예쁘지만 특히 눈빛이 사랑스럽다(사진 이순지)/뉴스펭귄

누가 왜 이런 일은 하느냐고 물으면, 이젠 습관이 되어버렸다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10분의 시간이 막둥이 그리고 많은 생명들에게는 생사를 결정하는 일이니깐요. 단 10분의 시간 그리고 막둥이를 만났던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간 마음속 그 시간들을 저는 평생 기억하고 살 생각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생각합니다. 캣맘이 되길 참 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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